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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연, 마약중독 치료제 개발에 관심 읍소…“시장 작다는 건 오해”
  • 17일 마약중독 치료제 관련 정책세미나 개최
  • “제도적 유연화·인식개선 없이 치료제 확보 불가”
  • 등록 2025-09-17 오후 4:39:06
  • 수정 2025-09-17 오후 4:39:06
[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복약이 편하고 안전한 중독치료제가 보급되면 무엇보다 전국 가정의학과에서 가장 수요가 클 거예요. 중독치료제들의 타깃이 ‘마약중독’이라고만 생각해서 시장이 작다고들 여기는데, 한국에 만연한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서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최수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마약중독 치료의 현황과 국가 주도 치료제 확보 필요성’을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중독치료제 개발 및 도입에 국내 제약사의 관심이 부족한 것을 지적하며 “마약중독 치료를 위해 당장의 치료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시급하지만 지금은 컨트롤타워도 없고 톱다운으로 예산이 분배되다보니 효율적인 투자가 집행되지 않는 것 같다”며 정부의 관심을 함께 촉구했다.

인천참사랑병원은 국내에서는 마약중독증 치료의 본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국내 마약중독 환자의 70%에 가까운 이들이 이곳에서 진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마약중독 치료의 현황과 국가 주도 치료제 확보 필요성’을 주제로 한 정책 세미나. 산·학·연 관계자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관련 내용을 발제하고 의견을 공유했다. (사진=인벤티지랩)


천영훈 원장은 “해외에는 마약중독 치료제로 메타돈, 부프레노르핀, 날트렉손과 같은 성분의 약들이 많이 쓰인다. 반면 국내에서는 메타돈과 부프레노르핀은 아편계(오피오이드 계열) 약물이기 때문에 통증 치료제로만 처방이 가능하고 중독 치료제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대신 국내에서는 중독치료를 위한 약물치료 방법으로 날트렉손과 아캄프로세이트만 처방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제한적이다. 환자들에게 경구용 날트렉손을 매일 1회씩 복용하도록 하는데 이건 복약순응도가 굉장히 떨어진다. 미국에서 출시된 1개월 지속형 날트렉손 주사제 ‘비비트롤’은 국내 허가가 안 돼 있다”며 임상현장에서의 아쉬움을 전했다.

천 원장은 “예전부터 비비트롤을 (국내에) 들여와달라고 제약사들에 계속 부탁해왔다. 그 정도로 임상현장에서는 굉장히 절실하게 필요한 약”이라며 “하지만 제약사들이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직까지 날트렉손 성분 치료제는 매일 복용하는 경구용 날트렉손만 국내에서 쓸 수 있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박선영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중독정신과 과장도 이제까지 마약중독 치료제가 국내 의료 현장에 충분히 도입되지 않은 것은 중독치료에 대한 잘못된 사회적 인식 탓이 크다고 봤다.

박 과장은 “중독치료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은 데는 △중독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해온 사회적 인식 △완전한 금주, 완전한 단약만이 치료의 유일한 목표라고 착각해온 것, 이렇게 두 가지 문제가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날트렉손 같은 약물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있을 때 이를 보조하는 효과보다 술을 먹고 싶을 때, 혹은 한 잔을 마셨는데 더 마시고 싶을 때 이를 차단하는 효과가 크다”며 “한달 내내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사람, 매일같이 마약 투약을 하는 사람이 치료제를 통해 한달에 한 번 정도로 음주나 마약투약 횟수가 줄었다면 이것도 중독치료의 성공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사회적 인식 때문에 국내 중독치료제 시장 규모도 실제보다 작게 여겨지고, 사람들도 치료를 받으러 오지 않는다. 인식을 개선해서 알코올·마약 중독은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고 빈도수나 복용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치료의 성공이므로 병원에 올 필요가 있다고만 알려도 국내 중독치료제 시장에 관심을 가질 곳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석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도 “‘센 독을 묽은 독으로 치료한다’는 개념의 이이제독으로 중독치료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오피오이드 계열 마약치료제도 임상현장에서는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를 위한 연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절대 허가해주지 않는다. 적어도 중독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학교에서는 이를 연구하고 전문가를 육성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인벤티지랩(389470)은 비비트롤의 단점을 개선한 날트렉손 성분의 1개월 지속형 주사제 IVL3004를 개발 중이다. 날트렉손 투약 초기 약물 과방출 구간을 줄여 간세포 독성 등 날트렉손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비비트롤 대비 약물 용량을 줄여 가격경쟁력을 높인 제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김주희 인벤티지랩 대표이사가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마약중독 치료의 현황과 국가 주도 치료제 확보 필요성’ 세미나에서 ‘글로벌 약물중독 치료제 적용 사례와 국가주도 치료제 확보 필요성’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사진=인벤티지랩)


김주희 인벤티지랩 대표이사는 “우리 회사는 자체 약물 전달 시스템(DDS) 플랫폼을 갖고 있기에 날트렉손뿐 아니라 부프레노르핀도 장기지속형 주사제로 만들어보고자 내부적으로 연구했다. 이 역시 동물실험에서 효과가 좋게 나왔으나 사업적 확장성, 시장성을 감안해 본임상 단계로 개발을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며 “만약 이에 대한 수요가 있고, 국가적으로도 다양한 치료제 확보를 필요로 한다면 인벤티지랩은 개발적 측면에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최수진 의원도 세미나 주최자로서 마무리 발언에 나섰다. 최 의원은 정계 진출 전에는 OCI(456040)의 바이오사업부 부사장과 파노로스바이오사이언스 대표이사를 거친 인물이다. 그는 “기업에 몸 담았던 입장에서 정부나 투자업계의 투자 없이 기업에서 절대 먼저 (신약개발에) 돈을 투입하기 어렵다”며 “특히 마약·알코올 중독증의 경우 다른 질병과는 달리 환자가 치료를 위해 스스로 약을 구입하는 경우가 드물 수 있다. 그렇기에 중독환자가 치료제를 강제로라도 복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중독치료제를 제도 내부로 포섭해야 한다. 입법부와 정부가 나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므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겠다. 복지부와 식약처도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열린 세미나에서는 국민의힘 장동혁 당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가 축사를 전했고,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권준수 한양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박선영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중독정신과 과장, 서정석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이 발표 및 패널 토론을 진행했다. 이밖에 벤처캐피탈(VC) 관계자들도 여럿 자리해 마약중독 치료제에 대한 업계의 관심을 방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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