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광수 기자] 다국적 제약·바이오테크들이 올해 들어 약속이나 한 듯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모시장이 부진한데다, 신약의 상업적인 실패와 임상 실패 등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부닥치면서다. 꾸준히 발생하는 실적이 없고 외부 투자금에 의존해야 하는 바이오테크 특성상 경영진은 비용 절감의 한 방법으로 정리해고를 선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형 바이오테크, 이제 새로운 운영방식 찾아야 해”제약·바이오 전문 매체 피어스 바이오테크는 올해 들어서 45개사의 바이오테크가 인력감축에 나섰다고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바이오테크의 정리해고 흐름은 작년 4분기부터 가시화됐는데, 올해 들어 유독 거세지고 있다.
정리해고에 직면한 바이오테크는 지난해 4분기 9개사였는데, 올해 1월에만 8개사가 추가로 정리해고 계획을 밝히며 급증했다. 2월에는 5개사, 3월에는 17개사, 이달 들어서만 15개사가 정리해고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넥타 테라퓨틱스 (사진=넥타 테라퓨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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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셀리도니오(Eric Celidonio) 모더나(MRNA) 전(前) 인재 영입 책임자는 “소규모 기업이 인력을 줄이거나 새로운 운영방식을 모색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물결의 시작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공모 시장이 부진하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바이오테크 인력 검색 업체 슬론 파트너스의 레슬리 러브리스 대표(CEO)는 “바이오 산업의 급격한 확장 이후에 지금처럼 큰 규모의 정리해고를 본 적이 없다”며 “증시 불안으로 보다 더 안정적으로 여겨졌던 상장기업의 감원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임상·신약 상업화 실패에 대규모 인력감축시장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넥타 테라퓨틱스(NKTR)의 사례다. 700여명이었던 넥타의 인력은 200명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다국적 제약사 브리스톨 마이어 스퀴브(BMS)의 면역항암제 ‘옵디보’와 인터루킨2(IL-2)을 병용투여하는 임상3상에서 효능 입증에 실패한 영향이다.
무엇보다도 BMS와 역사적인 파트너십 계약이 깨지는 것이기에 시장에서 받아들이는 충격은 더 컸다. 넥타는 지난 2018년 BMS와 36억달러(약 4조6000억원)규모 ‘빅딜’을 체결하고 IL-2를 공동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조직 축소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넥타 입장에서는 당장 필요한 것은 현금이다. 넥타는 7억달러(약 9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해고로 연간 1억2000만달러(약 1550억원)의 비용을 줄이게 된다.
넥타의 주가도 곤두박질 쳤다. 임상 실패는 물론 BMS와 공동 개발도 중단되면서 주가는 60%이상 하락했다. 시가총액은 1조원 이상 증발해 1조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18년 BMS와 파트너십 이후 넥타의 주가는 주당 10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현 주가 수준(주당 4.26달러)은 넥타의 창립 초기인 1990년대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바이오테크 뿐만 아니라 다국적 제약사도 M&A나 조직 단순화 등의 절차에서 해고를 단행했다. 노바티스는 종양과 제약부서를 혁신 의약품부서로 통합하는 등 조직을 변경하며 인력 감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정확한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최대 수천명의 자리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한 머크는 지난해 액셀러론을 인수했다. 지난달 액셀러론 부서에서 143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바이오젠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아두헬름의 상업적인 실패로 1000명 규모의 인력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셀리도니오 모더나 전(前) 인재 영입 책임자는 “신생기업을 합병하려는 움직임, 포트폴리오 결합과 ‘패자(임상 실패)’의 등장 등으로 업계는 앞으로 더 높은 정리해고 비율을 예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