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코로나19 때 많은 글로벌 제약사가 깨달았다. 한 국가 생산기지만으로는 환자에게 약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일랜드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을 향해 강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단순한 유럽 시장 ‘관문’이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백업 생산기지’이자 첨단바이오 연구개발(R&D) 허브라는 점을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국내 대표 바이오 기업들과 잇따라 접촉하며 한국 바이오 유치전에 본격적으로 나선 모습이다.
 | | 레이첼 셀리(Rachel Shelly) 아일랜드 투자개발청(IDA Ireland) 생명과학·식품·의료기술 본부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주한 아일랜드대사관에서 이데일리와 단독 인터뷰 중이다. (사진=김지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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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셀리(Rachel Shelly) 아일랜드 투자개발청(IDA Ireland) 생명과학·식품·의료기술 본부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주한 아일랜드대사관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아일랜드는 단순한 유럽 진출 창구가 아니다”라며 “한국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차세대 바이오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진출 관문 넘어…‘공급망 보험’ 역할” 셀리 본부장이 가장 강조한 키워드는 ‘공급망 복원력’이었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생산 역량을 갖췄지만, 팬데믹과 지정학적 변수 속에서 ‘한 국가 집중 생산’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와 브렉시트를 거치며 글로벌 제약사들은 공급망 취약성을 절실히 경험했다”며 “한 지역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해도 다른 지역에서 환자에게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아일랜드는 한국 기업이 유럽 내에서 신뢰할 수 있는 백업 생산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라며 “미국·아시아·유럽으로 이어지는 ‘3축 공급망’ 전략에서 유럽 거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아일랜드는 화이자, 존슨앤드존슨, 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빅파마 생산기지가 밀집한 국가다. 현재 생명과학 분야 종사자만 약 10만명에 달한다. 아일랜드가 70년 이상 글로벌 제약사들과 협력한 결과다.
한국 기업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아일랜드에는 SK바이오텍이 이미 진출해 원료의약품(API) 생산을 하고 있다. SK바이오텍은 SK팜테코 산하 글로벌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 일부로, 아일랜드 내 생산 거점을 운영 중이다.
셀리 총괄은 “아일랜드는 일본 다케다, 아스텔라스 등 아시아 제약사와도 오랫동안 협력해 왔다”며 “한국 기업 역시 글로벌 확장 과정에서 아일랜드를 검토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R&D 세액공제 50% 효과”…공정개발·ADC까지 확장 아일랜드가 자신 있게 내세우는 또 다른 무기는 세제 혜택과 R&D 인프라다.
셀리 본부장은 “아일랜드에서 공정개발과 R&D를 수행하면 세액공제와 정부 지원을 통해 비용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다”며 “공정개발과 기술이전 과정까지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다”고 현지 정책을 소개했다.
그는 특히 “R&D 세액공제와 IDA 인센티브를 합치면 기업 입장에선 사실상 비용의 절반 수준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일랜드 정부가 설립한 바이오공정 전문기관 ‘국립 바이오공정 연구·훈련원’(NIBRT, National Institute for Bioprocessing Research and Training) 역시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NIBRT는 바이오의약품 생산 공정을 실제 공장 수준으로 구현해 실무형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매년 약 5000명의 바이오 전문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인천 송도에 조성된 K-NIBRT도 이 모델을 기반으로 설계됐다. K-NIBRT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셀트리온(068270) 등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이 밀집한 송도 바이오 클러스터와 연계해 실무형 바이오공정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실제 ‘우수의약품 제조·관리’(GMP) 기반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정을 교육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인천시·연세대 국제캠퍼스 등이 참여했다.
셀리 본부장은 “NIBRT는 단순 연구기관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라며 “최근에는 세포·유전자치료제와 ADC 등 차세대 바이오 영역으로 교육·연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일라이릴리는 아일랜드에서 저분자 의약품 생산으로 시작해 펩타이드와 바이오의약품 공장까지 단계적으로 확장했다. 아스텔라스 역시 기존 생산거점을 기반으로 무균제제와 ADC 생산 역량을 키우고 있다.
셀리 본부장은 “많은 기업이 처음에는 제조시설만 구축하지만, 이후 공정개발과 차세대 제품 연구로 자연스럽게 확장한다”며 “아일랜드는 단순 생산기지가 아니라 기업이 가치사슬 상단으로 이동하도록 돕는 국가”라고 강조했다.
 | | 레이첼 셀리(Rachel Shelly) 아일랜드 투자개발청(IDA Ireland) 생명과학·식품·의료기술 본부장. (사진=김지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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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바이오의약품·ADC·AI 제조”…韓바이오와 ‘찰떡 궁합’ 아일랜드가 한국 기업에 가장 기대하는 분야는 첨단바이오의약품, ADC, 스마트 제조다.
셀리 본부장은 “첨단바이오의약품, ADC는 차세대 성장 분야이며 한국 기업이 강점을 가진 영역”이라며 “아일랜드의 제조·규제·R&D 인프라와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 결합하면 글로벌 확장에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실제 첨단바이오의약품과 ADC는 단순 생산이 아닌 ‘초고도 규제산업’으로 분류된다. 특히 세포·유전자치료제는 생산 공정 자체가 품질과 안전성을 좌우하기 때문에 유럽의약품청(EMA)와 미국식약품청(FDA) 규제 대응 역량, GMP 기반 제조 경험, 공정 검증 능력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EMA 역시 별도의 첨단바이오의약품 분류·심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세포·유전자치료제는 환자 맞춤형 생산 비중이 높고 공정 복잡도가 높아 생산·품질관리·물류·규제 대응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단순 제조시설보다 규제 경험과 바이오공정 인프라가 집적된 지역을 선호하는 추세다.
다음으론 인공지능(AI) 기반 바이오 제조를 차세대 핵심 분야로 꼽았다.
셀리 본부장은 “바이오 기업들은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생산량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며 “AI 기반 제조, 디지털 제조, 스마트 제조 역시 아일랜드가 적극 투자하는 분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차세대 바이오의약품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아일랜드는 매우 전략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