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먼저 개발했지만 후발 주자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갈 판이다. 자국 제품 친화적이지 않은 한국 정부의 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모두 가진 세 번째 국가다. 미국,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하지만 자국 백신이나 치료제 사용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반면 일본은 자국 치료제 사용률이 60%를 넘었다.
16일 엠쓰리 조사에 따르면 6월 12~18일 1주 동안 일본 코로나19 경구제 처방 전체에서 조코바의 비율은 평균 59.5%에 달했다. ‘라게브리오(머크)’, ‘팍스로비드(화이자)’ 등의 경구 치료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해당 제품은 2월 초까지 점유율 10%대에 그쳤지만 5월 마지막 주 56%를 기록하며 선두에 등극했다. 자국 제품 사용을 꾸준히 장려한 결과다.
조코바, 일본 매출 1조원에 달해...“자국 제품 장려 정책 먹혔다”매출도 상당하다. 조코바는 지난해 11월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이후로 올해 3월까지 약 4개월간 1조원(1047억엔)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개발사 시오노기제약의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27.3% 증가한 4267억엔(약 4조원)이다. 이 가운데 조코바의 매출은 전체 처방의약품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 코로나 치료제 조코바정 (사진=시오노기 제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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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코바는 증상이 사라지기까지 기간을 약 1일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앞서 승인된 미국 화이자나 모더나 제품과 달리 중증화 위험이 없는 사람 대부분이 복용할 수 있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조코바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다. 일동제약은 2021년 11월 시오노기와 공동개발 협약을 맺고 국내에서 조코바 2/3상을 진행했다. 양사 협력에는 국내 상업화 뿐만 아니라 일동제약의 조코바 완제 생산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한국, 해외서 인정된 치료제도 승인 더뎌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용이 안 되고 있다. 정부에서 승인해주지 않아서다. 일동제약은 지난해 조코바의 긴급 사용을 신청했지만, 질병관리청이 승인하지 않아 좌절됐다. 같은 해 일본 정부가 조코바의 신청을 신속히 허가하고 처방을 시작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배를 마신 일동제약은 지난 1월 품목허가신청으로 동선을 변경했지만 6개월째 식약처로부터 답을 얻지 못했다.
임숙영 중앙방역대책본부 상황총괄단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조코바의 긴급사용승인 거절 이유에 대해 “임상효과, 안전성, 약품 정보, 해외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뒤,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라면서 ”팍스로비드의 재고분이 충분하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1년 국산 치료제로 최초 허가를 받았던 셀트리온의 ‘렉키로나주’는 국내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 가능한 코로나19 치료제는 화이자의 ‘팍스로비드’와 길리어드 ‘렘데시비르’로 모두 외국산 치료제다.
| 한림대 의대 우흥정 교수가 현대바이오 제프티 관련 임상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현대바이오사이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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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바이오사이언스(현대바이오)도 지난달 코로나19 신약 후보물질 제프티의 긴급사용 승인을 신청한 상태지만 허가 승인이 더디다.
현대바이오는 국내에서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 중 경증과 중등증 환자를 위한 경구 치료제는 제프티가 유일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팍스로비드도 경증 및 중등증 환자에게 투여가 허용됐지만 기존 복용 중인 약물과 병행해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돼 의사들이 처방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 팍스로비드는 40~65세 사이 코로나19 환자들에는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게브리오는 백신 접종자에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박대원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는 의사가 코로나19 환자에게 안심하고 처방할 코로나19 치료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제프티를 긴급 공급해 고위험군 환자는 물론 일반위험군(경증 및 증등증)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고위험군의 사망을 줄일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유럽에 코로나 치료제 판매 확대 기회에도...국내 성과 없어 직판 차질국내를 바탕으로 글로벌 판매를 확대할 수 있는 판로도 막힐 수 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오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한 부분과 반대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바이오헬스 산업을 국가 핵심 전략산업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정부가 역량을 모으고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코로나 치료제 관련 기회가 왔지만, 국내 기업은 엄두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자국에서도 승인되지 않은 약을 해외에서 긴급 승인 해 줄 가능성이 낮아서다.
실제 코로나 치료제 유럽 판로 확장 기회가 열렸다. 머크가 유럽에서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 ‘라게브리오(몰누피라비르)’의 허가 신청을 자진 취하하면서다.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는 지난 2월 라게브리오 승인을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CHMP의 권고로 머크는 결국 EU에서 허가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
이에 유럽에서의 코로나 치료제 판도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에서 라게브리오는 사실상 퇴출 수순을 밟고 있기 때문에 대체제가 필요해서다. 라게브리오는 팍스로비드 대비 낮은 효과 등으로 판매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2년간 식약처를 통과한 국산 코로나19 치료제가 전무했던 만큼 조코바, 제프티 허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라며 “빠른 승인이 나와야지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이 더 용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