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녹십자 CMO 생산 진짜 하나”. 하나금융투자가 13일 내놓은 녹십자 보고서 중간제목이다.
녹십자가 지난 10월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으로부터 5억 도즈 규모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을 의뢰 받았지만 구체적 계약소식은 이날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구체적인 계약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녹십자의 코로나19 백신 CMO에 대한 기대가 의구심으로 바뀌고 있다.
|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준비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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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민간기구 전염병예방혁신연합(CEPI)은 지난해 10월 21일 GC녹십자, 스페인 바이오파브리(Biofabri)와 10억 도즈 분량의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 합의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GC녹십자는 지난 3월부터 내년 5월까지 1년 2개월간 5억 도즈(1회 접종분 기준) 이상을 위탁생산하기로 했다.
이 합의대로라면 녹십자는 현시점에서 CEPI의 코로나19 백신 생산 기지로 활약하고 있어야 한다.
녹십자 관계자는 “CEPI는 생산시설을 예약해 놓은 것뿐”이라면서 “CMO 생산계약은 코로나백신 제조사와 별개로 진행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식적으론 ‘현재 복수 업체와 논의 중’ 이라는 언급 외 다른 얘기를 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CEPI가 지난 3월부터 내년 5월까지 5억 도즈 분량의 위탁생산 예약을 걸어놨지만 생산기간과 수량은 옵션으로 변경 가능한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예약이 걸린 5억 도즈 분량의 생산라인은 계속 비워둬야 하냐고 묻자 녹십자 측은 “오창공장이 지난해 10월 완공돼 가동시설을 비워둔다기보다 채워가는 상황”이라며 “총 생산규모가 하루 8시간 가동했을 때 연 10억 도즈다. 억지스럽게 예약물량을 비워두기보다 가동시간 조절을 통해 충분히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녹십자의 코로나19 백신 CMO 계약이 코로나19 백신제조사가 위탁생산 물량을 의뢰할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천수답’ 계약으로 판명 난 셈이다.
문제는 녹십자 투자시장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지난해말부터 올초까지 녹십자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내며 올해 영업이익 퀀텀점프 예상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녹십자 기업가치는 2배로 뛰었고 목표주가도 치솟았다. 투자자금도 녹십자에 몰리며 주가는 지난 10월 중순 21만원에서 지난 1월말 53만원까지 단기 급등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녹십자 CMO 계약가치를 도즈당 4000원에 영업이익률을 50%로 가정해 2조862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에 녹십자 기업가치도 이전보다 2배 상승한 5조9875억원으로 새롭게 책정됐다. 아울러 녹십자에 ‘퀀텀점프’, ‘올해 제약업종 최선호주’ 타이틀을 붙이며 목표주가를 단번에 26만5000원에서 51만원으로 2배 상향했다.
한국투자증권도 같은 달 ‘2021년 녹십자는 완전 다른 회사가 됩니다’는 보고서를 통해 녹십자가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으로만 영업이익이 6000억원 추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추정치엔 코로나19 백신 단가를 2800원, 영업이익률 70% 가정이 들어갔다. 생산수량도 올해 3억개, 내년 2억개로 구체화했다. 한국투자증권 역시 녹십자 목표가를 15만원에서 50만원으로 높였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다른 백신도 마찬가지지만 코로나백신 CMO 수주계약 한다고 해서 바로 상업 생산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며 “기술이전, 원료수급 계획, 샘플생산 과정을 거쳐 상업생산되는데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9개월가량 소요된다. 현 상태론 당장 계약이 이뤄지더라도 상반기 내 백신 위탁생산이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 계약이 정상적(1.2년 5억 도즈 생산)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녹십자의 기업가치와 올해 실적 전망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있다. 금융투자업계 계산을 그대로 적용하면 최악의 경우 녹십자 기업가치 절반이 훼손되고 예상 영업이익 6000억원이 허공에 사라지게 된다. 한편 녹십자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1조5041억원, 영업이익 503억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