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OCI(456040)그룹과
한미약품(128940) 간 통합 과정에서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통합을 주도한 어머니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회사를 키우려는 의지가 강한 ‘장부스타일’의 송 회장 성격상 ‘자유로운 영혼’인 장남과의 갈등은 수년전부터 예견됐다는 게 업계 안팎의 중론이다.
16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OCI의 지주사
OCI홀딩스(010060)와
한미사이언스(008930)가 그룹간 통합을 발표하자 임종윤 사장은 다음날 개인회사인 코리그룹 엑스(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와 OCI의 발표와 관련해 한미 측이나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고지나 정보, 자료도 전달받은 적이 없다”라며 즉각 반발했다.
| 오른쪽부터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 (사진=한미약품, 디엑스앤브이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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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그룹과 한미약품 통합을 계기로 모자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갈등의 전조는 이전부터 감지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첫째 아들인 임종윤 사장이 한미약품의 유력 후계자로 그룹 내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임 사장은 지난 2004년부터 북경한미약품 부총경리(부사장), 총경리(사장), 동사장(회장) 등을 거쳐 회사를 이끌었다.
이 시기 북경한미약품의 연 매출이 600억원대로 성장하면서 임 사장의 경영성과가 주목을 받는 듯했다. 중국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2009년 한미약품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가 나뉘기 전에 한미약품의 등기임원(사장)으로 선임됐고, 분할 이후에는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아버지 임성기 회장 대신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단독대표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임성기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송영숙 회장이 임 전 회장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후,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사회에서도 제외됐다. 실제로 임종윤 사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부터 한미약품 그룹에서 밀실 경영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 언급했다.
모자간 갈등은 임종윤 회장이 북경한미 시절부터 중국에서 벌여온 신사업의 부진과 이에 대한 송영숙 회장의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 홍콩에 세운 한미사이언스 계열사 오브맘컴퍼니와 임종윤 사장 개인 회사인 코리그룹 계열사 코리포항의 실패다. 임종윤 사장은 오브맘그룹을 통해 프리미엄 산후조리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내 산후조리원을 사들이기 위해 SG프라이빗에쿼티·플루터스에쿼티파트너스에서 공동조성하는 200억원대 사모펀드에 개인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브맘컴퍼니의 한국 법인인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매년 수십억원대 적자를 냈다. 오브맘코리아컴퍼니는 2022년말 기준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34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코리포항의 2021년 기준 연 매출은 4700만원에 불과하다.
부진한 사업 결과와 더불어 임종윤 사장도 경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생화학과를 졸업한 임종윤 사장은 이후 버클리음대 재즈작곡분야 석사과정을 마쳤다. 한미약품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대표 시절에도 회사에 알리지 않은 독자적인 활동으로 주변을 당황케 하는 일이 많았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임종윤 사장의 행보는 이전부터 직간접적으로 한미약품 경영에 관여해온 어머니 송 회장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송 회장은 임성기 전 회장 생전에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한미사진미술관장 등의 자리에서 문화사업을 이끌었지만 경영에도 일정 부분 참여해왔다.
북경한미약품의 어린이 유산균정장제 ‘마미아이’를 직접 작명하기도 했고, 북경한미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국 진출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직접 경영을 맡게 된 2020년부터는 안팎에서 ‘대장부 같은 경영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OCI그룹과의 전격적인 통합 역시 송 회장이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는 평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미약품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국내 제약사와 비교해도 다른 회사와 협업없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왔다”며 “한미약품 정도의 규모를 가진 제약사가 아예 헬스케어나 제약·바이오사업 경험이 없는 대기업 그룹사와 협업을 결정한 것은 제약·바이오업계 관점에서는 물론이고 한미약품의 역사를 통틀어 봐도 이례적인데, 아무래도 제약업계 한가운데 있었던 임성기 전 회장과는 다른 송영숙 회장의 리더십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2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와 OCI홀딩스 지분 10.4%를 맞교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를 OCI홀딩스가 7703억원을 들여 취득하고, OCI홀딩스 지분 10.4%는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취득하는 방식으로 양사가 통합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