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유림 기자]
피씨엘(241820)이 한국의 ‘혈액선별기’ 자주권 확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헌혈하는 모든 혈액은 질병 유무 판단이 필요하며, 현재 우리나라는 100%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올해 국내 공급에 성공, 국산화에 안착할 경우 30조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 진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 피씨엘 대형 혈액선별기 제품 ‘하이수’. [사진=피씨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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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피씨엘은 최근 제3자 배정방식의 30억원 규모 유상증자와 375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해 총 405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원재료 확보 및 다중면역진단 제품 납품 준비에 사용할 계획이다.
피씨엘이 조달한 자금을 투입하는 다중면역진단 제품은 ‘대형 혈액선별기’다. 혈액선별은 헌혈받은 혈액을 수혈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절차다. 에이즈, C형 간염, B형 간염, 매독, 인간T세포 백혈병 등 감염 여부를 체크해 수혈이 이뤄지는 만큼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장비다.
피씨엘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대형 혈액선별기 개발에 성공했다. 혈액선별기 ‘하이수(HiSU)’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2016년 4등급 허가를 받았다. 체외진단의료기기의 등급 분류는 안전관리 수준이 높은 순서에 따라 1~4등급으로 분류되며, 4등급이 위험한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가장 높은 등급이다. 코로나19를 위한 PCR 진단키트 및 항체검사키트는 3등급이다.
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진단키트 전문업체 중 유일하게 4등급 제품 개발 경험이 있다. 4등급은 고위험군 바이러스를 다루기 때문에 허가기준 민감도가 1% 오차도 허용 안 되며, 100%여야 한다”며 “코로나 진단키트는 3등급이지만, 피씨엘은 4등급 품질 기준으로 개발해 해외에서도 신뢰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대한적십자가 모든 혈액을 관리하고 있으며, 단 한번도 국산 혈액선별기를 사용한 적이 없다. 애보트 프리즘, 지멘스 비프리 등 해외 장비가 중앙(서울)과 중부(대전), 남부(부산) 등 전국 3개 혈액검사센터에 설치돼 있다.
‘하이수’ 성장은 오는 5월 조달청 입찰 성공 여부가 관건일 것으로 관측된다. 피씨엘은
LG화학(051910)과
동아에스티(170900) 등과 진단시약을 함께 공급하는 방식으로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입찰에 참여한다. 입찰에 성공하면 피씨엘은 대한적십자사에 500억원 규모의 대형 혈액선별기 40대를 혈액검사센터 3곳에 공급, 최소 5년 이상 고위험군 바이러스 검사용 시약도 납품하게 된다.
피씨엘은 혈액선별기 자주권 확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 대표는 “하이수는 피씨엘 시약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시약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해외 기기는 자사 시약만 써야 되며 여러 변수에 대비하기 힘들다”며 “코로나 사태 초창기에도 글로벌 기업이 진단키트 시약을 자국부터 물량을 보내면서 공급 부족이 생긴 것처럼 혈액선별기 역시 자주권을 이루지 못하면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20년전 혈액선별기를 전부 자국 회사로 바꾸면서 전폭 지원했으며, 시스멕스와 후지레비오는 세계적인 혈액진단 기업으로 뻗어 나갔다. 하지만 하이수는 수년 전에 유럽 CE-IVD(의료기기 인증) 최고 등급 List A를 받아 놓고도 자국 판매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었다.
피씨엘은 올해 하이수가 국내 공급에 성공하게 된다는 가정하에 전 세계 수출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이수는 CE 인증을 이미 받은 유럽뿐만 아니라 식약처 허가를 인정해주는 동남아와 중동 등 40~50개국까지 수출할 수 있다. 피씨엘은 혈액선별기 글로벌 30조원 시장에서 10% 점유율, 3조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번에 또 외국산 기기가 들어가면 10년 후에나 도전할 수 있으며, 국산 시장 성장은 다시 정체될 수밖에 없다. 혈액선별시장 자주권 확보를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