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명선 기자]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경쟁에서 화이자 항바이러스제 ‘팍스로비드(니르마트렐비르·리토나비르)’가 주도권을 잡는 분위기다. 해외 각국은 팍스로비드 물량 확보 경쟁에 사활을 걸었다. 우리나라도 추가 도입을 알렸다. 충분한 팍스로비드 확보가 진정한 ‘위드코로나(with corona)’의 전제조건이 될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몰누피라비르보다 팍스로비드에 쏠리는 눈‘추가, 추가, 추가…’ 현재까지 미국(1000만명분), 영국(275만명분), 일본(200만명분) 등이 팍스로비드 상당량을 확보했다. 이는 미국(310만명분), 영국(223만명분), 일본(160만명분) 등 각국이 도입하기로 한 머크 항바이러스제 ‘라게브리오(몰누피라비르)’ 물량보다 많다.
우리 정부도 팍스로비드 36만2000명분, 몰누피라비르 24만2000명분에 대한 선구매 계약을 맺었다고 27일 밝혔다. 팍스로이드 물량이 기존 16만2000명분에서 20만명분 늘었다. 정부는 100만4000명분의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선구매를 추진한다고도 밝혔다.
| 이탈리아 아스콜리에서 생산되는 화이자 팍스로비드.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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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팍스로비드 계약 물량이 더 많은 건 화이자가 밝힌 생산 규모가 더 크기 때문이다. 여기엔 ‘수요’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머크는 올해 말까지 몰누피라비르를 1000만명분, 내년에는 2000만명분을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화이자 팍스로비드의 내년 생산 예정량은 1억2000만명분이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머크도 생산 능력이 있는 대형 제약사다. 각국 구매 의사(수요)가 반영된 수치일 것”이라고 했다.
처음 펼쳐진 ‘코로나19 먹는 치료제 경쟁’에서 화이자 팍스로비드가 승기를 잡은 셈이다. 여러 방면에서 화이자 약이 머크 치료제보다 우위에 서 있기에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우선 ‘효능’이다. 임상 3상 최종 분석 결과 고위험군이 코로나19 증상 발현 후 3일 안에 팍스로비드를 먹으면 입원·사망 위험이 89%, 5일 이내에 복용하면 88% 낮아졌다. 몰누피라비르의 고위험군 입원·사망 예방 효과는 30%에 그쳤다.
팍스로비드는 몰누피라비르보다 사용에서도 좀 더 자유롭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18세 미만과 임산부는 부작용 우려로 몰누피라비르 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가임기 여성은 복용하는 동안, 남성은 복용 후 최소 3개월 피임해야 한다. 팍스로비드의 경우, FDA는 중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큰 경증, 중등증의 성인, 12세 이상 소아에 사용을 허가했다. 다만 몸무게가 40kg을 넘지 않거나 신장 및 간 손상이 심각한 환자는 권장되지 않는다.
오미크론 대응 능력은 두 약 모두 갖춘 것으로 보인다. 화이자는 실험실 내 초기 임상시험 분석 결과, 팍스로비드가 오미크론 변이의 자기 복제를 위해 필요한 단백질 분해효소 활동을 차단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머크 몰누피라비르 임상 연구팀도 16일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에 실린 논문을 통해 “몰누피라비르는 항체 치료제와 비교해 일정한 치료 효능을 보인다. 스파이크 단백질 돌연변이와 무관하다”고 했다.
|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서울 광진구 혜민병원 음압병동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히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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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코로나, 팍스로비드 선점이 좌우할 것이러한 이유로 팍스로비드 선점이 관건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진정한 위드 코로나가 실현되려면 그에 걸맞은 의료 대응 역량이 필수다. 병상이 태부족한 우리나라에선 입원, 중증화율을 낮춰 병상 가동률을 높여야 하는 처지다. 그러려면 예방 효과가 높게 나타난 팍스로비드를 필요할 때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날 정부가 확보한 팍스로비드 초기 물량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위드코로나 정착’을 논하기엔 시기상조라 입을 모았다. 한 예방의학과 교수는 “(초기 물량으로) 몇 달은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물량이 필요한 때 약이 없으면 가장 필요한 집단을 선정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보완적인 용도로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몰누피라비르와 달리, 팍스로비드는 사용 대상을 늘려도 사회적으로 이득이다. 앞으로 관건은 팍스로비드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외교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우주 교수는 “‘백신 자국 주의’에서 ‘항바이러스 자국 주의’가 도래했다. (치료제 원리상) 항체 치료제는 변이에 약하고, 원형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한 기존 백신도 오미크론에서는 효과를 나타내지 못한다. 항바이러스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백신 확보 경쟁에서 미국과 같은 진영에 섰던 호주·일본·인도 등이 혜택을 누렸다. 외교적 노력이 가미 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