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A바이오기업 IR담당자는 최근 이직을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주주들로부터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욕설은 물론 성희롱까지 서슴지 않는 항의 전화에 시달려서다. 최근 이 담당자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멎을 거 같아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제약 바이오 기업의 IR담당자(주식 담당자, 투자자 대상 기업활동 담당자)들이 도를 넘는 주주들의 항의 전화 등에 골병을 앓고 있다. 주주들이 회사 경영을 견제하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폭언과 욕설, 성희롱 등 도를 넘는 주주들의 ‘갑질’ 행위는 기업 활동을 위축하고 IR영역을 기피하게 만들어 IR활동 자체의 질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6일 제약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제약 바이오 IR담당자 사이에서는 IR담당자가 사실상 일부 일탈 주주들의 “욕받이”로 전락했다는 푸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B바이오기업 IR담당자는 “주가가 하락하면 개인전화번호까지 찾아내 밤낮없이 연락하고 메시지 보내는 것은 기본”이라며 “IR담당자에게 분풀이를 해오는데 그 수준은 민원 담당하는 공무원이 자살했다는 얘기가 나오면 공감이 될 정도”라고 말했다.
주가 하락시 IR담당자에게 쏟아지는 항의 전화 일부에서는 문자로 옮기기에 적절치 않은 막말들이 넘쳐난다. 다짜고짜 욕두문자부터 날리는가 하면 비속어를 사용해 IR담당자의 부모를 거론하며 IR담당자를 비하하고 여직원의 경우 회사 대표 이름을 소환해 성희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앞의 정신과를 찾았다는 A바이오회사 IR담당자는 “욕은 그대로 참을 만한데 성희롱은 진짜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IR담당자에 대한 투자자들의 그릇된 성토는 전화 통화로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 포털의 종목 토론방, 주식 카페 등으로 IR담당자에 대한 집중공격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주식담당자 휴대폰 번호와 실명이 공개되는 일도 빚어진다. IR담당자에 대한 무차별적인 ‘문자 테러’ 등이 발생하는 경위다. 포털의 종목 토론방은 대화 내용이 모두 공개돼 주주들의 갑질이 확대 재생산되는 부작용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주식 붐에 편승해 성급하게 거액을 투자하는 행태가 주주 일탈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C바이오기업 IR담당자는 “회사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투자하는 분들도 진짜 많다”며 “휴대폰도 1년에 하나씩 제품이 나오는데 얼마나 대단한 약을 만들어 임상이 몇 년이 걸리느냐고 따지는 투자자도 많다”고 전했다. 신약개발은 통상 전임상부터 임상 1·2·3상까지 다 하는 데 10년이 걸린다. 거꾸로 신뢰를 쌓아야 하는 제약 바이오 회사가 허가 당국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임상 결과를 스스로 ‘성공’이라고 주장하는 등 투자자의 헛된 기대를 키우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일부 주주의 일탈과 갑질이 IR부서에 대한 기피를 낳아 결국 주주와의 소통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이다. B바이오 기업 IR담당자는 “욕설 비방 전화가 만연되니 실력 있고 열심히 하려는 주니어들이 IR쪽에 오지 않으려 한다”며 “IR담당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운데 결국 주주 손해”라고 전했다.
특히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전후로 ‘동학개미’가 급성장하면서 주주들의 일탈 역시 대범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D제약회사 주주들은 회사를 사칭해 거짓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배포해 기사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D회사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를 전후로 (주주 일탈도) 너무나 다르다”며 “투자자가 세력화가 돼 회사도 결론이 안 나 사항을 사실인 것처럼 기사화하려는 일까지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