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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신약개발사를 포함한 바이오·헬스케어 상장사들이 30년 만기의 ‘영구’ 전환사채(CB)를 발행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바이오 회사들의 기초체력이 올라가면서 생겨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간 투자자들이 바이오 기업에 투자할 때에 무조건 일반 CB만 얘기했다”며 “이는 보통주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년~3년 내로 상환해야 하기에 발행사 기업 입장에서는 조기상환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 이제는 국내 바이오의 체력이 든든해져 영구 CB를 통해 자금을 모을수 있는 단계에 올라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만기를 30년 이상으로 설정했다고 모두 동일한 영구채는 아니다. 발행 건마다 조기상환을 강제하는 ‘풋옵션’의 유무와 일정 기간 후 이율이 급격히 올라가는 ‘스텝업’ 조항의 세부내역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일명 ‘무늬만 영구 CB’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데일리가 바이오 업계의 영구채를 전수조사해 점검했다.
 | | (그래픽=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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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메지온·코오롱생명과학 사례 바이오 업계에 영구 CB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21년이라고 볼 수 있다. 당해 메지온(140410)과 코오롱생명과학(102940)이 잇따라 영구채 발행에 성공했다. 두 기업 모두 특수한 상황에서 그에 걸맞는 스텝업 조항을 설정했다.
메지온의 경우에는 영구채 발행일로부터 약 4개월 후인 2022년 3월 말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약승인을 받지 못할 시 발행일부터 2년간 3개월 단위 연복리 5%를 적용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어 이듬해부터는 3개월 단위 연복리 7%를 적용하는 내용으로 막대한 이자에 원금 상환을 서둘러야 하는 내용으로 설정됐다. 전부 타이거자산운용이 투자했다.
메지온은 기한 내 신약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 결과 ‘영구 CB’는 30년 만기는커녕 시한폭탄이 됐다. 놀라운 점은 스텝업 조항이 발동되었음에도 CB의 보통주 전환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투자사가 상환을 받기보다 보통주로 차익실현에 나선 것이다.
해당 영구 CB의 전환가는 5만2038원으로 107억원 분량이 전환되어 현재 93억원어치 잔여분량만 남아 있다. 메지온 시가는 7만원대에 형성돼 타이거자산운용은 장내매도 했을 시 적지 않은 차익을 실현했을 것으로 파악된다.
코오롱생명과학의 경우에는 인보사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영구채 발행을 통해 400억원을 조달해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회사로서는 채무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되는 조달이 필수적이던 상황으로 투자자 입장에서도 안전장치는 걸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코스닥 상장폐지가 확정될 시 최대주주인 코오롱이 사채를 인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환요구권(풋옵션)을 설정했다.
특히 150억원 규모로 씨에스지제일차 유한회사에 발행한 영구채는 이미 상환완료했다. 해당 영구채는 발행 후 3년 경과시점부터 만기이율이 5.5%로 상향되고 이후 매년 1%씩 가산하는 기본 스텝업 조항을 설정한 대신 코오롱이 지난해 말까지 사채를 가져가게끔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 내용을 넣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전환권이 행사된 20억원어치를 제외한 나머지 130억원어치에 대해 기간 내 중도상환권에 대응하기 위해 6회차 CB를 일으켰다. 이 새로운 CB에는 유진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이 표면·만기이자 모두 0%로 투자해 상환(채무)보다는 전환(자본)으로 무게를 실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250억원 규모로 일으킨 영구 CB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다만 스텝업 발동시점의 조정이 있었다. 본래 지난해 말 만기이자 4%에 연 2%를 가산하고 이후 매년 1%씩 가산하는 스텝업 조항이 발동해야했지만 발동 시점을 2026년 말로 조정했다. 코오롱측 콜옵션 행사기간도 동일하게 연장된 점에서 내년 말까지는 해당 CB의 상환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풋옵션’ 유무가 핵심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현재 바이오 기업의 영구채 발행은 더 이상 이례적이지 않다. 지난해 말부터 이달까지 큐리언트(115180), JW신약(067290), 뷰노(338220), HLB파나진(046210), 지놈앤컴퍼니(314130), 디앤디파마텍(347850), 앱클론(174900) 등이 영구 CB 발행을 발표했다. 최대주주가 아닌 제 3자가 투자했다는 전제하에 바이오기업에 장기 투자를 검토하는 투자사가 늘어난 것은 고무적인 변화로 여겨진다.
회사마다 상황과 전략의 차이는 있지만 영구 CB를 발행하는 목적은 동일하다. 긴 만기 덕에 사채임에도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점이다. 바이오기업은 연구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해 꾸준한 외부 조달을 일으켜야하는 한편 상장 유지를 위해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비율을 50% 안으로 관리해야하는 딜레마가 있다.
최대주주 지분 희석을 생각하더라도 곧바로 자본인 보통주와 우선주(CPS) 형태의 투자를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중론이다. 다만 투자자 또한 회수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싶어할 경우 영구 CB는 쌍방에 편리한 장치가 될 수 있다.
한 가지 눈여겨 봐야 할 지점으로 영구 CB의 스텝업 금리와 사채권자의 풋옵션 유무가 꼽힌다. 영구채는 시간이 지나면 스텝업 조항 발동으로 금리가 급격히 올라가는 ‘고금리 채권’이라 특이점이 있다. 타 업종이라면 실적 성장세로 고금리에 대응하겠지만 바이오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아무리 영구 CB라 하더라도 스텝업 조항 발동 전에 조기상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사채권자의 조기상환권 유무가 가장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이 악재에 처했을 때 상환 압박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최근 영구 CB를 발행한 곳 중 ‘사채권자가 어떠한 경우에도 상환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한 곳은 뷰노(338220), 디앤디파마텍(347850), 앱클론(174900)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해당 3개사 또한 스텝업 조항이 고금리인 점에는 차이가 없으나 기업이 상환시점을 결정하는 ‘키’를 쥐었다”며 “무제한 연장까지 가능해, 회사 입장에서 적절한 시점에 고금리 상환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언제까지건 끌고 갈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