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미국 생물보안법 강화로 보는 게 맞다.”
국내 의약품 위탁생산개발업체(CDMO) 고위 관계자의 진단이다. 당초 중국 바이오 기업 제재를 주요 골자로 한 생물보안법은 순조로운 입법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생물보안법은 지난 3월 6일 상원 상임위원회에서 11대 1로 통과됐다. 하원에선 지난 5월 15일 40대 1로 통과됐다. 생물보안법은 만장일치에 가까운 통과되며 법안 통과 가능성을 높여 왔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하원의 국방수권법(NDAA) 수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장 혼란이 가중됐다. 즉, 국방수권법에 생물보안법을 포함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중국 바이오 기업을 제재하려했던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 소마젠의 연구원이 유전체를 분석하고 있다. (제공=소마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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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수권법은 미국 연방 의회가 매년 통과시키는 법률이다. 이 법안은 미국의 국방 및 안보 전략을 지원하고, 재정을 지원한다. 국방수권법은 매년 갱신된다. 하원 규칙위원회는 국방수권법에 제출된 1400건의 국방수권법 가운데 생물보안법 등을 제외하고 350건만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환자 데이터와 세금이 중국 바이오기업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제재 대상 분명히 하고 규제 대상 확대가 핵심”국방수권법에 생물보안법이 제외되면서 시장에선 중국 정부 및 업계 관계자들의 로비가 통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국내 CDMO 및 CRO 업계에선 이 같은 시장 평가에 선을 그었다.
국내 유명 CDMO의 고위관계자는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다들 생물보안법 통과가 한풀 꺾인 것으로 해석하는 데 완전히 잘못됐다”며 “현재 미국 내 분위기는 생물보안법의 규제 대상 범위를 넓히려는 것이 팩트”라고 최근 언론보도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이어 “생물보안법 규제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방수권법 포함 여부를 일부러 표결하지 않은 것”이라며 “좀 더 강력한 확정 법안을 가지고 심의하자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생물보안법 통과 시점에 대해서는 늦어도 연내 유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성호 바이오경제학회장(경기대 교수)은 “바이오 기술이 미국 입장에서 국민 보건이나 국가 안보, 공급망 확보에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시간문제이지 입법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재선 위해서라도 11월전 통과 유력”CDMO 관계자는 “원래 생물보안법이 7월 4일 통과 예정이었다”며 “그날은 바로 미국 독립기념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중국 바이오 기업 제재하는 생물보안법을 통과시키려 했을 만큼, 미국에선 이 법안을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재선을 앞두고 11월 이전엔 생물보안법 단독으로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이어 “미국은 이 법을 통해 중국을 글로벌 바이오 공급망에서 퇴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생물보안법을 통과시킬 방안이 여럿 존재한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의약품위탁생산(CMO) 업계 관계자는 “생물보안법은 독립적인 법안으로 추진할 수 있다”며 “또 다른 입법 패키지에 포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 자체가 민주당, 공화당을 넘어 초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며 “미국의 안보,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선 이 법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미국 정치권에 폭넓게 형성돼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 바이오 공급망 中 퇴출 기조...韓은 곳곳에서 잭팟 국내 바이오 업계 수혜가 곳곳에서 감지되는 것도 생물보안법 연내 통과 유력 관측을 뒷받침한다.
최 교수는 “위탁생산, 원료의약품 등 여러 부문에서 (국내 기업의) 반사적 이익이 기대된다”며 중국 CDMO 물량의 상당액을 국내 기업 몫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마크로젠(038290) 자회사인
소마젠(950200)의 경우 미국 국립보건원의 적극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파킨슨병 유전체 분석 15만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8만개 수주가 결정됐다. 다국적 제약사 반열에 오른 모더나 역시 소마젠에 80억대 추가 계약을 하며 이 같은 기조에 편승했다. 같은 기간 중국 유전체 업체들은 미국 정부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이름 자체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 바이오 회사로부터의 수주도 급감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CDMO 기업들의 수혜도 시작됐다. 미국 내 중국 CDMO 물량은 연간 1조40000억원 내외로 추정된다. 이 물량 중 상당수를 국내 CDMO가 흡수해 나가는 모양새다.
당장 한 글로벌 제약그룹이 지난 5월 충북 오송에 위치한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334970) 공장을 3일 간 실사했다.
프레스티지바이오로직스 측은 “지난 3월 이후 중국 CDMO기업에 의약품 생산을 맡기고 있는 국내 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의 문의가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2일 공시를 통해 미국 소재 제약사와 10억6000만달러(1조4636억원) 규모의 CMO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수주한 계약 중 역대 최대 금액이다. 지난해 수주 금액 3조 5009억원의 42%에 해당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CDMO 톱3로 분류되는 스위스 론자, 중국 우시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꼽는다”며 “삼바가 생물보안법에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에스티팜(237690)도 대표 수혜기업으로 꼽힌다. 올리고 CDMO를 비롯 유럽(스위스, 스페인)에 비임상 CRO를 보유해 반사이익이 크다는 분석이다. 에스티팜 관계자는 “우시그룹에서 올리고 생산을 담당하는 우시STA 물량 중 일부가 에스티팜으로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며 “생물보안법 이후 원료의약품 조달처 전환을 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상태에선 우시에서 생산한 올리고를 이용해 의약품을 제조하더라도, 미국 내에서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밴더 전환의 이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