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앞으로 국내 양돈시장에서도 수퇘지의 웅취제거에 외과적 거세수술 대신 백신을 접종할 수 있게 된다. 동물복지 논의가 활발한 유럽 및 미국 등지에서는 웅취제거 백신접종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제도의 미비로 웅취제거를 위해 새끼돼지에 마취없는 외과적 거세수술을 해왔다.
3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옵티팜(153710)은 이달 초 다국적 동물의약품 기업인 조에티스와 돼지 웅취제거 백신 ‘임프로박’의 국내 판매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7월 옵티팜이 조에티스, 대한수의사회와 체결한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업무협약(MOU)’의 연장선이다. 이번 계약으로 조에티스는 임프로박의 공급을, 옵티팜은 국내 판매를 맡는다. 지난 2018년 코스닥에 상장된 옵티팜은 동물의약품, 동물질병진단 사업 등에서 매출을 내 이종장기 이식, 바이러스 유시입자(VLP), 박테리오파지 등 인체 사업의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회사다. 이번 계약으로 옵티팜은 흑자전환에 한발짝 더 다가서게 됐다.
| 수퇘지 웅취(雄臭) 제거 백신 임프로박 (제공=조에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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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무마취 거세 안 돼…한국도 백신 도입할 때”돼지고기를 소비하는 많은 나라에서는 거세하지 않은 수퇘지의 육질이 거칠고 특유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생후 일주일내 마취없는 외과적 거세수술을 해 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2회 접종으로 웅취 원인물질에 대한 항체를 만드는 임프로박이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20년부터 수퇘지에 대한 무마취 거세를 법으로 금지하고 백신 사용을 권고하고 있고 임프로박은 현재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팔리는 동물용 백신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외과적 거세수술을 선택한다.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아직 국회 차원의 돼지 무마취 거세 금지 관련 입법 논의가 없다”며 “하지만 최근 동물보호, 동물복지가 강조되고 있어 수의사회 차원에서도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는 외과적 거세 대신 웅취제거 백신을 접종해 기른 돼기고기가 상등품으로 여겨진다. 외과적 거세를 할 경우 돼지가 빨리 크고 근육이 많아지도록 만드는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호르몬도 같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에 등지방 두께가 두꺼워져 고기의 품질도 떨어진다. 거세 과정에서 감염으로 인한 폐사율도 높다. 수퇘지의 무마취 거세를 반대하는 측은 웅취제거 백신을 접종할 경우 테스토스테론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므로 외과적 거세에 비해 사료효율도 높다고 주장한다. 김현일 옵티팜 대표이사는 “돼지고기 2kg을 생산하려면 사료 3kg을 먹어야 하지만 임프로박을 접종하면 사료소비가 연 12.5% 줄어든다”며 “길게 보면 웅취제거 백신 접종이 탄소배출 저감, 곡물가격 안정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500억 시장 개화 ‘코앞’…인식·제도 개선은 과제매년 국내에서 출하되는 수퇘지는 1000만두다. 웅취제거를 위해 샷 하나에 2500원인 임프로박을 두 차례 맞아야 하기 때문에 외과적 거세 대신 웅취제거 백신이 보편화되면 500억원 규모의 시장이 새롭게 열린다.
다만 국내 한돈업계와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과제다. 조에티스는 지난 2007년에도 임프로박을 국내 시장에 선보였지만 한돈업계의 반발로 국내 시장에서 철수했다. 백신을 맞은 돼지 중 일부가 비거세 돼지 판정을 받아 이에 피해를 입은 농장주들의 반발이 커지면서다. 당시 웅취제거 백신은 호르몬 주사가 아님에도 체내 잔류가능성을 우려해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현재 옵티팜은 웅취제거 백신에 대한 농가 인식 개선 및 백신접종 돼지의 평가시스템 개선을 위해 농축산 품질평가원, 대한수의사회와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소비자 우려를 불식시키고 웅취제거 백신의 비용절감 효과를 알리기 위해 일부 농장을 대상으로 임프로박을 맞은 수퇘지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 골자다. 업계에서는 임프로박이 시장에 안착되기까지 최소 2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옵티팜은 우선 모회사인 이지바이오 내 축산농가를 중심으로 임프로박을 보급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알린 뒤 순차적으로 다른 농가에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