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올들어 제약·바이오 업계에 전문 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하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최근에는 유한양행에서 30여년 근무한 이가 한미약품 지주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는가 하면 대웅제약에서 20여년 근무한 경영인이 코오롱 지주사로 이직했다. 대기업 계열 바이오 회사들 또한 인공지능(AI) 방면으로 발을 넓히면서 AI 바이오텍의 경영진을 임원급으로 수혈한 사례도 있다.
 |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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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 C레벨급 이동보수적인 제약업계가 바뀌고 있다. 타사의 ‘믿을맨’이던 인물들을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하는 모습이 이목을 끈다. 한미사이언스(008930)와 코오롱티슈진(950160)은 각각 26일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외부 영입 인물의 사내이사 신규선임을 결의한다.
한미사이언스는 김재교 메리츠증권 IND 본부장을 사내이사 및 경영총괄 부회장으로 신규선임한다. 김 신임 부회장은 유한양행(000100)에서 31년을 보낸 이력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1990년 유한양행에 입사해 IR 상무, 전략기획 전무 등을 맡았다. 바이오 신기술사에 투자를 검토, 집행하기도 했다. 2021년 메리츠증권으로 넘어가 바이오텍 투자를 이어갔다. 한미사이언스에서는 경영 안정화와 미래 성장동력 구축에 매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사이언스는 가족 간의 경영권 내홍 및 상속세 납부 재원마련에 대한 이슈를 일단락하고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을 최대주주(16.43%)로 맞이해 이사회를 새롭게 출범시킨다. 기존 오너가 일원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 부회장과 김재교 부회장에 더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회공헌 TF장(상무)을 지낸 심병화 재무총괄임원(CFO),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 경영관리 부장 출신의 김성훈 전략기획실 상무 등으로 4인의 사내이사를 구성했다.
김 부회장은 FDA 허가를 받은 첫 국산 항암제 ‘레이저티닙’을 탄생시킨 유한양행 사례를 재현하는데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 또한 FDA 관문을 넘은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를 보유해, 항암제보다는 시장크기가 작지만 미국 규제기관 허가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과거 한미약품은 고(故) 임성기 회장 시절 국내 제약사 최초로 글로벌 빅파마에 조단위 기술이전을 이뤄 주목받았다. 비록 물질을 반환받았지만 이는 신약개발 과정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 한미약품이 국내 제약산업의 새 시대를 연 주축임에는 업계 이견이 없다. 신규 최대주주와 이사회로 단장한 한미약품은 임상 1상 단계에 있는 비만신약 등의 R&D 성과에 도전할 전망이다.
코오롱티슈진(950160) 또한 주총에서 대웅제약(069620) 24년 경력의 전승호 대표를 사내이사로 신규선임할 것을 결의에 부친다. 기존 노문종 대표와 각자대표 체제다. 코오롱(002020) 지주에서는 제약·바이오 부문 고문을 맡는다.
전 대표는 2000년 대웅제약에 입사해 글로벌사업본부장을 거쳤고 2018년부터 2024년 4월까지 약 6년간 대웅제약 대표직을 맡았다. 대웅제약 전체매출의 15%가량을 차지하는 보툴리눔톡신 제품 ‘나보타’의 미국 FDA 승인 및 마케팅을 관장했다. 대웅제약 이후엔 종근당(185750)에서 짧은 시간 경영자문 고문역할을 맡았다. 코오롱 그룹에서도 글로벌 사업개발 방면 및 지주사의 제약바이오 부문 고문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코오롱의 미국현지 바이오법인인 코오롱티슈진은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TG-C’의 미국 임상 3상을 내년 7월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선제적으로 미국 허가 및 시장진출을 염두에 두고 전 대표를 영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기업 바이오도 ‘AI 신바람’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SK바이오팜(326030) 등 대기업계열 바이오 회사 또한 핵심인력 충원에 나서 눈길을 끈다. 특히 AI 방면으로 인력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먼저 움직인 건 SK 쪽이다. SK㈜의 핵심 신약개발사 SK바이오팜은 신봉근 전 디어젠 인공지능총괄(CAIO)을 작년 6월 신임 인공지능·디지털트렌스포메이션(AI·DT) 추진 태스크포스장(팀장)으로 영입했다. 신 TF장은 AI 신약개발사 디어젠의 공동창업자다. 디어젠의 미국법인 대표를 맡아 현지 네트워크를 확장하던 중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과 인연을 맺은 것이 이직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018년부터 AI 기반 약물 설계 플랫폼인 ‘HUBBLE’(허블)을 구축해 초기 연구개발에 활용해왔다. 이를 표적단백질분해기술(TPD), 방사성 의약품 치료제(RPT)에 적용하는 업그레이드 버전 ‘허블 플러스’ 구축에 신 TF장이 활약한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뇌전증 환자의 발작을 실시간 감지하고 예측, 대응할 수 있는 통합 솔루션의 개발도 병행한다. SK바이오팜이 FDA 허가받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와 시너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그룹의 핵심 바이오 계열사 삼성바이오로직스도 AI 역량 강화에 나섰다. 이달 6일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김진한 전 스탠다임 대표를 AI 연구소장(상무)으로 소개했다. 김 상무는 2015년 AI 신약개발사 스탠다임을 공동창업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2023년 3월 공동창업자들에게 스탠다임 대표직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유럽에서 사업개발에 조력했고 작년 12월 보유지분 전량을 스탠다임에 무상양도하고 퇴사했다.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합류하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아직 김 상무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김 상무가 바이오 공정기술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LG(003550)는 외부 인재 영입까지는 아직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그룹에서 LG AI연구원을 차리고 내부적으로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LG AI연구원은 올 2월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와 ‘차세대 단백질 예측 AI’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나아가 LG화학(051910)의 생명과학 연구부문이 AI 단백질 구조설계 스타트업인 갤럭스와 협업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재국 제약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과거 제약업계는 순혈주의 기용 문화가 있었던게 사실이다. 지금은 국내 제약사들이 상대해야할 곳은 글로벌 시장이다”면서 “우수한 인적자원 확보는 순혈주의로만 해결할 수 없다. 인재영입에 있어 서로간에 문호가 닫혀있지 않다는 것은 큰 흐름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