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정부가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약가 가산 혜택을 확대했지만, 자회사 및 계열사가 생산한 원료는 인정하지 않는 기준을 확정하면서 제약업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대형 제약업체들이 원료의약품 생산 자회사를 두고 있는 만큼, 사실상 실효성이 없는 제도라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의약품 원료 공급망 안정을 위해서는 사실상 조건 없는 우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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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 생산 자회사 둔 제약사들…약가 우대 사각지대 1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8월 약가제도 개편을 통해 원료의약품 직접 생산에 따른 우대제도를 시행키로 방침을 정했다. 원료를 자사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국산 원료를 사용한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해 약가를 68% 수준으로 우대하고, 원료 직접생산 의약품의 우대기간도 기존 1년에서 5+5년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이번 우대 제도는 제네릭(복제약)의 약가 산정률을 낮추는 대신 국내 의약품의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는 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취지로 마련됐다. 정부는 약가제도 개편을 통해 기존 오리지널 약가의 53.55% 수준이던 제네릭 약가를 최종적으로 45%까지 낮추기로 했는데, 이에 대한 보완책의 성격인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도 도입 과정에서부터 적잖은 반발이 나오고 있다. 원료의약품 직접 생산에 따른 약가 가산 혜택을 받는 제약사 상당수가 제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원료의약품을 ‘직접 생산’하는 기업에 대해 혜택을 주기로 했는데, 자회사나 계열사를 통해 원료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제약업체들은 원료의약품과 완제의약품의 생산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발전시켜왔다. 원료의약품은 화학 합성이나 정제 등 전문적인 제조기술과 설비, 품질관리 역량이 필요한 분야인 반면 완제의약품은 원료를 배합해 정제·캡슐 등 최종 의약품으로 제조하고 허가·판매하는 사업으로 서로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료의약품 전문 기업이 계열사뿐 아니라 외부 제약사와 해외 기업에도 원료를 공급하면서 독자적인 사업 기반을 구축한 사례도 적지 않다.
유한양행(000100)은 원료의약품 전문 자회사 유한화학을, 한미약품(128940)은 한미정밀화학을 통해 원료 생산 역량을 확보한 것이 대표적이다. 종근당(185750)은 경보제약과 종근당바이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웅제약(069620) 역시 대웅바이오를 통해 원료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개편안 기준으로는 실제 약가 가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업은 극소수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책의 목적이 원료의약품의 국내 생산을 확대하고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데 있다면, 동일 법인 여부만으로 혜택을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악용 방지 취지 공감하지만…“국내 생산 여부로 판단해야” 정부가 아무런 이유 없이 원료의약품 약가 가산 혜택 대상의 폭을 ‘직접 생산’ 기업으로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국가필수의약품에 대해서는 국산 원료를 쓰는 경우 우대를 해준다”며 “회사의 지배구조 등을 모두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회사가 원료의약품을 생산하는 경우 인정을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과거 제약사들이 이 제도를 악용한 사례도 있던 탓에 이같은 제한을 둔 것으로도 전해진다. 해당 사안에 밝은 관계자는 “약가 우대를 받기 위해 원료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고, 우대를 받은 뒤에는 다시 지분을 정리하는 식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대를 받을 때는 국산 원료의약품을 쓰다가 나중에 중국산 원료의약품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회사와 계열사 생산을 무조건 인정하거나 배제하기보다 실제 국내 생산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분 100% 자회사처럼 지배관계가 명확한 법인이나 원료의약품 등록(DMF)을 통해 제조소와 원료 정보가 확인되는 경우를 대상으로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혜택 범위를 좁히기보다는 감시와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과거에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있다고 해서 이 제도의 실효성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선 원료의약품 공급 안정화 취지에 맞게 약가 우대 혜택을 주면서 이를 악용하는 기업이 있는지 모니터링하고, 만약 악용 사례가 적발될 경우 그에 따른 제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원료의약품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서는 과감하고 유연한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올리는 게 목적이라면 자체 생산이라는 기준을 둘 것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국산 원료의약품을 쓰는 기업에게 가산 우대를 해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약가 인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 엄격한 잣대를 고수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기조가 약가 인하이다보니 명분을 만들어 약가 우대 혜택을 확대하지 않으려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