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야심차게 출발한
진원생명과학(011000) 위탁생산(CMO) 사업이 초반부터 삐걱대고 있다. 자금난을 돌파하고자 CMO 사업으로 턴어라운드를 노렸지만, 아직까지 수주 계약을 한 건도 따내지 못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 VGXI 신공장 내부 사진과 대규모 발효기.(사진= 진원생명과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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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진원생명과학은 상반기 매출 263억원, 영업손실 16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특히 영업손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94억원) 보다 72% 가량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 같은 영업손실은 지난 2004년 이후 18년째 이어지고 있다.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220억원)과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특히 상반기 판매관리비가 25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62억원)보다 57% 가량 증가했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등 연구 개발에 투입된 비용이 늘면서다.
진원생명과학은 앞서 지난 4월까지만 해도 ‘올해 매출 1000% 증가’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유전자 치료제 주요 원료인 플라스미드 DNA(pDNA) CMO 사업 확장으로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기존 pDNA CMO 사업에서 나오는 매출은 최근 3년 간 매년 200억원 수준이었는데, 증설을 통해 10배 달하는 실적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회사는 지난 6월 100% 지분을 보유한 VGXI 미국 1공장에 1단계 시설 증설을 마쳤다. 1단계 시설 총 생산 규모는 3000리터로, 기존 700리터 규모에서 4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회사는 2023년까지 4500리터 규모 2단계 시설 증설을 통해 공장 규모를 7500리터로 늘린다는 목표다.
하지만 완공 후 아직까지 단 한 건의 계약도 체결하지 못한 상황이다. 통상 생산 계약이 완공 전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보통은 설비를 증축하기 전 시장 수요를 파악하고 잠재적 고객도 어느 정도 확보를 해놓고 증축에 들어간다. 그래서 완공되기 전에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일부 회사들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파트너사와 신약 개발부터 생산까지 맡는 전략으로 파이프라인을 채우는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전략들이 없으면 공장 완공 후에도 수주를 받지 못해 놀고 있는 공장들을 요즘 많이 본다”고 말했다.
진원생명과학 측은 계약 체결 소식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로 악화된 경기 상황을 언급했다. 이자율 상승으로 유동성이 축소되면서 바이오 업계 연구개발(R&D) 비용 조달이 크게 어려워졌다. 통상 바이오 기업은 투자금을 받아 생산을 의뢰하는데, 자금 유치가 어려워지면서 생산 계약 일정도 지연되고 있다는 것.
진원생명과학 관계자는 “수주 논의와 당초 목표했던 매출 달성 시기가 지연되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공장 완공 전부터 영업활동을 해왔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결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매출 1000% 증가는 여전히 유효한 목표”라며 “현재로서는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남은 하반기 동안 가동률이 높아진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백신 이후 CMO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도 위협 요소다. 당장 삼성과 롯데 등 대기업이 대규모 설비 투자를 통해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사업 속도나 생산량 측면에서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진원생명과학이 주력으로 하는 pDNA는 국내 대형 CMO 기업도 생산을 고려하고 있는 품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공장 완공 시 항체의약품 중심에서 mRNA(메신저리보핵산), pDNA, 바이러스 벡터 등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의약품 CMO 사업에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올 상반기 출범한 롯데바이오로직스도 세포·유전자 치료제 CMO 사업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업계 관계자는 “대형 CMO 기업은 대량 생산 등으로 가격 경쟁력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는 만큼, 중소형 기업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대형 CMO 기업이 낮은 단가를 무기로 시장에 진입한다면 중간급 설비를 갖춘 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