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호 기자]“엑소좀 관련 바이오 벤처들이 2010년대 초중반부터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약 30여 개가 있습니다. 이들의 노력이 상업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엑소좀의 대량 생산 기술 개발이 필수적입니다.”
4일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코리아 2022 ‘엑소좀의 무한한 확장성’ 세션에서 발표를 진행한 고용송 로제타엑소좀 대표는 “엑소좀 치료제로 개발하거나 다른 치료제 후보물질을 원하는 부위로 보내는 ‘약물전달시스템’(DDS)으로 활용하려는 연구 등이 10년 전부터 다양하게 활성화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 고용송 로제타엑소좀 재표가 4일 바이오플러스-잍터펙스 코리아 2022 중‘ 엑소좀의 무한한 확장성’ 세션에서 관련 업계와 시장 동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제공=김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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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대표에 따르면 엑소좀은 인간 등 포유류의 동물세포 속에 존재하는 수십㎚(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수준의 ‘소낭’(베지클·vehicle)을 의미하는 용어다. 그런데 사실 관련 학계 및 업계에서는 엑소좀 대신 더 넓은 의미를 가진 ‘자연 유래 베지클’(EV)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EV가 이 세상 모든 생명체가 만들어 내는 소낭을 통칭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EV 대신 엑소좀이라는 용어가 널리 통용되는 상황이다.
고 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EV 관련 연구를 수행한 세계적인 전문가로 포항공과대(POSTECH)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그는 2016년 22건의 EV 분야 원천기술 특허를 바탕으로 로제타엑소좀을 설립했다. 현재 회사는 박테리아의 EV를 활용한 면역항암제 신약 후보물질 ‘REX101’의 전임상 연구 및 EV의 대량 생산 기술 개발 등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 2월 출범한 엑소좀산업협의회에 따르면 2010년대 초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엑소좀 관련 국내 바이오 벤처는 엠디뮨, 로제타엑소좀,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등 30여 개에 이르는 상황이다. 고 대표는 “엑소좀 기업들은 관련 신약개발과 함께 자체적인 EV 생산 기술를 보유하려 시도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날 국내 대표 엑소좀 기업이 밝힌 생산 능력을 비교해보면 로제타엑소좀의 생산 스케일이 300L급으로 1위다.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의 생산 스케일은 100L, 엠디뮨은 50L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중 엠디뮨이 보유한 압출 방식의 EV 생산 기술은 수용액 내 세포들에 압력을 가하면서 미세 구멍이 뚫린 세포막을 통과시킨다. 이때 분해된 세포의 조각을 EV의 모사체(유사 물질)로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오승욱 엠디뮨 최고과학책임자(CSO)는 “막을 통과하며 쪼개진 세포는 자연스럽게 구형의 소낭의 모양을 띠게 된다. 이렇게 생산된 소낭의 모사체가 EV와 같은 물리화학적 기능을 지닌 것이 알려졌다”며 “50L 이하 수준에서 한 번에 압출로 EV의 모사체를 생산하는 프로토타입을 개발 완료한 상태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세계적인 위탁생산개발(CDMO) 기업인 스위스 ‘론자’(LONZA)와 엑소좀 생산 기술에 대한 협력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이에 고 대표는 “10여년 전 직접 개발한 압출 방식의 EV 모사체 대량 생산 기술을 엠디뮨에 넘겼고, 해당 기술이 사업화에 성공했다”며 “최근 이를 보완하는 기술을 추가로 개발해 300L까지 스케일업한 상태다”고 말했다.
최철희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대표는 “단백질이나 크리스퍼-캐스9 같은 유전자 등의 치료물질을 EV에 탑재해 전달하는 기술을 고도화하면서, 생산 스케일업에도 개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현재 100L급 수준이며, 이를 1000L까지 늘리기 위한 연구개발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배신규 엠디뮨 대표, 조병성 엑소코바이오 대표, 방오영 에스앤이바이오 대표, 최철희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대표, 오승욱 엠디뮨 최고과학책임자(CSO), 고용송 로제타엑소좀 대표 등이 ‘엑소좀의 무한한 가능성’ 관련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제공=김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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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시장조사업체인 DBMR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EV 관련 시장은 2021년 117억7400만 달러(한화 약 14조원)에서 2026년 316억9200만 달러(한화 약 38조원)로 연평균 약 21.9%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적으로 보면 스위스 노바티스가 박테리아의 EV를 활용해 만든 최초의 신약으로, B혈청군 뇌수막염 예방백신 ‘백세로’를 개발해 2012년 유럽의약품청(EMA)의 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2014년 노바티스의 백신사업부를 인수한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이듬해인 2015년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백세로의 시판 허가를 획득했다. 지난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백세로를 허가하는 등 주요국에서 해당 약물이 판매되는 중이다.
고용송 대표는 “백세로의 올해 세계 매출이 1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며 “엑소좀 치료제와 전달체 시장은 향후 개발 과정이 본격화될수록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2016년에 나란히 설립된 미국 ‘코디악 바이오사이언스’(코디악)와 ‘에복스’(EVOX) 등이 업계 선두 주자로 꼽힌다. 코디악은 이미 EV를 바탕으로 신약 후보물질 총 3종을 개발해 임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론자가 6500만 달러(당시 한화 약 740억원) 규모로 코디악으로부터 EV 생산시설을 인수했다. 또 에복스는 아르기닌숙신산뇨증 등 희귀 유전질환 관련 EV 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복스는 2020년 일본 타케다제약과 8억8200만 달러(당시 한화 약 1조400억원) 규모로 5종의 EV 치료제 후보물질 공동개발 협약을 맺었으며, 지난해 6월에는 일라이릴리와 리보핵산간섭(RNAi) 물질을 탑재한 EV 관련 신약 개발을 위한 12억3000만 달러(당시 한화 1조 4070억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오승욱 CSO는 “최근 2~3년간 코디악과 EVOX가 미국 일라이릴리나 론자 등 글로벌 제약사(빅파마) 맺은 기술 계약 규모가 수조원 이상이다”고 말했다. EV 관련 신약후보 물질 등의 기술수출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고 대표는 “EV와 관련한 강력한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는 난치성 신약개발 물질을 발굴하면, 한국 기업도 글로벌 선두 업체로 도약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