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현 과학커뮤니케이터] ‘당신은 오늘 왜 또 술을 마시나?’. 필자는 대학생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그 날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바람에 큰 충격에 빠지기도 하고, 술을 마신 다음 날 숙취로 머리가 너무 아파서 온종일 누워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렇게 고생하고 나면 술을 줄여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술을 잔뜩 마시곤 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 박종현 과학커뮤니케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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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술을 왜 그렇게 좋아할까. 과학자들은 술이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했다고 말한다. 한때 역사학자들은 인류가 수렵사회를 끝내고 농경사회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배고픔 때문이었을 것이라 주장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술을 마시기 위해서였을 거라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수렵을 멈추고 곡물을 재배한다면 술을 계속 먹을 수 있게 될 거라 여겼던 거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물을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마시기 쉽지 않았다. 특히 유럽에서 나는 물은 석회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식수로 쓰기에 부적합했다.
술의 주성분 에탄올은 소독제로 사용하는 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독 기능도 있다. 덕분에 술은 박테리아의 위협에도 훨씬 안전하고 잘 썩지도 않았다. 그래서 음식을 장기간 보관해야 할 때도 곡물이나 과일을 술의 형태로 보관해 두었다가 음식 대신에 마시기도 했다. 술에도 음식만큼 많은 에너지가 들어 있으니까. 이쯤 되면 전 세계 거의 모든 문화권에 술이 자리 잡게 된 것도 이해가 된다. 전 세계에서 술 문화가 없는 사람들은 고기와 바다생물만 먹고 살았던 에스키모족 정도다.
최근에는 정수기가 개발되고 음식의 위생도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굳이 물과 음식 대신에 술을 먹을 필요는 없어 보이지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회성과 관련이 있다. 아마 술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보다 술을 마셨을 때 사람들과 더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술이 사람들 간의 유대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 수 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의 교수인 찰스 홀래헌은 이와 관련해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 방법은 간단하다. 최근 3년 이내에 병으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55~65살의 사람들을 모은다. 그리고 술을 적절하게 마시는 사람들과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사람들,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들로 집단을 나눠서 각각의 집단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조사한다.
연구 결과는 술을 아예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20년 이내에 사망할 확률은 무려 69%에 달했다. 마찬가지로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60%였다. 그런데 적절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은 고작 41%밖에 되지 않았다. 술이 간 질환 등 수많은 질병을 유발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놀라운 결과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술은 좋은 얼굴과 나쁜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술을 자신의 몸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마신다면 행복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고, 과도하게 마신다면 몸에 무리가 와서 건강 문제에 시달릴 것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오직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한편 박종현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생명과학을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과학을 쉽게 썼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등의 과학교양서를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