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류성 제약·바이오 전문기자] 대표적 해열진통제로 잘 알려진 ‘타이레놀’이 약국마다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접종이 본격화하면서 접종을 전후해 타이레놀을 찾는 고객이 급증해서다.
약국마다 타이레놀이 없어서 못파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보건당국은 물론 대한약사회, 대한의사협회 등 관련 단체들까지 모두 나서 “타이레놀 대신 비슷한 성분과 약효를 가진 해열진통제를 대신 구입해달라”고 대국민 설득작업에 나서는 진풍경까지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시중에서 타이레놀과 동일한 성분과 비슷한 약효를 지닌 제네릭 해열제만 70여가지가 유통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쉽사리 이해할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타이레놀 품귀현상은 지난 3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브리핑에서 “불편한 증상이 있으면 타이레놀과 같은 소염 효과가 없는 진통제는 복용하는 게 적절” 하다고 권고한게 발단이 됐다는 게 관련 업계의 판단이다. 하지만 정 질병청장의 발언은 기폭제 역할을 했을 뿐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현행 의약품 유통체제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현행 의약품 유통 시스템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상표명 처방’이다. 병·의원에서 환자에게 의사가 상표로만 약을 처방하다보니 정작 국민들은 의약품의 성분은 모르면서도 브랜드만 익숙해지게 됐다는 논리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국민은 해열효과가 있는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용어는 금시초문이지만 해열제인 타이레놀 브랜드에는 친숙하다. 약국에 간 환자가 약사에게 “‘아세트아미노펜’이 들어있는 해열제를 주세요” 라는 말대신 “타이레놀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모습이 일반화된 것이다.
타이레놀은 다국적 제약사인 존슨앤존슨에서 제조하는 해열진통제로 한국에서는 이 회사의 계열사인 한국얀센이 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당분간 코로나 백신접종 여파로 타이레놀 주문량은 폭주할 전망이어서 한국얀센은 그야말로 상표명 처방의 최대 수혜자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그간 대한약사회를 중심으로 상품명 처방을 ‘성분명 처방’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성분명 처방제도가 도입되면 상품명 대신 성분명과 제조회사명으로 의약품 이름이 표기된다.
김대업 대한약사회 회장은 “우리 국민들이 무슨 성분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먹는 유일한 것이 의약품이다”며 “복용하는 약의 주요 성분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은 알권리가 있다”면서 성분명 처방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성분명 처방은 의사단체들의 집요한 반대에 번번히 도입이 무산됐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제네릭들이 동일한 성분과 약효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들쭉날쭉하다”면서 “성분명 처방을 하게되면 환자마다 가장 적합한 의약품을 복용할수 없게 되는 좋지않은 결과를 낳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해왔다.
일각에서는 양 단체의 대립에는 의약품 유통의 주도권을 둘러싼 ‘파워 게임’이 자리하는 것으로 보고있다. 성분명 처방이 일반화되면 현재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의약품 선택권이 약사들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의약품 선택권을 확보하면 사실상 제약사의 의약품 매출을 좌지우지할수 있어 제약사들의 주요 리베이트 대상이 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성분명 처방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 양론이 팽배하지만 이번 타이레놀 품귀 사태는 상품명 처방의 한계와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성분명 처방제도를 개선할수 있는 대안을 서둘러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익단체들의 논리가 아닌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한다면 해법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