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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국내 바이오텍이 글로벌 임상시험을 직접 주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쟁력 있는 후보물질을 전임상 단계에서 기술이전 해 수익을 내는 회사가 되겠습니다.”
 | | 박철원 소바젠 대표가 지난 30일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석지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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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원 소바젠 대표는 지난달 30일 이데일리와 만나 “글로벌 난치성 뇌질환 시장에서 퍼스트 인 클래스(계열 내 최초 신약)로 존재감을 키우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
국내 난치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사 소바젠은 최근 이탈리아 제약사 안젤리니 파마와 난치성 소아 뇌전증 중 하나인 국소피질이형성증 치료제 후보물질 ‘SVG105’에 대해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과 단계별 마일스톤을 포함한 총 계약 규모는 7500억원이다. 상업화에 성공하면 매출에 연동된 로열티가 추가된다.
세계 최초 질환 원인 밝혀 임상에 진입하지 않은 단계임에도 대규모 거래가 성사된 배경에는 독보적 연구 성과가 있다. 소바젠은 국소피질이형성증 발병 원인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고, 이를 전임상 데이터로 입증했다.
공동창업자인 이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뇌전증 환자의 수술 조직과 가족 혈액을 비교 분석해 부모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극미량의 체세포 변이를 발견했다. 이어 이 변이가 뇌세포 내 ‘mTOR(세포 성장·분화·대사에 관여하는 신호 경로)’를 비정상적으로 활성화해 발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는 2015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실렸다.
소바젠은 이 연구를 토대로 원인 유전자의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ASO(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기반 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ASO는 특정 RNA에 달라붙어 단백질 발현을 차단하거나 조절하는 기술이다.
기존 항경련제가 증상 완화에 그쳤다면, 소바젠의 SVG105는 발작의 원인 RNA를 직접 겨냥해 단백질 생성을 줄이는 ‘원인 치료제’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소바젠은 가설로 세운 국소피질이형성증 원인을 입증하기 위해 환자 유래 조직과 세포 분석, 유전적 원인과 발병 기전이 일치하는 동물 모델 실험을 통해 발작 억제 효과를 입증했다. 여기다 영장류 독성 평가를 통해 안전성을 확보했다.
회사 측은 “전임상이었지만 환자 조직, 동물, 영장류로 이어지는 촘촘한 데이터를 통해 안젤리니 파마에 임상 성공 가능성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국소피질이형성증 환자는 약 8만 명으로 추정되며 현재 치료제는 없는 상황이다. 유일한 치료법은 뇌절제술이지만 최대 40%가 수술 후 발작이 재발되는 등 한계가 존재한다.
박 대표는 “새로운 치료제가 나온다면 단순히 발작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를 돌보느라 일상과 생계를 포기해야 했던 부모들의 부담도 크게 덜 수 있다”며 “환자와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먹는 뇌전증 치료제, 곧 임상 진입 소바젠의 또 다른 파이프라인인 뇌전증 치료제 ‘SVG103’은 회사가 현금흐름과 사업 신뢰도 확보 차원에서 유일하게 직접 임상을 진행 중인 과제다. 이 약물은 혈액뇌장벽(BBB) 투과율이 높은 mTOR 억제제다. 전임상 연구에서 경구 투여 시 뇌 투과율이 약 130%로 나타나 경쟁 약물 노바티스의 에버롤리무스의 약 1.6% 대비 8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SVG103은 원래 제넨텍이 뇌종양 치료제로 개발을 시작한 후보물질이다. 이후 나스닥 상장사 카지아 테라퓨틱스로 넘어갔고 소바젠은 2023년 이 자산을 도입해 적응증을 뇌전증으로 확장했다. 특히 이 물질은 제넨텍과 카지아의 임상시험을 거치며 총 448명(성인 277명, 소아·청소년 171명)에게 최장 29개월간 투여돼 안전성이 입증됐다. 소바젠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뇌전증 환자에게 적합한 용량을 설정했다.
현재 소바젠은 호주와 한국에서 임상 1·2상을 준비하고 있으며, 내달 임상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계획에 따라 올해 12월 첫 환자 투약이 시작되면, 우선 성인 환자 15~20명을 대상으로 시험한 뒤 소아로 확대할 예정이다. 회사는 내년 하반기까지 성인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SVG103이 직접 임상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과제라면, 소바젠의 핵심 전략은 여전히 ‘전임상 단계 기술이전’에 있다. 박 대표는 “현재의 자금 환경에서는 임상에서 미세한 차이를 입증해야 하는 ‘베스트 인 클래스’ 전략은 부담이 크다”며 “우리는 퍼스트 인 클래스 후보물질에 대해 발병 원인 규명과 전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임상 전 딜을 성사시키는 전략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소바젠은 현재까지 투자금 약 680억원을 조달했으며 하반기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을 위한 기술성평가를 신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