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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성남시 분당구 휴맥스빌리지 302호. 이오플로우(294090)가 주가 3만원→1490원의 뼈아픈 2년을 보낸 곳이다. 메드트로닉에 인수를 논의하던 때 서둘러 마련한 공간이지만 미국 인슐렛이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걸어와 딜이 무산되었고, 소송전을 벌이는 동안 직원들의 일터가 됐다. 그간 회사는 소송비용으로 손실폭이 커지고 자본은 줄어들어 지난 3월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이제는 비용절감을 위해 이사를 준비 중이다. 최고점과 최저점을 모두 겪은 공간을 뒤로 하고 항소를 바라보고 있다.
 | 이오플로우가 지난 2년간 자리한 휴맥스빌리지(사진=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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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본심 판결, 영업비밀 4가지 침해…849억원 배상 및 ‘영구금지명령’ 이오플로우는 향후 6개월간만 유럽(EU)과 한국에서 기존 이용자들에 인슐린펌프 제품을 판매할 수 있고 이후로는 전세계적으로 판매가 ‘영구금지’되는 내용의 1심 판결을 받아들었다. 적극적으로 항소하겠다는 취지로 투자자 미팅을 지속하고 있지만, 향방은 약속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항소 끝에 회사가 상폐·청산의 기로를 걸을지 기사회생할지,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매사추세츠 법원이 내린 1심 최종 판결은 이오플로우가 인슐렛의 영업비밀 4가지를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옴니팟에로스의 디자인히스토리파일(DHF) △옴니팟의 컴퓨터지원설계(CAD) △혈관폐색감지 알고리즘(ODA) △옴니팟 소프트캐뉼라다.
이에 대한 1심 본심 결론은 금전적 손해배상만으로는 부족, 이오플로우의 이오패치2 등 제품을 전세계에서 영구적으로 판매하지 못하는 ‘영구금지명령’(permanent injunction)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다만 앞서 12월 배심원 평결에서 제시한 6337억원의 배상금은 이오패치 및 관련제품의 지속 판매로 미래 발생할 피해까지 염두에 뒀던 것으로, 이중배상을 방지하기 위해 금전배상 규모는 849억원으로 축소조정했다.
기존 이오패치를 이용하던 당뇨환자들이 타 제품으로 갈아탈 시간을 벌어준다는 취지에서 기판매국인 EU와 한국에서는 6개월간 판매를 지속할 수 있다. 연매출 50억~60억원 정도의 현금흐름을 내던 것을 반년간 이어갈 수 있는 내용이다.
이번 판결은 이오플로우의 유일한 상업화된 제품의 판매기로가 막히는 것으로, 회사의 존폐가 걸린 일이라고 재판부를 설득했으나 전혀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면 될 일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
이오플로우는 △제척기한 △영업비밀 침해 여부 △침해의 고의성 △배심원 평결 손해배상금 규모의 부당성을 재논의하기 위해 새로 재판을 열어달라고 상정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영업비밀 침해’로 약 4년어치의 시간과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영구금지’를 판결했다.(자료=이오플로우-인슐렛 1심 판결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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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영업비밀 침해 사건의 가처분(injunction) 기간은 독자적 연구개발(R&D)을 진행했더라면 소요했을 기간 정도다. 이 사건의 경우 이오플로우가 인슐렛의 영업비밀을 확보해 개발기간을 3년 반에서 4년 가량 단축시킨 것으로 판단했지만, 여기서 나아가 그간 인슐렛에 제대로 된 경쟁자가 한 곳도 없던 사실을 근거로 인슐렛 제품의 ‘역설계’(reverse engineering)가 불가능할 것이라며 영구금지명령을 내렸다.
이어진 판결문에서는 한때 인슐렛의 최대 경쟁업체인 메드트로닉이 이오플로우를 인수하려고 했던 점에서, 기타 경쟁업체들이 이오플로우 인수로 인슐렛의 핵심 영업기밀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언급됐다. 영구금지명령이 이오플로우 인수합병(M&A)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결정임을 명시했다.
이오플로우는 2023년 10월 김재진 대표 구주 564만680주(18.54%)를 주당 3만원, 총 1692억원에 메드트로닉홀딩스코리아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지만 인슐렛 소송으로 같은 해 12월 계약이 취소됐다.
인슐렛 소송이 발발하고 불과 2년 만에 이오플로우 주식은 메드트로닉 M&A 주당가 대비 95% 하락한 1490원에 거래정지된 상태다.
김재진 이오플로우 대표는 이데일리에 “기존의 현금흐름을 유지한 채 하루라도 빨리 항소심을 시작할 것”이라며 “제척기간으로 항소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말했다.
‘제척기간’ 여전한 핵심 논쟁 포인트 제척기간이란 인슐렛이 이오플로우에 소송을 걸 수 있던 법적 유효기간이다. 영업기밀 침해 의심이 있던 시점으로부터 3년이 경과한 이후에는 소송이 무효하다는 내용이다.
이오플로우 측은 앞서 2018년과 2019년 열린 학회에서 이오패치2 프로토타입이 소개되었을때 이미 인슐렛 측에서 점검하고 시비를 가렸어야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1심 재판부에서는 당시 이오패치2가 옴니팟과 전혀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고 홍보되었고, 이오패치2를 입수해 분해 조사하지 않았더라면 영업기밀 침해 사실을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이오패치2는 상업화된 제품이 아니었기에 인슐렛이 조사에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 또한 인슐렛 전 고위임원인 루이스 말레이브(Luis Malave), 스티븐 딜라니(Steven DiIanni), 이안 웰스포드(Ian Welsford)가 이오플로우에 재직한 사실을 인슐렛이 인지하고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이들의 재직사실만으로 영업비밀 침해를 단정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말레이브는 무고하다고 결론지었고 딜라니, 웰스포드에는 올 2월 별도의 판결을 내렸다.
이번 1심 본심 판결에서는 이오플로우와 미국법인, 미국 자회사 네프리아바이오(Nephria Bio)와 김재진 대표만 책임을 물었다. 김 대표는 특히 고의적으로(willfully) 그리고 악의적으로(maliciously) 인슐렛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이로 지적됐다.
 | 인슐렛 옴니팟(위)과 이오플로우 이오패치3 프로토타입(아래)의 분해모습(사진=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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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이데일리에 “이오패치는 구동부를 전혀 새롭게 만들어 인슐렛의 옴니팟보다 배터리를 적게 사용한다. 이로 인해 더 오랜시간 착용이 가능하고 무게가 현저히 가벼워 웨어러블 기기로서 시장경쟁력이 크다”며 “역설계는 불법이 아니다. 이번 1심 재판부는 인슐렛에 편파적이었다. 시장에 여러 플레이어가 존재해야 환자들에게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수 있고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특허를 뺏긴다는 내용은 핵심 기술과 전혀 관계없는 소프트웨어의 극히 일부이고, 회피 가능한 건”이라고 말했다.
이오플로우는 지난 1월 조건부환매수로 유휴자산을 80억원에 매각해 당장 항소에 필요한 현금을 마련했다. 승소 후 영업을 이어가려면 해당 유휴자산을 260억원에 되사와야 한다. 항소에 패소해 회사 청산 시 갚아줘야 할 290억원의 전환사채(CB)가 있다.
별개로 회사가 상장폐지를 막으려면 추가 조달이 필요해 보인다. 앞서 1심 소송에 지출한 500억원대 소송비용 탓에 이오플로우는 최근 3년간 2회 이상 자기자본 50% 이상의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이 발생했고, 현재 거래정지 상태다. 올해 법차손을 줄이거나 자기자본을 늘리지 않으면 상장폐지 되는 수순이다. 이에 외부 자금조달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이제 1심의 불확실성이 제거됐으니 항소를 진행할 것이고 여유자금 확보를 위해 투자자 미팅을 진행 중”이라며 “유럽은 별도 합의가 있어서 6개월보다 좀 더 판매할 수 있다. 6개월은 긴 시간이다. 그 전에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