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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기저핵=미상핵+조가비핵+창백핵+시상하핵+흑색질.’
기저핵은 뇌 속 깊숙이 있는 5개의 신경세포 집단을 말한다. 진행상 핵상마비(PSP)는 기저핵이 정상작동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처음엔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계단을 오르기 어렵다. 이후엔 몸이 뻣뻣해지고 걷기가 힘들어진다.
질환이 악화하면 눈은 움직이는 물체를 쫓지 못한다. 좌우를 보는 것도 어려워진다. 눈과 안와가 붙은 것처럼 보여 매 순간 ‘놀란 눈’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말하기와 삼키기가 힘들어진다. 후반기엔 우울증과 치매가 수반되고 심각한 근육 경직과 장애가 나타난다. 치료제 반응률도 크게 떨어진다.
캐나다 사스캐처원대학에서 올해 2월 MSD 메뉴얼을 통해 내놓은 ‘PSP’ 설명이다. PSP는 파킨슨병과 유사하다고 하지만, 진행속도가 훨씬 빠르고 증상은 환자와 보호자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끔찍하다.
| 큐어PSP 최고 책임자 겸 과학 책임자인 ‘크리스토프 디아즈’(Kristophe Diaz) 박사가 지난 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모처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 중이다. (사진=김지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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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어쩔 도리가 없는 이 절망적 질환에 실낱같은 희망이 한국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이 소식에 한 사람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왔다. 그는 흡사 90년대를 풍미했던 너바나의 커트코베인을 연상케 한다. 커트코베인이 얼터너티브(대안)를 외쳤듯, 그도 PSP 치료에 대안을 찾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데일리는 지난 6일 큐어PSP 최고 책임자 겸 과학 책임자인 ‘크리스토프 디아즈’(Kristophe Diaz) 박사를 단독 인터뷰했다. 큐어PSP는 미국에 소재한 비영리 자선단체다. PSP 등 난치성질환에 대한 연구개발을 돕고, 환자 및 가족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고 있다.
젬백스 GV1001, 절망과 반복된 실패 속 ‘희망’그가 전한 PSP 치료 상황은 절망 그 자체다.
디아즈 박사는 “현재 PSP 환자에게 사용 가능한 치료법은 모두 증상 치료뿐”이라며 “수면, 요실금, 우울증 등의 증상을 개선해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전부다. 근본 치료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PSP 치료제 개발사는 흑역사를 반복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PSP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임상시험이 실패했다”며 “애브비(Abbvi)마저도 실패했다”고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애브비는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항체 치료제 ABBV-8E12 임상 2상 시험을 진행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 치료제가 PSP 증상 개선에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오자, 해당 임상은 2019년 12월 조기 종료됐다.
반면, 젬백스(082270)의 GV1001은 PSP 치료제로써 큰 희망으로 떠올랐다.
디아즈 박사는 “GV1001이 PSP 치료제 임상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며 “GV1001 임상 2a상 결과에 흥분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개 치료제 비교에서 GV1001 ‘군계일학’GV1001의 특별함은 경쟁 치료제와 비교하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재 개발 중인 PSP 치료제는 세계에 4개뿐이다. 구체적으로 노바티스 NIO752, 스페인 페러(Ferrer) FNP-223, 미국 아밀릭스(Amylyx) AMX0035 그리고 젬백스 GV1001이다.
디아즈 박사는 “노바티스 치료제는 타우(tau) 단백질을 직접 표적한다”며 “고전적인 방식(Old School)”이라고 짤막한 평가를 곁들였다.
노바티스의 NIO752는 타우 mRNA 번역을 방해해, 타우 단백질 수준을 낮추도록 설계됐다. mRNA는 단백질 설계도에 해당한다. 즉, 잡초(타우)가 정원(뇌)을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초제를 사용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NIO752는 6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북미, 독일, 영국 등에서 임상 1상을 진행했다. 해당 임상은 지난 10월에 종료됐다.
| 크리스토프 디아즈’(Kristophe Diaz) 박사. (사진=김지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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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페러는 타우를 표적화하지만 노바티스와는 다른 방식”이라며 “타우가 응집되는 것을 방지한다. 크게 봐선 노바티스처럼 타우 매커니즘에 속한다”고 진단했다.
페러의 FNP-223은 효소(O-GlcNAcase)를 억제해 타우 단백질의 과축적을 방지한다. 현재 FNP-223은 미국, 영국, 유럽 등에서 220명 규모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그는 “아밀릭스는 흥미로운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치료보다는) 예방에 가깝다”며 “신경세포가 타우 축적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리하자면 신경보호적(neuroprotective) 임상시험”이라고 판단했다.
디아즈 박사는 “젬백스의 GV1001은 PSP에 활발히 작용하는 물질”이라면서 “넓게 봐선 신경보호적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비교했다. 그는 이어 “GV1001 임상 2a상에서 데이터가 정말 훌륭했다”며 “희망적이었다”고 곁들였다.
디아즈 박사는 노바티스와 페러에 대해 “알츠하이머 치료제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아밀릭스와 젬백스는 ‘신경보호’라는 카테고리에 묶었으나, ‘예방제’와 ‘치료제’로 시선이 갈렸다.
p값 논란엔 철저히 선 그어GV1001 임상 2a상 p값 논란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디아즈 박사는 “이상적으론 효과를 보고 싶겠지만, 임상 2a상 단계에선 더 많은 과학적 데이터를 얻는 게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룬드벡 사례를 들어 GV1001 임상 2a상 p값 논란을 불식시켰다.
그는 “룬드벡은 다계통위축증(MSA) 임상 2b상을 진행했다”며 “주평가지표(1차 평가지표)에선 (위약군과) 통계적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측정값, 바이오마커 등에선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 현재 이 치료제는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일반 대중 관점에선 ‘효과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과학적인 관점에선 임상 3상을 진행할 만큼 충분한 정보가 있었다는 것”이라며 “GV1001 임상은 환자 수가 70~78명 정도였다. 솔직히 (p값을 보기엔) 너무 적은 환자수”라고 꼬집었다.
디아즈 박사는 GV1001 후속 임상이 반드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젬백스는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p값 논란으로 GV1001 개발이 중단된다면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이 치료제의 후속 임상 결과가 무척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임상 3상에 환자모집 적극 지원 약속큐어PSP는 GV1001 임상시험 환자 모집에서 화끈한 지원을 약속했다.
디아즈 박사는 “미국에서 PSP 환자를 모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큐어PSP를 통하는 것”이라며 “젬백스가 계획 중인 200명 규모의 임상 3상 환자 모집은 2~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이어 “매일 평균 10명의 PSP 신규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전화를 받는다”며 “기술적으론 2개월이면 환자 모집을 완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큐어PSP는 미국과 캐나다에 36개의 PSP 케어센터(협력병원)를 두고 있다. 큐어PSP와 협력 중인 의사 숫자는 150여 명이다. 각 병원에 2~5명의 PSP 전담하는 의사가 있다.
디아즈 박사는 “하버드 의과대학에 속한 매사추세츠종합병원도 큐어PSP 케어센터 중 하나”라고 강조하며 “PSP 환자나 가족들이 큐어PSP로 연락이 오면 우리는 36개 케어센터로 안내한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다만, 임상 성공을 위해선 환자 선별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중요한 것은 임상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환자를 모집하는 것”이라며 “가급적이면 PSP 초기 단계 환자들이 임상에 포함돼야, 약물 효능을 적절하게 살펴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미국에서 많은 PSP 환자들이 GV1001 임상 참여를 원할 것”이라며 “환자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기때문에 절박하다”고 덧붙였다.
GV1001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가속승인 품목허가 가능성을 묻자, 확답을 피하면서도 “(PSP가 어렵다면) 아밀릭스가 그렇게 했듯이 최소한 ‘근위축성 축삭경화증’(ALS) 적응증이라도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조언을 내놨다.
근위축성 축삭경화증은 중추 및 말초 신경계 운동 신경 세포가 서서히 파괴되면서 근육의 위축과 경직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이 질병은 근육 힘이 약해지고, 결국엔 호흡을 포함한 기본적인 신체 기능을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ALS 역시 치료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