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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 레이더] 기술성 평가제도 변화에 대한 제언
  • 평가 프로세스와 결과 공개하고 장기 검증 해야
  • 공시 정보 객관성과 접근성 획기적으로 높여야
  • 등록 2021-03-21 오후 1:50:00
  • 수정 2021-03-21 오후 1:50:00
김태억 리드컴파스 인베스트먼트(VC) 대표(사진)가 국내외 주요 신약개발 동향을 한달에 한번 전한다. 주목해야 하는 신약개발 기술과 회사, 효과 등을 톺아본다. 특히 제약 바이오 투자자의 관점에서 그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짚는다. 김 대표는 기술경제학 박사(영국 리즈대학)로 ‘신약 후보물질 감별사’로 통한다. 2015년부터 지난 4월까지 K바이오의 해외 기술수출을 지원하는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본부장)에 몸담았다. 그 기간 700여개로 추정되는 국내 신약 후보물질 가운데 정부 지원을 받은 600개의 가치를 모두 평가했다. 국내 신약 후보물질의 현황과 수준, 해외 신약개발 동향 등을 꿰뚫고 있다는 평이다.


[김태억 리드컴파스 인베스트먼트(VC) 대표] 우리나라 바이오 제약 기업들에게 있어서 기술성특례상장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기본적으로 막대한 자본과 장기간의 투자가 필수적인 산업인데 반해 우리나라 기업 중 글로벌 빅파마에 비해 자본력이 100분의 1 이상인 기업체가 하나도 없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상장 및 후속 유상증자 등을 통해 적절한 규모의 자본조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만 빅파마들과 본격적인 경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창업 초기부터 상당한 규모의 자본투입이 필수적인 바이오 제약산업의 특성으로 인해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벤처투자가 필수적인데, 벤처투자에 따른 투자회수(Exit) 경로가 기업상장(IPO)에 99% 이상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말 기술성특례상장 기술성평가 가이드라인이 변경되었다. 그동안 신라젠(215600), 에이치엘비(028300), 헬릭스미스(084990) 등 다수의 바이오기업체들이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실패한 것은 물론 해외 라이센싱 되었던 물질이 다수 반환되면서 상장된 바이오기업의 장기 성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문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기업상장의 본질적 목적이 공개시장을 통해 대규모 자본조달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상장이 벤처투자자의 투자회수 경로로만 활용되는 경향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 해에 투자되는 벤처투자 금액에 비해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된 자본조달 금액이 더 낮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술성특례상장 기술성평가 가이드라인 변경은 늦었지만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새롭게 변경된 기술성 평가 가이드라인은 평가항목을 26개에서 34개로 늘렸으며, 평가사항별 평가항목 역시 세분화 되었다.

변화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긍정적인 개선사항들이 우선 눈에 뜨인다. 경영주의 전공이 이공계가 아니어도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나 경영능력을 반영할 수 있도록 변경된 점, 기술최고책임자(CTO)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아도 해당 분야의 역량을 회사 내외부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내용들은 과거 형식요건 충족 여부를 기계적으로 판단했던 것에 비해 진작 개선되었어야 할 내용들이다.

또한 경영진 지분보유율이 낮으면 기업에 대한 책임성이 낮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던 관행이 바뀐 것 역시 긍정적이다. 최근 연구자와 벤처투자자가 공동창업하거나 개방형 사업모델을 선택할 경우 지분보유율이 분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경영자 지분율에 대한 기계적인 판단을 지양하고 비즈니스 모델 전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바뀌어서다.

기술성 평가를 청구한 회사의 설립연도가 짧더라도 평가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지 않게 한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바이오제약 산업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와 다양성을 고려했을 때 진작 개선되었어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동시에 신규 상장을 추진하는 바이오제약 기업체들에게는 상장시장에 진입하기 더욱 어렵게 만드는 새로운 항목들도 추가되었다. 기술의 신뢰성 관련해서 라이센싱 아웃 실적이나 기술관련 외부인증, 핵심기술의 원천확인 등을 좀 더 엄밀하게 평가하겠다는 내용이나 임상시험과 관련하여 경쟁약물 대비 질적 우수성 여부를 평가하겠다는 내용들이다. 과거 상장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 혹은 주가관리를 위해서 임상시험을 무리하게 진행했던 사례가 다수 지적되었던 바를 개선하기 위해 좀 더 엄밀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강화하기 위한 문제의식이라고 해석된다.

이처럼 변화된 기술성평가 가이드라인은 국내외 환경변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투자자 보호에 보다 방점을 찍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업계의 일반적인 반응은 상장이 과거에 비해 어려워졌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업상장의 어려움 여부가 아니다. 정작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기술성평가 제도의 변화를 통해 바이오제약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공개시장에서의 자본조달 환경이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이다. 이와 관련 두 가지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첫째, 기술성평가를 통한 투자자 보호의 실질적 효과에 대한 문제이다. 기술성특례상장은 10년 이상 장기간 투자에도 불구하고 매출실적이 나오기 힘든 신기술 기업들의 자본조달 창구를 확대한다는 문제의식과 동시에 공개시장에서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선별기능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제도이다.

하지만 기술성평가는 개발 중인 해당 기술의 중장기 미래에 대한 전문적인 판단과 평가를 요구한다. 근본적으로 주관적이고 정성적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정한 평가능력을 갖춘 공공연구기관이나 기술평가기관을 지정해서 기술성평가를 진행하게 되는데, 문제는 해당 기관이 과연 충분한 평가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평가결과가 얼마나 정확하고 객관적인지에 대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기술성평가 기관의 전문성에 대한 이의제기, 평가결과 공개 요구가 높았던 것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기술성평가 제도 자체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일종의 가디안(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인데, 가디안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런 보호역할을 할 수 없다. 신뢰를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평가과정이나 기준,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평가결과의 올바름이 검증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 평가항목을 새롭게 도입하거나 평가기준을 세분화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기술성 평가 시스템 자체에 대한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평가 프로세스와 평가결과를 전면적으로 공개하고 보다 많은 전문가들이 더욱 다양한 관점으로 평가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거나 평가결과가 타당했는지 여부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장기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평가결과에 대한 책임을 해당 평가기관에게 부여하는 방안, 혹은 인센티브 부여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둘째, 상장을 통한 자본조달 기능의 효율화이다. 바이오제약산업은 임상시험 성공여부에 따라 해당 기업의 생존 여부가 결정될 수 있을 만큼 기업가치의 변동성이 매우 높다. 또한 개발기술에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성공 여부를 검증하는데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높아 투자시장에서의 정보비대칭성이 그 어떤 산업보다도 크다. 이와 관련 효율적 자본시장 가설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투자자들에게 공개된 정보의 객관성과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서 정보비대칭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시장의 평가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고, 평가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대규모의 효율적 자본조달이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 우리나라 한국거래소는 바이오제약산업 공개시장에서 정보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가장 기본적 전제인 공시제도의 엄격한 운용 및 위반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되었지만, 그로인해 정보비대칭성 문제가 충분히 해소되었다고 느끼는 투자자들은 별로 없다. 공시위반, 제출된 평가자료의 신뢰성 훼손 등에 대해 엄격한 판단과 확실한 징계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가해지는 충격, 산업에 대한 보호, 객관적 판단의 어려움으로 인해 너무 오랫동안 판단을 유예하거나 혹은 징계와 징벌의 수준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술성 평가의 경우에는 징계권자와 가디언(보호자)이 동일하기에 일종의 자기부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경우 기업공시정보에 대한 접근형평성, 정보객관성에 대해 다중감시 및 평가장치가 훨씬 잘 준비되어 있다. 우선 공시된 정보에 대한 판단과 해석을 보다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 동료평가 역시 매우 다양하다. 또한 해당 기업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공시정보에 대해 수많은 로펌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일단 적발된 위반사례에 대한 징계수준 역시 매우 강력하다. 우리나라 역시 보다 다양하고 많은 전문가 그룹들을 공론장으로 끌어들여 공시정보에 대한 판단과 검증을 다양화하고, 일단 적발된 위반사례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엄정하며, 가혹하다고 할만큼의 징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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