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글로벌 ‘톱3’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시네오스헬스(Syneos Health)가 국내 2위 CRO 업체인 LSK글로벌파마서비스(LSK Global Pharma Services) 인수를 추진한다. 글로벌 대형 CRO가 국내 메이저 CRO기업 인수를 통한 시장 침투 전략을 펼치면서 국내 CRO 업계 판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 LSK글로벌파마서비스 사무실 전경.(제공= LSK글로벌파마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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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이데일리 취재 결과 시네오스헬스는 최근 LSK 인수를 위한 실사 막바지 단계에 착수했으며 입찰가 수준을 최종 조율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시네오스는 LSK에 주당 47달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수 여부는 다음 달 안으로 결론이 날 전망이다.
시네오스가 LSK 지분을 전부 인수할지, 최대주주 지분율만 인수 후 경영권을 행사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100% 인수한다고 가정 시 총 주식수(92만6585주)를 통해 본 LSK 인수 가치는 약 553억원(14일 환율 기준)이다. 통상적인 인수합병(M&A)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30% 가량 붙는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최대 인수 규모는 약 718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SK의 2021년 당기순이익은 23억원, 자본금은 9억2700만원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시네오스는 아이엔씨리서치(INC Research)와 인벤티브헬스(inVentiv Health)가 2017년 8월 합병해 탄생했다. 전 세계 110여개국에서 신약개발을 위한 컨설팅과 CRO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2~3위를 다투는 대형 CRO로, 나스닥에 상장돼 있으며 시가총액은 46억달러(약 4조5700억원)다.
시네오스의 LSK 인수는 한국 시장에서 영업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란 분석이다. 최근 아시아를 중심으로 임상 등록 건수가 급증하는 등 싱가포르에 이어 한국이 새로운 임상거점으로 주목받는 상황에서 시장을 선점하겠단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 국내 임상시험계획(IND) 승인 건수는 지난 2017년 658건에서 2018년 679건, 2019년 714건, 2020년 799건, 2021년 842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제약사들이 임상시험 외부위탁을 확대하면서 CRO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국내 임상 CRO 매출액은 2016년 3772억원에서 2020년 5542억원으로 연평균 10.1% 늘었다.
일각에서는 최근 임상시험 건수 급감으로 국내 시장 영업에 타격을 입은 시네오스가 M&A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전 세계 CRO 1위인 아이큐비아(IQVIA)는 주로 빅파마 중심의 물량을 수주하는 반면, 시네오스는 중소형 바이오텍이 주 고객인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시장 환경 악화로 바이오텍들이 임상시험을 미루고 있어 시네오스 국내 실적도 주춤하는 상황이다. 새 성장동력을 확보가 절실하다보니 승부수를 던진 것이란 해석이다.
한 CRO 기업 고위 임원은 “지금은 국내 바이오 시장이 얼어 붙어 있고 임상시험도 다 미루고 있는 상황이라 좋지 않은 시기긴 하지만, 내년쯤 풀린다면 다시 임상시험 위탁 수요도 들어날 것”이라며 “특히 글로벌 CRO 업계에서 한국의 대형 병원을 통하면 임상 환자 등록도 빠르게 이뤄지고 임상시험 퀄리티도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앞으로 시장 자체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LSK 상장엔 청신호?LSK는 국내 CRO 상위 회사 중 유일하게 비상장사다. 대형 글로벌 CRO에 인수된다면 향후 상장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홍콩의 타이거메드는 2015년
드림씨아이에스(223250) 지분 87.75%를 인수해 2020년 5월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타이거메드는 중국 최대 임상CRO인 항저우 타이거메드의 100% 자회사다. 타이거메드에 인수된 후 드림씨아이에스 글로벌 과제 비중은 기존 7%에서 16%로 늘었다.
시네오스와 시너지도 기대된다. LSK는 임상시험 영역 중 데이터 관리와 통계 분석 부문에서 상당한 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통계학 박사 출신 등 전문인력을 다수 포진해 있으며 이영작 LSK 대표 역시 통계학자 출신으로 알려진다. LSK의 전문성과 국내 영업망, 시네오스의 글로벌 기업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더해지면 업계 선두로 올라설 시너지를 낼 수 있단 분석이다.
국내 CRO 시장 판도 바뀌나국내 CRO 업계 판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국내에서 압도적 1위를 굳히고 있는
씨엔알리서치(359090) 입장에서는 잠재적 경쟁사가 생기는 셈이다. 씨엔알리서치는 2021년 6월 기준 1022억원 수주 잔액을 달성, CRO 분야 톱 티어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는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지만 시네오스와 LSK의 합병건이 회사에는 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CRO 관계자는 “시네오스가 LSK 인수 후 그들의 프로세스를 태운다면 씨엔알리서치에도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대형 글로벌 CRO 기업이 국내 시장 성장성을 높이 평가해 인수에 뛰어드는 건 좋지만, 다른 국내 기업 성장을 막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CRO 업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앞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글로벌 임상시험을 국내 임상으로 돌리는 바이오 업체가 늘면서 국내 CRO 업계 1, 2위 업체들 수주는 늘어나는 반면, 중소 업체들이 차지할 ‘파이’는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이다.
실제 CRO 1위 기업 씨엔알리서치의 지난해 신규 수주 규모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회사는 지난 2020년 512억원, 2021년 606억원을 각각 수주했다. 지난해 수주 목표액(750억원)도 이미 지난해 10월 초과 달성했다. 반면
차바이오텍(085660)의 자회사 서울CRO의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액은 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 올랐으나 당기순이익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연 매출액 130억~140억원 대를 기록하는
에이디엠코리아(187660)도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