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범부처(복지부·과기부·산자부) 국가신약개발사업단(KDDF)은 국내 신약개발 과제에 연구비, 사업개발 컨설팅 등을 지원하는 10년 기간 정부사업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최대 결과물을 내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누적 423개 파이프라인을 지원한 것에 대해 ‘어느 하나 걸려라’식으로 넓고 얕게 흩뿌린 지원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벤처캐피탈(VC) 투자유치를 받지 못한 경쟁력 없는 ‘좀비 바이오텍’들의 연명책이 아니냐는 시각까지 제기된다. 이데일리는 KDDF 지원 과제들의 허와 실을 분석해봤다.
물질 발굴에 쏠린 지원 신약개발은 선진시장인 미국 수준의 재정적 지원과 인적자원을 갖췄다는 가정하에 최소 10년간 1.5조원 이상의 자금이 소요된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신약허가까지 전주기를 성공할 확률은1만분의 1에 그친다.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이다. 이런 시장에서 정부 지원자금이 ‘눈먼 돈’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당장의 해결책은 빠른 시장성 확보, 즉 기술이전(license-out)으로 대두된다. 연구비 부담을 글로벌 대형제약사(빅파마)에 바통을 넘기는 거다. 자체적으로 ‘블록버스터’ 신약개발을 이뤄내 국내기준 1000억원, 해외기준 1조원의 매출을 내기보다는 기술이전을 통해 수십억~수백억원의 선급금을 받고 이후 개발 단계별 마일스톤 매출을 일으키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국내 기업이 자체 신약개발을 완주할 수 있도록 임상 2~3상 및 상업화에 정부지원이 이루어져야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껏 경쟁력 있는 물질을 발굴해놓고 기술이전 또는 파트너링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은 국부 해외유출이라는 거다.
 | (자료=KDDF) |
|
KDDF는 초기물질 발굴에 지원을 집중하고 있는 점이 아쉬움을 산다. 지난 4년간 총 423개의 파이프라인을 지원했으며 이 중 유효물질(Hit) 단계가 20%, 선도물질(Lead) 단계가 27%, 후보물질(Candidate) 단계가 22%, 이어 비임상 20%, 임상 1상 8%, 임상 2상 3%로 구성됐다. 지원 대상은 바이오벤처가 73%를 차지했고 대학 등이 20%, 연구기관이 7%였다.
조정우 전 SK바이오팜 사장도 “정부 지원이라면 가장 많은 자금을 필요로하는 임상 3상에 도움을 쏟는 게 마땅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펼친 바 있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치료 신약 엑스코프리 또한 2012년~2016년 사이 일부 연구비를 선행사업단에서 지원받았지만 아쉬움이 남았던 것으로 파악된다. SK바이오팜은 결국 임상 3상까지 자체 완료해 미국 직판체계를 구축하고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KDDF는 상업화된 신약인 SK바이오팜(326030)의 엑스코프리, HK이노엔(195940)의 케이캡, 유한양행(000100)의 렉라자, 대웅제약(069620)의 펙수클루, 알테오젠(196170)의 테르가제주를 성과로 소개하는데, 일부 연구단계를 지원했을 뿐임에 비약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별개의 자리에서 김순남 KDDF R&D 본부장은 “임상 3상은 원칙적으로 지원 대상이 아니다. 정부 자금으로 하기에 너무 규모가 크며 3상까지 진행된 약은 성공확률이 높아 글로벌 파트너를 통한 공동개발을 제안드린다”고 말했다.
 | (자료=KDDF) |
|
이와 관련해 김진선 KDDF 대외협력팀장은 “신약개발 단계별 성공률이 낮기 때문에 초기 단계는 적은 비용으로 다수의 과제 지원하고 후기 개발 단계의 경우 성공 가능성이 가시화된 소수의 과제를 지원한다”며 “한 개의 물질이 연속된 개발 단계(예. 후보-비임상-임상)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약 1조~2조원의 개발비용이 소요되는 신약개발에서 과제당 8억~91억원의 연구비가 미미할 수있으나, 위험부담이 커서 민간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투자냉각기에 정부지원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가시화함으로써 민간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비 지원 규모 비공개 KDDF 과제에는 영업이익을 내는 제약사들도 지원하는 점이 눈에 띈다. 한미약품(128940)이 3개 과제를 지원받았고 대웅제약(069620)의 특발성폐섬유증 치료제, 유한양행(000100)의 신규 비만치료제 YH34160, 동아ST의 면역항암치료제 DA-4505 등이다.
김 KDDF 대외협력팀장은 “국내 제약기업의 규모가 글로벌 기준에서 영세하다. 1조원 매출을 내는 국내 제약사도 글로벌에서는 매출 100위권 진입이 어렵다”며 “정부 지원으로 위험 부담을 분산해 개발을 지속하게 하는 효과”라고 말했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단순히 연구비 지원 뿐 아니라 물적, 인적 지원과 공신력 확보로 미래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지원 동기를 밝혔다.
물론 KDDF 지원이 ‘실버 불렛’은 아니다. 하나제약(293480)의 MRI 조영제 신약처럼 임상 2상 단계 지원으로 24억원을 지원 받았지만 도중에 중단한 건도 존재한다. 이후로는 연구비 지원 규모를 비공개하고 있다.
현재 KDDF는 예타에서 제시한 정원인 50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산업계에서 직접 연구개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과제를 검토하고 선정하지만, 쌓여가는 지원 과제를 관리하고 키워가기에 충분한 인력인지에 대해 의문도 나온다.
한편, 작년 KDDF가 지원한 과제는 저분자화합물이 38%를 차지해 가장 큰 규모였지만 전년도 43%에 대비해서는 소폭 줄어들었다. 다음으로 큰 지원을 받은 품목은 세포유전자치료(CGT) 군으로 전체 지원의 21%를 차지했다. 이어 항체가 19%로 3위를 차지했다. 소규모 지원을 받았지만 직전연도 대비 지원이 늘어난 품목은 타깃단백질분해제(TPD)였다. 전년도 7%에서 9%로 늘어났다. 방사성의약품(RPT)은 1%대 지원을 받았지만 주요 지원 품목군으로 소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