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글로벌 트렌드가 동물실험 최소화로 흘러가면서 비임상 임상시험수탁(CRO)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신사업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당장 동물실험 시장 규모가 줄지는 않을 전망이지만 선제적으로 돌파구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1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동물실험 없이도 의약품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식품의약품화장품법’ 개정을 올해 통합세출법에 포함시켰다. 컴퓨터 모델링이나 장기칩, 세포기반 분석(cell-based assay) 등이 동물실험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물실험이 매출원이었던 비임상CRO 업계는 활로 모색에 나섰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체의약품 신약개발에 필수 단계였던 동물실험 비중이 축소될 때를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매년 비임상CRO로 수백억원의 매출을 내던 선두 업체들은 ‘동물실험이 아예 없어지려면 한 세기는 걸릴 것’이라면서도 동물실험 의존도를 낮추고자 하고 있다.
| (자료=노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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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1위 노터스, 특기 극대화해 포트폴리오 확장국내 비임상CRO 업계 선두주자인
노터스(278650)는 동물임상 대신 장기를 적극 활용한다는 방향으로 전략을 짰다. 동물의약품 CRO는 그중 하나다. 인체의약품 대상 동물실험이 위축되더라도 동물의약품 개발에는 동물실험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동물권에 대한 인식 증대로 가축 대상 의약품 시장과 반려동물 의약품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더해졌다. 노터스는 관계사인
HLB생명과학(067630)이 리보세라닙을 동물용 항암제로 개발하고 있어 이에 대한 CRO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효성 시험 설계 경험이 많다는 강점을 살려 신약개발 컨설팅 서비스도 본격적으로 제공할 방침이다. CRO는 크게 효능평가와 독성평가 분야로 나뉘는데, 노터스가 주로 제공하는 효능평가 서비스는 약리와 효력, 기능성과 같은 유효성을 시험한다.
회사 관계자는 “동물실험으로 유효성 검증을 하다보면 신약개발 전 과정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므로 전임상뿐 아니라 인체 대상 임상디자인에도 유효한 컨설팅이 가능하다”며 “기존 연 1000건 수준인 신약개발 컨설팅 사업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가노이드’도 비임상CRO가 잘 한다”코아스템켐온(166480)의 비임상CRO 사업부는 오가노이드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코아스템켐온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사인 코아스템과 비임상CRO 기업 켐온이 지난해 합병해 탄생한 기업이다.
오가노이드란 줄기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 장기유사체로 ‘미니 장기’나 ‘유사 장기’라고 불린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지금 당장의 기술 수준으로는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데도 일부 동물실험이 필요해 실험동물의 희생을 ‘제로’로 만들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동물실험 완전 대체를 목표로 한다.
코아스템켐온은 켐온 시절부터 일찌감치 오가노이드 사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비임상CRO 사업과 오가노이드 기술 간 시너지는 필연적이라고 봐서다. 켐온은 2016년 충북대 의대가 주관하는 ‘인간 뇌 생체모사칩 기반 원발성 및 전이성 뇌암 체외 동반진단시스템 개발’ 국책과제에 참여하며 관련 연구를 시작한 바 있다.
코아스템켐온에서 비임상CRO 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송시환 대표이사(사장)는 “켐온은 수년전부터 오가노이드 관련 준비를 해 왔고 비임상CRO 기업 중에서는 유일하게 오가노이드팀과 대체시험센터를 설립해 동물대체시험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앞으로 코아스템의 줄기세포 연구능력을 비임상CRO에 접목하면 오가노이드 기술 개발에 더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 사장은 “우리가 개발한 ‘오간 온 어 칩’(Organ on a Chip), 즉 장기칩으로 약물이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국가과제를 통해 증명했다”며 “규모는 작겠지만 올해부터는 장기칩으로 실제 매출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기칩은 장기와 조직의 주요 기능을 모사한 소형장치를 말한다. 회사는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서 후보물질을 스크리닝하는 데 장기칩이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본다.
| 한국동물보호연합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동물실험 중단’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2.08.31.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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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실험 당장 줄지 않겠지만…“영장류·개 실험 위축은 필연”제약·바이오산업이 성장하면서 국내 동물실험 건수도 늘어나는 추세다. 2021년 기준 국내에서 진행된 동물실험에 약 488만 마리의 동물이 이용됐는데, 이는 전년 대비 17% 늘어난 수치다.
업계전문가들은 동물실험을 대체하자는 움직임이 당장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비임상CRO 업계 관계자는 “2013년부터 세계적으로 화장품 분야에서의 동물대체법이 확대되는 추세임에도 완전히 동물실험이 대체되지는 않는 실정”이라며 “법이 통과됐다는 뉴스가 나왔지만 발효일이 언제냐도 지켜봐야 하고 동물실험 대체법이 동물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당장의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선진국을 중심으로 영장류나 개 대상 동물실험 시장은 확실히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03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유럽은 고등 영장류를 이용한 실험을 금지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영장류나 개 실험은 법적으로 금지하는 분위기가 자리잡았고 여기에 원숭이 실험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조달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까지 더해졌다”며 “단기적으로도 영장류, 개 실험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무역협회 국제통상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비임상CRO 시장 규모는 총 5110억원 수준이다. 2021년 매출 기준 노터스는 국내 시장 1위(470억원), 켐온은 3위(291억원)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