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뉴스(리투아니아)=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2년마다 열리는 생명과학 컨퍼런스 라이프사이언스 발틱스(Life Sciences Baltics)가 올해로 7회차를 맞이했다. 리투아니아는 앞으로 5년 안에 국내총생산(GDP)의 6%를 생명과학 분야에서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핵심 바이오 기업에 투자와 정책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올해 행사에서는 유전자 편집, 유전자 데이터 저장, 바이오 제조 분야 등을 조명했다. 이데일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당 행사에 참여해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바이오 스타트업 네 곳을 인터뷰했다.
 | 기드리유스 가슈나스(Giedrius Gasiunas) 캐자임 최고과학총괄(CSO)(사진=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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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자임, ‘크리스퍼 캐스’ 선구자…임상 개발 추진 캐자임은 2017년 설립한 리투아니아 대표 유전자편집 플랫폼 기술 회사다. 크리스퍼 캐스(CRISPR Cas) ‘유전자 가위’ 연구성과를 일군 비르기니유스 식슈니스(Virginijus Siksnys) 빌뉴스대학교 교수와 그의 제자인 기드리유스 가슈나스(Giedrius Gasiunas) 박사, 그리고 경영전략가인 모니카 폴(Monika Paule) 박사가 공동창업했다.
이상 유전자를 절단해 없애는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캐스는 크게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있다. 리보핵산(RNA)으로 만들어진 ‘가이드 RNA’와 데옥시리보핵산(DNA)을 절단하는 효소인 ‘캐스’다. 캐자임은 80종 이상의 캐스 단백질 변형군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가 개발한 캐스12I 플랫폼은 다른 Cas12 단백질과 서열상 동질성이 전혀 없고 아미노산 크기가 850으로, 전통적인 캐스9의 1368보다 작고 적용범위가 넓은게 장점이다.
캐자임은 창업 초기부터 코르테바, 뉴잉글랜드바이오랩스라는 전략적파트너와 함께했다. 공공기관 연구지원금으로 누적 9000만 유로(약 1478억원)을 확보했으며 연구용역서비스를 통한 자체 현금창출로 영업을 이어왔다. 현재는 자체개발하는 망막색소변성 치료제 파이프라인의 인체임상 진입을 위해 처음으로 규모 있는 민간투자유치 및 상장을 계획하고 있다. 구체적인 투자 기업가치는 밝히지 않았다. 현재 회사에는 26명의 직원이 재직중이다.
한국과의 연도 있는 점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캐자임은 지난 2021년부터 국내 유전자편집 기술회사 엔세이지(nSAGE)와 진단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데일리와 만난 가슈나스 최고과학총괄(CSO)은 “한국 툴젠(199800)에 아는 이가 있었고 그를 통해 엔세이지를 소개 받았다”며 “엔세이지와는 맞춤형 캐스 효소 개발 면으로 활발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루카스 즈매티스(Lukas Zemaitis) 지노미카 공동창업자(오른쪽)와 로베르타스 슐라스타스(Robertas Skliaustas) 사업개발총괄이 DNA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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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미카, 차세대 저장장치는 전자기기 아닌 DNA 데옥시리보핵산(DNA)을 정보저장장치로 활용하는 내용의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지노미카(Genomika)는 심화되는 데이터 범람에 맞서는 기업이다. 이데일리와 만난 루카스 즈매티스(Lukas Zemaitis) 지노미카 공동창업자는 “자연은 10억년도 넘는 시간 동안 DNA에 정보를 저장해 왔다”며 “디지털 데이터를 이진수(0, 1)에서 4진 코드(A, T, G, C)로 변환해 이 코드를 DNA 가닥으로 합성한 뒤 보호된 환경에 저장하면, 사진·영상·음악·글 등 모든 종류의 디지털데이터를 장기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로베르타스 슐라스타스(Robertas Skliaustas) 지노미카 사업개발총괄은 “올 연말까지 전세계 데이터량은 181제타바이트(1제타바이트=10억 테라바이트)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6퍼센트의 데이터는 기록보관(archival) 목적으로, 저장은 필요하나 자주 열람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 지노미카의 DNA 저장기법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슐라스타스 총괄은 “DNA의 지름은 5나노미터로, 1㎤ 공간에 10억700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며 “기존 하드드라이브, SDD, HDD 등 전자 저장장치는 작아질 수 있는 크기의 한계에 도달했다. 애플 등 회사들도 차세대 저장장치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진정한 차세대 저장장치는 바이오 기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클라우드 저장장치를 운영하기 위해선 막대한 공간, 수자원, 전력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데이터센터를 더 지어야 하며 물리적인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며 “DNA는 수만년도 넘게 데이터를 보관할 수 있으며 보관기간 동안 어떠한 에너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우주로 정보를 전송하는 실험적 연구를 진행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DNA를 저장장치로 활용하려면 현재 1메가바이트 분량 데이터를 DNA로 인코딩하는 비용은 1만 달러(약 1400만원)이며, 기술이 널리 사용될 수록 비용은 줄어들게 된다. 지노미카의 목표는 1메가바이트 인코딩 비용을 1달러로 줄이는 것이다.
지노미카는 2019년 설립 후 현재까지 연구보조금 및 연구용역으로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2년 전인 2023년 500만 유로(약 83억원) 보조금을 확보했고 현재 10명 인원이다. 프랑스의 바이오메모리, 미국의 트위스트바이오사이언스에서 스핀오프해 설립한 아틀라스 데이터스토리지가 경쟁상대다.
 | 네링가 셰페리냐(Neringa Seperine) 브라키도즈(Brachydose) 대표(사진=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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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키도즈, 방사선량 측정...항암치료 부작용 최소화 리투아니아가 강점을 보이는 ‘메드테크’(Medtech) 카테고리에 속하는 브라키도즈는 2024년 1월 네링가 셰페리냐(Neringa Speriene) 대표가 공동창업했다. 현재 55만4000유로(약 9억원) 규모의 시드 펀딩을 받은 단계다. 리투아니아의 코인베스트캐피탈이 리드했고 BSV 벤처스, 그리고 엔젤투자 네트워크인 리트반(LitBAN)과 에스트반(EstBAN)이 참여했다.
최근까지는 병원들에 3D프린팅 등 연구개발 용역서비스를 제공하던 브라키도즈는 첫 자체 제품으로 ‘튜브 센서’의 상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브라키도즈의 얇고 긴 막대형태의 튜브 센서는 브라키테라피를 받는 암환자의 치료예후를 측정하는 도구다. 브라키테라피란 ‘근접 방사선 치료’로, 암 부위에 방사선 발생 동위원소를 직접 삽입해 암세포를 파괴하는 치료법이다. 외부에서 방사선을 조사하는 일반적인 방식에 비해 필요한 위치에만 치료효과를 극대화시켜 정상 조직의 손상은 줄일 수 있다.
브라키도즈의 튜브 센서는 처방된 방사선량과 실제 전달된 방사선량이 불일치할 경우, 머신러닝 기반의 의사결정 지원 알고리즘으로 경고 메시지를 표시한다. 나아가 부상이나 상처 발생 가능성, 그리고 치료 효과 예측까지 가능하다. 이 데이터로 치료 과정에서의 실수를 예방하고, 병원의 전체 치료 비용을 절감하며, 의사의 시간을 절약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셰페리냐 대표는 “브라키도즈의 튜브를 사용하면 의료진에게 50%의 시간효율성, 환자당 의료비용을 25% 경감, 그리고 입원기간을 3일~5일 단축시킬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 한국과도 협업의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 노쓰웨이바이오텍(Northway Biotech) 사업개발 부사장(사진=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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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웨이바이오텍, 지정학적으로 유럽 ‘정중앙’…소규모 CMO 강점 리투아니아의 바이오 제조부문 대표 기업인 노스웨이바이오텍(Northway Biotech)은 생산 전문성과 인수합병(M&A) 성공 경험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글로벌 기업 테바(Teva)에 인수된 시코르바이오텍(Sicor Biotech) 고위임원으로 근무한 블라다스 알히르다스 뷰멜리스(Vladas Algirdas Bumelis) 교수가 차린 회사다.
노스웨이바이오텍은 2004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항체 등 단백질 기반 바이오 물질 생산 cGMP 시설을 세웠고 2020년 미국 보스턴으로 생산 역량을 확장했다. 지난 2024년 9월부터는 빌뉴스에 플라스미드 DNA, 아데노부속바이러스(AAV) 바이럴벡터 생산역량을 가진 세포·유전자치료제(CGT) 생산시설을 세워 가동하고 있다. 이는 발트반도 최초의 CGT 시설이며 2030년까지 70억 유로(11조원)를 투입해 건축하는 8000㎡ 규모의 빌뉴스 ‘바이오시티 II’의 첫 유닛이다.
이데일리가 만난 앙드레 마크맨(Andre Markmann) 노스웨이바이오텍 사업개발 부사장은 “한국은 작은 나라가 큰 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예시를 보여줘 마찬가지로 작은 국가인 리투아니아에 귀감”이라며 “연구개발부터 제조생산까지 바이오 영역에서 글로벌 성과를 보이고 있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만 봐도 그렇다”고 말했다.
마크맨은 “(노스웨이바이오텍은) 유럽 임상을 계획하는 해외 바이오텍들에게 작게는 10ℓ부터 1000ℓ, 2000ℓ, 4000ℓ 규모로 생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세포주부터 원료의약품(DS), 완제의약품(DP)까지 엔드-투-엔드 서비스”라며 “현재까지 90곳의 고객사를 발굴했고 이들 중 70%가 유럽, 30%가 미국이며 수주를 논의중인 잠재적 고객들 중에 한국 바이오텍도 있다”고 말했다.
 | 노쓰웨이바이오텍이 주도하는 ‘빌뉴스 바이오시티’ 계획(사진=임정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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