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의 글로벌 수준 성장을 위해서는 이원화된 정책이 필요합니다. 3년차까지 초기기업은 제한된 예산 안에서 지원하되, 가능성이 보이는 4년차 이상 기업은 스케일업(Scale-up, 성장)을 통해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확실한 규모의 지원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지난 18일 이데일리와 화상인터뷰를 진행한 김진한 스탠다임 대표는 “설립 초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만든 기술창업플랫폼 ‘팁스(TIPS, 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와 후속지원정책인 ‘포스트팁스(Post-TIPS)’를 비롯해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을 통해 진행한 정부과제가 빠른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도 “3~4년차 이후부터는 이런 정책만으로는 글로벌 기업들의 스케일을 쫓아가는 데 한계가 있더라”며 이같이 말했다.
| 김진한 스탠다임 대표 (사진=스탠다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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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다임은 지난 2015년 삼성종합기술원 출신 연구자 세 명이 창업한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회사다. 제약사들과 손잡고 AI 기술을 신약개발에 접목해 통상 2년 이상 걸리던 신약 후보물질 개발을 수개월 수준으로 단축시키는 것을 사업모델로 한다.
창업 당시만해도 AI 신약개발 회사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드물었다. 스탠다임이 AI 신약개발이라는 아이템의 가능성을 보고 일찌감치 뛰어든 셈이다. 김 대표는 “창업할 때는 스탠다임이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설립된 유일한 AI 신약개발 회사였지만 알파고의 등장을 거쳐 2019년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이제는 수백 개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후 빠른 성장을 거쳐 스탠다임은
SK케미칼(285130),
HK이노엔(195940),
한미약품(128940) 등 국내 제약사들과 손을 잡았고 계약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유럽 빅파마(Big Pharma)와도 신약개발 계약을 맺었다. 미국 빅파마와도 현재 신약개발 협력을 논의 중이다.
AI 신약개발 분야는 최근 미래 가치를 인정받아 경쟁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많아졌지만 이제 막 성장을 시작하는 단계다. 이 때문에 초반 경쟁에서 기반을 잘 닦으면 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로 나설 기회도 많다. 김 대표는 “지금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업이 영국의 엑사이언티아이고 그 다음은 홍콩에 본사를 둔 인실리코메디슨인데 스탠다임은 이들 다음 그룹에는 속한다고 본다”며 “엑사이언티아와 스탠다임의 기술수준에는 2년 정도의 격차가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난해 나스닥에 상장한 엑사이언티아는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와 종양 및 면역학 분야에서 최대 15개 약물 개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2020년에는 세계 최초로 AI 기반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시업에 진입하기도 했다. 스탠다임 역시 연내 전임상 단계 후보물질을 선정해 내년 중 일부 파이프라인의 임상시험 진입을 계획 중이다.
설립 8년차인 스탠다임은 최근에는 규모확장에 집중하고 있다. AI 신약개발의 거점인 영국과 미국에 현지법인을 세운 것도 스케일업을 위해서라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어느 나라, 어느 기업이든 AI 최고급 인력을 10명까지 모으는 건 어렵지 않다”며 “문제는 스케일업 단계에서 이와 비슷한 수준의 인력을 추가로 모집할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스탠다임 규모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더 좋은 인력 풀에서 AI 인재를 모집하고 싶어 영국과 미국에서 현지법인을 세우게 됐다”고 덧붙였다. 현지법인을 세운 이후 UK바이오뱅크와 지노믹스잉글랜드와 같은 유전체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는 성과도 거뒀다.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만 42개에 달하는 스탠다임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기술수출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꾸준히 차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규모확장을 이어가려면 코스닥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필수적이다. 지난해 기술성 평가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코스닥 입성에 실패한 스탠다임은 내년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신약개발산업 자체가 발전해 글로벌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한 나라의 기초과학부터 생태계가 갖춰져야 하지만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AI 신약개발 산업은 조금만 더 투자하면 선두로 나설 수 있다”며 “잘하는 기업들은 기술특례 상장을 통해 규모를 확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