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이데일리 프리미엄 기사를 무단 전재·유포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이에 대해 팜이데일리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력히 대응합니다.
[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한번 기술성 평가에 통과한 기업이 시일이 지나 다시 기평을 받고 오히려 하향된 평가를 받는 건 아이러니다. 오래된 관행이지만 해소되지 않고 있다.”
시간과 자금을 들여 연구개발(R&D)을 진척시킨 바이오 벤처에 대한 기술성 평가 점수는 오히려 후퇴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기술성 평가 심사기관의 고무줄 잣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재수’에서 고배를 마신 기업들은 재정비 후 다시금 도전할 계획이다.
한번 넘었던 고개에서 쓰린 결과…하이센스바이오·피노바이오6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신약개발사 하이센스바이오와 피노바이오는 모두 한차례 기평 통과 후 예비심사 청구 단계에서 자진철회했다가 다시금 상장에 재도전했지만, 이번엔 기평단계에서 미끄러졌다. 정량적인 평가기준에 맞춰 사업내용을 진척시켜 재도전했지만, 낙방결과를 받아 내심 충격이 적지 않은 모습이다.
이데일리 취재에 따르면 치주질환 치료제 개발사 하이센스바이오는 SCI평가정보, 이크레더블로부터 BBB, BBB를 받고 기술성 평가에 낙방했다. 2년 전 한국기술신용평가,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A, BBB를 받고 합격한 것과 대비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항체약물접합체(ADC) 항암제 개발사 피노바이오는 2023년 SCI평가정보, 이크레더블로부터 각각 A, BBB 등급을 받아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한국평가데이터, 한국발명진흥회로부터 BBB, BBB 등급을 받고 미끄러졌다.
기술특례 기업으로 상장하기 위해서는 거래소가 인정한 평기가관 2곳으로부터 A, BBB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 한곳에서 BBB를 받았다면 다른 한곳에서는 A를 받아야만 다음단계인 상장예비심사 청구로 넘어갈 수 있다. 기평 점수는 6개월간 유효하며, 낙방 시 6개월 경과 후에야 재신청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두 기관간 평가점수 격차가 두단계 이상일 경우 곧바로 재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
하이센스바이오와 피노바이오는 계획했던 타임라인이 6개월씩 지연되는 쓰린 결과를 받아들고 다음 계획을 마련 중이다.
하이센스바이오, “사업화 전략 강화…현금창출력 입증할 것”하이센스바이오는 2년 전보다 R&D 진전을 이뤄 재도전했지만, 기평기관은 이번에 회사의 사업성(현금창출력)을 더 면밀히 살핀 것으로 파악된다.
과거 예심을 철회하던 시점에선 시린이 치료제 ‘KH-001’의 임상 환자군을 늘리라는 주문이 있었기에 그 부분을 강화하는데 집중했다. 환자 48명을 대상으로 했던 2a상에서 더 나아가 171명을 대상으로 한 2b상을 완료해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했다. 미국에서도 120명 환자를 대상으로 추가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며 연말 마무리한다는 R&D 타임라인이다.
 | 하이센스바이오 임상 2상 데이터(자료=하이센스바이오) |
|
그 사이 기술이전도 이뤘다. 작년 글로벌 제약사 머크(MSD)의 동물건강사업부에 동물 치주질환 치료제‘HB902’의 글로벌 권리를 기술이전했다.
더불어 2022년 오리온과 6대 4로 합자설립한 오리온바이오로직스를 통해 기능성 치약, 가글 등 소비재 제품도 준비 중이다. 베트남 시장에 시린이 치약을 올해 하반기 출시한다. 따로 수익분배는 하지 않으나 원료공급을 하이센스바이오가 독점하는 구조다. 장기적 안목으로 40% 지분에 대한 지분가치 상승과 이익 창출시점부터 이루어질 배당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하이센스바이오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R&D 내용은 서울대 치대에서 진행 중인 ‘충치진행 정지제’ 연구자 임상이다. 하이센스바이오의 약을 도포함으로써 치아 밑의 상아질 재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치아를 발치해야하는데, 임상 환자들에게 이를 감행할 수 없기에 하이센스바이오가 직접 이 같은 임상을 진행하는데엔 한계가 존재한다. 반면 서울대 치대 연구자 임상은 사랑니 충치 환자 12명에게 발치 전 4주간 하이센스바이오 물질을 도포하는 내용으로, 실제 발치 후 회사의 핵심 기술력을 검증하는 주요 데이터를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박주철 하이센스바이오 대표는 “(이번 기평에서)기술력에는 우려(concern)가 없었지만, 평가기관에서 현금창출력을 상당히 면밀히 검토했다. 반성하고 성찰해서 사업화 전략을 수정하고 좋은 결론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아직 1년 정도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금이 있다. 가장 빠른 시일 내 기술성평가를 재신청할 계획이며 이후 추가 펀딩을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박주철 대표의 하이센스바이오 지분율은 30%대로, 추가 자금조달에도 지분율 희석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파악된다. 하이센스바이오의 주요 재무적투자자는 한국투자파트너스, 한국투자증권이다. 두 기관이 합쳐 20% 정도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외 KB증권,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 우리벤처파트너스, 케이프증권, 칼론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KB인베스트먼트 등이 투자했다.
피노바이오, “셀트리온 임상으로 휴먼 데이터 확보 가능”피노바이오는 이번 기평 탈락에 인체임상 데이터의 부재가 가장 큰 허들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임상을 추진해야할지, 혹은 기술이전 대상인 셀트리온이 진행할 임상 1상으로 요건을 충족할지는 불확실한 상태다.
피노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Drug-conjugate)을 구성하는 ‘항체’(길잡이), ‘링커’(이음새), ‘페이로드’(약물) 중 링커와 페이로드를 신규개발한 플랫폼 기술이 핵심자산이다. 나아가 자체 항체를 확보해 직접 ADC 파이프라인을 갖춰 전임상 연구 중이다. 이 파이프라인을 임상단계로 진출시키는 것이 숙제가 됐다.
 | 피노바이오 기술설명(자료=피노바이오) |
|
현재 피노바이오의 대외적 기술력 입증 수단은 셀트리온에 기술이전한 내용이다. 2022년 ADC플랫폼 기술을 15개 타깃에 활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기술이전했다. 딜의 총 규모는 12억 4280만달러로 한화 1조 7000억원 수준이다. 선급금은 10억원에 그쳤지만, 셀트리온은 작년 말 2개 물질 ‘CT-P70’과 ‘CT-P71’에 대한 R&D를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대한 미공개 마일스톤을 피노바이오에 지급했다.
셀트리온은 3일 미국식품의약국(FDA)에 CT-P70의 임상 1상 계획(IND)을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중반 첫 환자 투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어 CT-P71 대한 IND도 연내 제출할 예정임을 밝혔다.
피노바이오 관계자는 “(당사는) 전년보다 기술력이 진보했고 마일스톤의 실현이 이루어진 상황이다. 평가기관이 지적한 ‘인체(human) 임상 데이터’ 부재 극복방안에 대해 TF팀을 구성해 대책을 마련하려 한다. 피노바이오가 기술이전한 물질이 셀트리온을 통해 임상 진입이 곧 예정되어 있는 것 또한 기평기관의 지적을 극복하는 내용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노바이오가 자체적으로 임상을 진행할 경우 추가적인 자금확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최대주주 지분은 특수관계자 및 전략적투자자(SI)들의 락업을 고려할 경우 25%이며, 정두영 대표 개인 지분은 15%대다. 피노바이오의 재무적 투자자(FI)는 IMM인베스트먼트, KB인베스트먼트, 미래에셋캐피탈, BNH인베스트먼트,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쿼드자산운용 등이며 전략적 투자자(SI)로 에스티팜(237690), 셀트리온(068270), 롯데바이오로직스, 안국약품(001540)이 있다.
과거 유사 케이스 리가켐바이오, 엑셀세라퓨틱스 눈길‘기평 재도전 탈락’은 2013년 상장한 리가켐바이오(옛 레고켐바이오) 때부터 되풀이되는 이야기다. 기평 기관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현재 코스닥 시가총액 6위로 우뚝 자리매김한 리가켐바이오(시총 4조 5600억원)도 상장을 위해서 기평을 세 번, 예비심사를 두 번 받은 이력이다. 당시 리가켐바이오는 기평 통과 후 상장예비심사 단계에서 매출 지속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예심을 자진 철회했다. 재정비를 거쳐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상장에 재도전했지만 기평단계에서 낙방했다.
거래소에서도 리가켐바이오가 임상 진도를 진척시키고 파이프라인을 넓히는 등 의미있는 진전을 보였음에도 불합격 통보를 받은 것이 의외였던지 제도 점검에 나서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갖은 제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게 현실이다. 다양한 기관의 다양한 의견과 고유권한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게 당장의 결론이다.
가장 최근 케이스로는 작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을 이룬 배양배지 회사 엑셀세라퓨틱스가 첫 번째 기평 통과후, 두 번째 기평에서 고배를 마셨고 세번째 도전에서 끝내 상장에 성공했다.
거래소 내부사정에 정통한 다른 시장관계자는 “기술평가 도입 극초기에는 정성적으로 주관적인 평가를 했는데, 어디는 트리플A 주고 어디는 더블B를 주는 둥 편차가 컸다. 두 기관 간의 차이가 너무 크지 않게끔 정량화된 평가를 도입했고 ‘문제은행’처럼 정해진 기준에 맞추면 점수가 올라갈 수 있게끔 했다. 점수가 뒤로 후퇴하는 것은 평가기관 고유권한이라 거래소도 이유를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VC 관계자는 “동일한 내용을 두고도 심사기관 A와 B 사이에 이견이 나오는 것 같다”며 “외부 심사관 초빙 등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에 기관의 평가역량이 부족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대진 운’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엔 운이 나빴다는 신세한탄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