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유전자 분석으로 미래에 어떤 희귀병에 걸릴 지 예측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은 이 기술에 도전하는 기업이 있다. 2016년 11월 국내 유전체 분석기업인 ‘마크로젠’에서 분사해 탄생한 ‘쓰리빌리언’이 그 주인공이다. 쓰리빌리언은 30억개의 유전자를 수집·분석한다는 뜻에서 정해졌다.
쓰리빌리언은 요즘 뜨는 AI(인공지능) 기반 유전자 분석 회사다. 희귀질환 유전자 진단 프로그램을 통해 한 차례 검사로 7000종의 희귀질환 발병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다. 검사 기간을 줄이는 동시에 검사 비용 역시 기존의 10% 수준으로 낮춰 경쟁력을 인정받는다. 실제 쓰리빌리언은 2018년부터 올해 초까지 총 420억원 규모의 Pre-IPO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자로는 KDB산업은행, SK증권, 마그나인베스트먼트 등이 참여했다. 시리즈C 라운드에서 약 1000억원으로 기업 가치(프리 밸류)가 책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쓰리빌리언은 작년 8월 추진하던 IPO(기업공개)를 한차례 보류했다. 바이오 시장이 더 활성화됐을 때 상장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쓰리빌리언은 당시 “향후 시장 상황이 좋아졌을 때 상장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IPO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쓰리빌리언은 미국 시장 확대를 통해 매출 성장을 다진 후 상장을 다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쓰리빌리언이 희귀질환 유전자 변이를 해석하는 방식은?쓰리빌리언의 기술이 희귀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건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의 변이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세포 1개에는 30억 개의 유전자가 있다. 표준 유전자 지도와 비교하면 0.1%의 변이가 존재한다. 이 변이가 어떤 질병과 연관성이 있는지 AI를 기반으로 예측하는 게 쓰리빌리언의 기술이다.
| 쓰리빌리언 희귀질환 진단 시스템 (사진=쓰리빌리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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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과정을 보면 먼저 유전체(genome)를 해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약 2만여개 모든 인간 유전자의 DNA 염기 서열을 읽어내는 과정이다. 이렇게 모든 유전자의 염기 서열 해독을 하고 나면 전처리 과정을 통해 표준 유전체 지도와 다르게 환자의 유전체에서 특이하게 발견되는 유전 변이를 가려내는 과정을 거쳐 전체 2만개의 유전자에서 약 10만개의 유전변이를 추려낸다.
이어 발견된 10만여개의 유전 변이 각각은 유전자의 기능에 이상을 발생 시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병원성 변이( Pathogenic variant) 인지 판별한다. 이 때 쓰리빌리언이 구축한 인공지능 유전변이 해석 시스템이 활용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실제 쓰리빌리언은 자사 AI 유전자 분석 솔루션으로 평균 5분 만에 감각신경 난청 증상의 원인을 진단했다. 연구는 AI와 인간 전문가가 각각 경증부터 중증 감각신경성 난청 증상이 있는 263명의 환자 유전체를 WES(Whole Exome Sequencing)로 해독했다. 난청 증상을 동반하는 유전 질환 871가지를 모두 검사 대상으로 설정한 후 쓰리빌리언의 AI 유전변이 해석 시스템 ‘에비던스’와 임상 전문 그룹이 진단한 결과를 비교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희귀질환 시장, 잠재력은?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7000여 종이 넘는 희귀질환이 있다. 75억 인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전 세계에 4억명의 희귀질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으로 희귀질환을 정의한다. 국내 희귀질환 환자수는 2016년 80만명을 넘어섰고 작년 기준 100만명 이상의 환자가 1200여종의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희귀질환은 질병 개수가 많다보니 환자들은 진단을 받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쓰리빌리언이 가져갈 수 있는 시장 점유 잠재력(포텐셜)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Evaluate Pharma의 ‘2022 희귀의약품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희귀의약품 시장은 2021년 약 1600억 달러(약 209조원)에서 2026년 약 2800억 달러(약 367조원)으로 연 평균 12%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글로벌 유전자 진단 시장은 미국 유전자 데이터 플랫폼기업 인비테(NVTA)와 독일 진단 기업 센토진(CentoGene)이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하지만 글로벌 병원들과 임상검증을 거친 결과, 쓰리빌리언의 진단율은 52.4%인데 반해 미국 인비테는 28.8%, 독일 센토진은 36%로, 적게는 10% 많게는 20% 이상 진단율에서 차이가 났다. 특히 의료진들이 쓰리빌리언의 진단에 동의하는 비율은 무려 97%에 달했다.
쓰리빌리언 관계자는 “변이 해석 부터 최종 진단에 이르는 변이 해석 과정은 평균적으로 20-4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쓰리빌리언에서는 인공지능 시스템의 도움으로 평균적으로 이 과정을 5분 내외로 완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 확대 ‘시동’...캘리포니아 뚫었다쓰리빌리언은 미국 시장 확대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임상검사실 인증 CDPH(California Department of Public Health)를 획득했다. CDPH는 미국 임상검사실 인증인 CLIA와 별도로 캘리포니아 주정부 산하의 보건국이 관리하는 인증이다. CLIA(미국실험실표준인증) 인증이 있더라도 CDPH 인증 없이는 캘리포니아 주민을 대상으로 진단 목적 유전자 검사를 제공할 수 없고 보험적용도 불가능하다.
쓰리빌리언의 CDPH 인증은 국내 유전자 진단 및 검사 분야 기업 중에서는 최초 사례다. 쓰리빌리언은 CLIA 인증과 함께 CDPH 인증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해 왔고, 지난해 연말 CLIA 인증을 받았다. CLIA 인증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CDPH 인증까지 완료하게 됐다.
금창원 쓰리빌리언 대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는 미국 인구 13%인 약 4000만명이 거주하는 미국 최대의 주다. GDP 5조 달러로 경제력 또한 최고로 미국 시장 성장을 위해 쓰리빌리언이 집중해야 할 핵심지역이다.
| 쓰리빌리언 제품 스펙 (사진=쓰리빌리언 홈페이지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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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대표는 “이번 임상검사실 인증은 희귀질환 진단분야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의 성장을 목표하는 쓰리빌리언의 유전진단 기술력과 검사 품질에 대한 신뢰도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계기가 됐다”며 “미국 최대 시장인 캘리포니아에서 쓰리빌리언의 성장을 활발히 전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한 쓰리빌리언은 지난해에 이어 상반기 미국 임상유전학회에 국내 유일 기업으로 참여했다. 지난 3월에는 UAE 두바이에서 개최된 중동 희귀질환 연례학회에서 구두발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다. 쓰리빌리언은 현재 24개국 71개 병원에 희귀질환 진단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다. 아울러 해외 주요 국가와 대규모 게놈 해독 사업에 필요한 유전진단 소프트웨어 공급 계약도 체결을 준비 중이다.
쓰리빌리언은 궁극적으로 희귀질환 치료 신약을 개발하는 플랫폼으로 회사를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10만 건의 희귀질환 게놈을 확보하면 질환을 치료하는 신약 후보물질의 발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