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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한때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던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산업이 빠르게 동력을 잃고 있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수천억 원의 투자와 정부 지원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지만 2025년 현재 상업화 단계에 진입한 국산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은 한 개도 없다. 임상에서는 일부 긍정적 신호가 나오지만, 개발사들은 오히려 후속 연구를 멈추거나 사업 방향을 틀고 있는 상황이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장내 미생물이 인체 면역·대사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활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 플랫폼이다.
 | |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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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서 발 빼는 업계 20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지놈앤컴퍼니(314130)는 최근 항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GEN-001’와 머크·화이자의 면역항암제 ‘아벨루맙’의 국내 2상 병용 임상시험에서 비교적 양호한 데이터를 확보하고도 임상 3상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임상에서 객관적반응률(ORR)은 19%로 나타났다. 같은 환자군에서 아벨루맙을 단독 투여했을 때 반응률이 2%대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의미있는 개선 신호다. 안전성 역시 우수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GEN-001의 3상 진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추가 비용을 들여 임상 3상에 진입할 계획은 없다”며 “파트너사와의 공동 개발 논의도 현재로서는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수백억 원대가 투입되는 후기 임상 대비 시장성 및 상업화 성공의 불확실성이 회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효능 신호는 의미 있지만, 단일 파이프라인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지놈앤컴퍼니는 2015년 설립돼 2020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으며, 국내 최초로 마이크로바이옴 면역항암제 임상시험 승인을 받아 주목받았던 기업이다.
지놈앤컴퍼니의 기술이전 파트너였던 LG화학(051910)도 마이크로바이옴 항암제 개발에서 발을 빼고 있다. LG화학은 2020년 지놈앤컴퍼니로부터 도입한 GEN-001(자사 개발코드명 ‘LR20011’)의 동아시아 독점 개발권을 확보했지만, 최근 해당 파이프라인과 또 다른 마이크로바이옴 후보물질 ‘LR19128’의 개발을 모두 접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항암 파이프라인 재편 과정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효능·성장성 한계가 명확해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마이크로바이옴 상장사들 분위기도 비슷하다. 건선·장질환 등 다수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고바이오랩(348150)은 2023년 12월 공시한 건선 2상 톱라인 결과에서 1차 평가지표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후속 임상 진입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CJ제일제당이 약 980억 원을 투자해 인수한 CJ바이오사이언스(옛 천랩)는 2023년부터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와 면역항암 마이크로바이옴 후보물질 ‘CJRB-101’의 병용 임상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임상 완료 시점은 2026~2027년으로 잡혀 있어 실질적인 효능 검증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전망이다. 그 사이 회사는 약 4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연구비를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장기 임상에 따른 재무적 압박이 가시화된 결과로 보고 있다.
비상장 스타트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엔테로바이옴, 이뮤노바이옴 등은 2018~2021년 동안 수십억~수백억 원대 투자를 유치하며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유니콘 후보’로 불렸지만, 공개된 자료 기준 대부분이 여전히 초기 임상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기초과학 부재, 정책 단기성 문제” 업계에서는 한국형 마이크로바이옴 산업의 약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천랩(현 CJ바이오사이언스) 연구소장을 지냈던 김봉수 이화여대 부교수는 국내 마이크로바이옴 침체 원인에 대해 “국내 산업은 마이크로바이옴을 지나치게 쉽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초과학 기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응용기술로 바로 산업화를 시도하다 보니 성공할 수 없는 구조였다. 해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수천억 원을 투입해 기초를 쌓아왔지만, 국내는 분석 서비스 덕분에 기술 장벽이 낮아 보인다는 착시 속에서 너무 빨리 응용으로 넘어갔다”고 지적했다.
정부 R&D 정책의 단기성도 문제로 지목됐다. 그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우선순위가 바뀌고 연구비가 중간에 끊기면서 장기 연구가 불가능했다”며 “3~5년은 기초 구축 단계에 불과한데 정부와 기업 모두 단기 성과만 요구해 연구의 깊이가 얕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마이크로바이옴의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장질환을 비롯해 면역·항암·대사질환 등으로 개발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150개 이상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임상 단계에 있다. 특히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신약의 연이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과 후기 임상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는 여전히 핵심 치료 모달리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교수는 “해외가 20년 넘게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하는 이유는 마이크로바이옴이 인간 건강의 핵심 축이라는 공감대가 확고하기 때문”이라며 “국내 기업이 상용화에 도달하려면 기초부터 임상까지 이어지는 생태계를 다시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업도 1~2년 단기 개발 모델에서 벗어나 장기 포트폴리오를 마련해야 한다”며 “산학 협력과 중장기 연구가 병행될 때 비로소 상용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