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우리나라 지자체들은 저마다 산업진흥원을 비롯한 다양한 지원 조직을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의료기기 육성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이 성남산업진흥원이다. 국내 최초로 국산 의료기기 실사용 확대를 위한 교육훈련 기관인 ‘광역형 국산 의료기기 교육훈련지원센터’를 설립, 현재 가장 체계적인 인프라를 운영 중인 유일한 거점 기관으로 평가받는다.
 | 김홍철 성남산업진흥원 교육훈련지원 센터장.(사진= 석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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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철 성남산업진흥원 교육훈련지원 센터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외산 의료기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70~90%에 달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좋은 국산 제품이 있다’는 홍보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이러한 생태계 장벽을 타파하기 위해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우리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 교육훈련지원센터는 △수출 유망 품목의 해외 진출 확대 △수입 의존 품목의 국산 대체 기반 마련 △혁신형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 지원 등 세 가지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에게 △교육훈련 운영 △사용 적합성 테스트 △전시 마케팅 등을 지원한다. 그 동안 교육훈련지원센터에 참여한 기업은 모두 141곳에 달한다.
성과도 뚜렷하다. 센터의 지원을 받은 제품은 53개 병원에 진입했고, 전국 801개 병·의원에 납품됐다. 해외 진출 실적도 30개국 이상에서 나타났다.
그동안 센터는 초음파 진단기, 내시경 시스템, 인공수정체, 3D 수술현미경, 복강경 수술기구, 자동주사기, 피부치료기기 등 다양한 국산 의료기기 기업을 지원해왔다. 주요 상장사로는 휴메딕스(200670) 원텍(336570) 큐렉소(060280) 등이 있으며, 상장에 임박한 기업으로는 최근 83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리브스메드가 있다.
김 센터장은 “기업이 직접 의료기기를 홍보하는 방식도 있지만, 우리는 키닥터(Key Doctor)가 국내외 의료진에게 술기를 교육하면서 자연스럽게 국산 의료기기를 소개하는 방식을 활용한다”며 “키닥터가 사용하는 장비에 대한 신뢰는 의료진 사이에 쉽게 확산된다”고 설명했다.
R&D 지원만으론 부족…실사용 경험 늘려야 그 동안 정부는 R&D 중심의 지원 방식으로 의료기기 산업을 육성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국산 의료기기가 나와도, 정작 의료현장에서 사용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김 센터장은 지적했다. 의료진이 제품을 인지하고 신뢰할 기회가 부족하며, 직접 사용해볼 경험이 거의 없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산 의료기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30% 후반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바이오헬스 분야인 화장품(84%)이나 의약품(61%)과 비교하면 낮은 수치다.
김 센터장은 “의료기기 점유율이 낮은 이유를 기업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지만, 외산이 장악한 생태계 구조 자체가 문제”라며 “국산 의료기기를 의료진이 실제로 써볼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 이를 사용해본 의료진이 커뮤니티 내에서 추천하는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 최초 상하좌우 90도 회전이 가능한 다관절 수술기구 ‘아티센셜’을 개발한 리브스메드다. 아티센셜은 활발한 의료진 교육 훈련과 기업 노력을 통해 매년 매출이 70%씩 고성장 중이며, 1대 당 20억원이 넘는 외산 복강경 수술로봇을 일정 영역 대체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장을 앞둔 현재 기업가치는 8300억원대로 추정된다. 이밖에 알피니언(초음파), 메디허브(무통 주사기) 등도 교육훈련을 계기로 병원 진입을 확대했다는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단순히 공모를 받고 심사를 통해 지원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넘어 우리는 수출입 통계 데이터에 아직 잡히지 않는, 잠재력을 가진 혁신 기업을 직접 발굴하고 찾아가고 있다”며 “올해는 흥케이병원, 스카이브와 함께 국산 인공무릎관절 최소침습 수술 교육훈련을 새롭게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인공무릎관절은 최근 수입 의료기기 중 8위 품목으로 올라섰다.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전 세계적으로 무릎관절 의료기기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국내에서도 연간 2만 건이 넘는 수술이 시행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흥케이병원은 국산 인공무릎관절을 활용한 최소침습 술기를 보유한 국내 몇 안되는 병원으로 꼽힌다.
김 센터장은 “대한민국이 지속 성장하려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이를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반도체, 조선, 자동차도 처음엔 우리에게 없던 산업이었다. K-의료기기 역시 한때는 서구에 밀려 변두리에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교육훈련을 통해 한국만의 강점을 살린다면 매출 10억 원이 30억 원으로, 100억이 500억, 5000억이 1조 원이 되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프로그램 참여를 원하는 기업은 성남산업진흥원 홈페이지 내 사업신청-사업공고에서 광역형 국산의료기기를 검색하면 된다. 성남시 소속이 아닌 기업도 신청 가능하다. 컨소시엄인 분당서울대병원, 가톨릭대 산학협력단, 한국스마트의료기기산업진흥재단에 문의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