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최근 HD현대 계열사도 바이오 사업 진출 대열에 합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들도 바이오·헬스케어를 신사업으로 낙점, 인수합병(M&A)도 적극 검토하고 있는 분위기다.
|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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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선해양·OCI, 장기적 안목으로 제약·바이오 사업 진출24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HD현대의 조선 계열사인 HD한국조선해양(009540)이 AMC사이언스에 자본금 270억원을 출자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AMC사이언스는 2023년 서울아산병원의 사내벤처로 출범한 신생 신약개발사로 암, 면역질환, 안질환 등에 대한 치료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이 ‘신약개발’이라는 ‘찐’ 바이오 분야에 뛰어든 셈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이제 막 신약개발 기업을 인수해 바이오 사업을 시작한 만큼, 장기적인 안목으로 성과를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HD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이제 막 세팅을 한 단계라 한동안은 연구개발(R&D)에 집중할 것”이라며 “좀 더 시간이 지나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OCI는 2018년 5월 부광약품과 50대 50 지분 비율로 제약·바이오 부문 합작투자사(JV) ‘비앤오바이오(BNO)’를 설립하면서 제약·바이오 사업에 입문했다. 2022년 2월에는 부광약품 지분 10.9%를 인수하며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2024년 1월에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3% 인수 계획을 발표했으나 같은해 3월 한미약품그룹과 통합은 불발됐다.
그럼에도 OCI는 해외 제약·바이오 기업 투자를 타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5월 이우현 OCI홀딩스(010060) 회장은 “조단위 규모의 미국 제약·바이오 회사와 비교적 작은 규모의 동남아시아 회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 투자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바이오업계에선 OCI가 부광약품과 볼트온(동종업계 기업인수)할 국내 기업을 찾아보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OCI가 워낙 오래 전부터 바이오 사업에 관심이 많았어서 이런 얘기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반면 화학업계 관계자는 “OCI가 현재 바이오에 투자할 만한 여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식품업계 대세는 바이오·헬스?식품업계에선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이 대세로 떠오른 모양새다. 오리온(271560), CJ제일제당(097950), 대상(001680), 롯데 등에 이어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도 해당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리온홀딩스는 2020년 중국 제약사 ‘산둥루캉의약’과 합자법인 ‘루캉하오리요우’을 설립했다. 이후 지노믹트리(228760), 큐라티스(348080) 등 국내 바이오벤처에 투자하고 합작사와 협업을 모색했다. 2022년에는 오리온그룹 지주 회사 산하에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설립하고 리가켐바이오(141080)를 인수했다. 리가켐바이오 인수는 오리온의 오너 3세인 담서원 전무가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바이오업계에서 오리온의 리가켐 인수는 모범적인 M&A 사례로 꼽힌다.
CJ제일제당은 2021년 마이크로바이옴 개발사 천랩(CJ바이오사이언스)을 인수했다. 대상은 2023년 12월 앰틱스바이오에 75억원을 투자했다. 롯데는 최근 롯데헬스케어를 청산하면서 디지털헬스케어 사업에선 철수했지만 롯데바이오로직스를 통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지난해 초 연구소 삼양스퀘어랩에 노화방지·디지털헬스 관련 조직을 신설하면서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삼양라운드스퀘어의 이러한 변화는 오너 3세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상무)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삼양식품에 신설된 헬스케어 BU장을 맡고 있던 전 상무는 같은해 9월 삼양라면 출시 60주년을 기념하는 비전 선포식을 통해 처음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 삼양라운드스퀘어는 미래 신사업 중 하나로 마이크로바이옴 등 바이오 사업을 낙점했다.
평소 항노화 연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전 상무는 현재 세계적 노화·장수연구학회인 미국 건강 수명연구학회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 기업인으로는 처음이다. 삼양 내 노화연구센터와 어떤 시너지를 이룰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향후 근감소증, 퇴행성 뇌질환, 대사질환 등 노인성 질환 파이프라인 개발에 나설 전망이다. 이 중 근감소증 개선을 위한 마이크로바이옴 기업과 협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 삼양식품(003230)은 마이크로바이옴 기업 헬스바이옴이 개발한 근력 개선 건강기능식품 소재 ‘HB05P’를 함유한 제품 관련 국내 독점 판권계약을 체결, 빠르면 올 하반기 판매를 개시할 예정이다. 이어 마이크로바이옴 신약개발사 바이오뱅크힐링과도 조만간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양라운드스퀘어 관계자는 “60여 년 전 삼양식품을 설립할 당시 가장 큰 고민이 ‘어떻게 하면 굶지 않을까’였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까가 화두”라며 “식품회사가 헬스케어 사업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대마유사(大馬有死)의 시대…바이오·헬스는 생존 위한 선택”이처럼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앞다퉈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에 진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제약·바이오는 ‘대기업의 무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피 대상이었지만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자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은 뉴노멀 시대에도 빠른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전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22년 1조4820억달러(약 2013조원)에서 2027년 1조9170억 달러(약 2600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이 이제 ‘독 먹는 하마’만은 아니라는 인식 전환도 일부 작용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상용화에 다가설 만큼 질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유한양행은 비소세포폐암 신약 ‘렉라자’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를 받은데 이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허가도 받았다. 지난해 말 알테오젠은 머크와 머크(MSD)와 개발한 ‘키트루다 SC’의 성공적인 임상 3상 결과를 공개하면서 상용화에 성큼 다가섰다.
한 헬스케어업계 관계자는 “이제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아니라 대마도 죽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규모가 큰 조직이라고 해서 생존을 담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대기업들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고 짚었다. 이어 “다들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바이오·헬스케어 분야를 눈여겨보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산업구조가 노동집약적 산업 중심에서 바이오·헬스케어 등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구조적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기업들이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드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