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왕해나 기자] “화이자-바이오엔테크 95%, 모더나 94%.”
코로나19 백신의 예방효능 성적입니다. 예방효능이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입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는 확률을 말하는데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62%, 얀센 백신 66%에 비해 월등합니다.
양사의 백신이 예방효능이 높은 것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이어서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mRNA 백신은 바이러스 유전정보를 담은 백신을 말합니다. mRNA를 투입해 코로나19를 둘러싼 쇠뿔 모양 돌기인 스파이크 단백질 성분을 체내에 만들도록 하면서 면역력을 생성하는 방식입니다. 몸이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황으로 착각하면서 스파이크 단백질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내는 거죠.
mRNA 발견은 1961년…면역반응·체내 전달 걸림돌놀라운 점은 mRNA 백신이 세상에 처음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과거에는 백신에 진짜 바이러스를 사용했습니다. 바이러스를 가열하거나 화학물질 처리해서 병원성을 잃게 만든 다음 몸에 집어넣어 항체를 형성했죠. 수두, 장염, 홍역, 장티푸스 백신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백신들은 예방효능은 좋지만 균 자체를 주입하기 때문에 바이러스의 병원성이 살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제조 기간이 길며 장기간 보관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mRNA 백신은 코로나19의 유전정보만을 이용해 체내에서 이와 유사한 단백질을 만들도록 합니다. 병원성에 감염될 우려도 없고 게놈 DNA 삽입에 의한 돌연변이 유발 위험도 적습니다. 정상적인 세포 대사 과정을 통해 분해되기 때문에 체내 반감기(효능이 줄어드는 기간)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재료인 뉴클레오사이드를 조금만 변형하면 안정성과 단백질 합성과정의 효율을 증가시킬 수도 있었죠. 이렇게 좋은 mRNA 백신은 왜 이제야 개발됐을까요.
사실 mRNA는 1961년 최초로 발견됐습니다. 과학자들은 ‘단백질 설계도’ 역할을 하는 mRNA 존재를 규명했죠. 이후로도 mRNA를 직접 몸에 넣는 의약품으로 만들자, 바이러스 예방에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열기는 곧 식었습니다.
mRNA의 한계점 두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몸이 mRNA를 침입자로 인식해 공격하고 그 과정에서 과도한 면역반응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또 체내 효소로부터 잘 분해되는 특성 때문에 세포 안으로 주입해 효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동물실험 결과 mRNA 분자 1만 개당 1개 정도(0.01%)만 전달됐으니까요.
첫 번째 과제는 1970년대부터 mRNA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던 카탈린 카리코 펜실베니아대 교수가 해결했습니다. 2005년 mRNA 염기서열 중 하나인 유리딘을 메틸수도유리딘으로 바꿔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mRNA를 합성할 수 있음을 밝힌 겁니다. 2014년에는 mRNA 염기 서열 엔지니어링을 통해 단백질 합성 과정의 효율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로버트 랭거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해답을 내놨습니다. 랭거 교수는 20년 이상 나노 과학을 연구한 관련 분야 1인자입니다. 인지질(이온화 인지질·ionizable lipid), 콜레스테롤, 폴리에틸렌글리콜(PEG)로 만든 지질나노입자(LNP·lipid nanoparticle)가 mRNA를 세포 안까지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mRNA 백신 개발을 위한 기반 기술이 완성된 셈이었습니다.
백신 설계까지 단 며칠…콜드체인·부작용 해결 과제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증상은 감기와 비슷했지만 감염력은 훨씬 높았죠. 몸에서 심각한 염증과 폐섬유화를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2020년 1월 중국 과학자들이 우한에서 퍼지기 시작한 코로나19 유전자 서열을 공개하자 그동안 mRNA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는 며칠 내 mRNA 백신을 설계했습니다. 카리코 박사나 바이오엔테크의 백신 개발 프로그램을 이끌고 랭거 교수가 모더나의 창립자로 합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양사의 백신은 수만명을 상대로 진행한 임상 3상에서 놀라운 결과를 나타내며 2020년 12월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습니다. 백신 개발에 착수한 지 단 1년 만이었습니다. mRNA 백신은 이제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단점도 존재합니다. mRNA는 깨지기 쉬운 구조여서 화이자 mRNA 백신의 경우 영하 70도 상태에서 유통해야 하고 모더나 백신 역시 영하 20도에 보관해야 합니다. 접종 과정에서는 드물지만 심근염·심낭염 발생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알파·베타·감마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얼마나 예방효능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제약업계는 2세대 mRNA 백신을 준비 중입니다. 콜드체인(저온유통체계)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상온에서도 안정적이고 부작용 가능성을 낮추며 변이에도 대응할 수 있는 백신입니다. 이재현 기초과학연구원 연구위원(연세대 교수)은 “변이는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나 구성물질 일부분이 달라지는 것인데 그 구성물질을 만드는 것이 RNA”라면서 “해당 부위의 RNA 염기서열 알 수 있다면 거기에 맞는 RNA 백신을 바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새로 만들어진 mRNA 백신이 체내에 들어가면 세포가 조금 달라진 단백질을 인식해 다시 항체를 만든다”면서 “다른 종류 백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쉬운 공정이며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주요 mRNA 암 예방백신 파이프라인.(표=각 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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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NA, 희귀질환 치료제 및 암 백신으로 영역 확대과학자들은 mRNA가 백신을 넘어 생명공학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인플루엔자, 지카바이러스, 말라리아 등에 대한 mRNA 백신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고 인류 최대 난제인 암 백신 활용 가능성도 열리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 인더스트리 아날리스트(GIA)는 mRNA 백신 시장 규모가 2021년 649억달러(약 75조원)에서 연평균 11.9% 성장해 오는 2027년에는 1273억달러(약 14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모더나는 mRNA 치료제·백신 파이프라인 24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15개가 사람 임상 단계에 진입해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을 제외하고는 거대세포바이러스(CMV) 백신 mRNA-1647이 가장 앞선 단계로 올해 임상 3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A형 독감 바이러스(H1N1, H3N2)와 B형 독감 바이러스(야마가타, 빅토리아)뿐만 아니라 미국 머크와 협력해 암 백신 2종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독일 바이오엔테크와 큐어백, 벨기에 에테르나도 각각 mRNA를 이용한 말라리아 백신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바이오엔테크는 오는 2022년 말까지 임상시험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연구 중입니다. 큐어백은 흑색종 환자를 위한 새로운 mRNA 백신인 CV8102와 비소세포폐암 백신 CV9202를 개발 중입니다.
모더나 창립자 중 한 명인 데릭 로시 교수는 “코로나19가 mRNA 의약품을 내는데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확실하다”면서 “우리는 5년 이내에 비백신 mRNA 치료제를 갖게 될 것이며 향후 10년 동안 25~30개의 관련 약물이 승인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