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진호 기자] 1400조원 vs. 730조원. 글로벌 의약품 시장은 반도체 시장보다 2배 가까이 클 정도로 방대하다. 신약의 경우 부가가치 면에서도 반도체, 자동차 등 국내 주요 수출품 대비 월등히 높다. 성공한 신약 1개 매출은 자동차 수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다. 글로벌 블록버스터는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도약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바이오기업들과 겨루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필수조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연간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글로벌 블록버스터를 보유하게 되면 국내 업계의 글로벌 위상도 덩달아 정상으로 올라서게 된다. 그동안 꿈으로만 여겨지던 글로벌 블록버스터 탄생이 임박하면서 누가 최초 블록버스터 타이틀을 차지할지도 관심사다. 이데일리는 국내 업계에서 글로벌 블록버스터 등극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신약들을 선정, 집중 조명한다.[편집자 주]뇌전증 치료제(항경련제) 분야에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SK바이오팜(326030)의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 유럽 제품명 온투즈리)는 대표적인 K-블록버스터 후보 약물이다.
|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난치성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 유럽 제품명 온투즈리).(제공=SK바이오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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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바메이트’는?...성인 대상 뇌전증성 부분발작 치료제대한뇌전증학회에 따르면 뇌전증은 신경세포의 이상 흥분 현상으로 흔히 ‘간질’이라 불린다. 이 질환은 단순부분발작과 복합부분발작, 전신긴장성 대(전신)발작 등을 일으킨다. 세계에서 약 7000만명이 뇌전증을 앓고 있다. 관련 시장 규모는 약 7조 3000억원, 이중 미국이 78%(5조59억원)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세노바메이트는 흥분신호 전달에 영향을 미치는 나트륨 수용체 억제제 및 억제성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GABA-A 수용체의 알로스테릭 활성화 등 이중기전을 갖는 약물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9년 뇌전증으로 인한 부분발작 증상이 있는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이 약물의 판매를 허가했다. 2021년 3월 유럽의약품청(EMA)도 미국과 같은 적응증으로 세노바메이트를 허가했다.
세노바메이트의 최대 경쟁 약물은 해마다 매출 1조원 이상을 달성 중인 벨기에 제약사 유씨비(UCB)의 ‘빔팻’(성분명 라코사미드)이다. UCB는 소아 난치성 뇌전증 관련 적응증을 가진 ‘핀테플라’(성분명 펜프루라민)등 3종의 치료제도 추가로 보유하고 있다. UCB는 이들을 통해 지난해 총 15억9600만 달러(한화 약 1조943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에서 빔팻이 세노바메이트보다 약 15배 이상 많이 처방되고 있다. 하지만 빔펫의 물질특허가 지난 3월 만료됐다. 인도 자이더스 카딜라 등이 개발한 빔팻 제네릭(복제약)이 등장해 관련 처방 수가 분산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세노바메이트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제품명 엑스코프리)와 벨기에 제약사 UCB의 ‘빔팻’(성분명 라코사미드)의 미국 내 처방 횟수 비교표. 빔팻의 처방 횟수가 2021년 기준 세노바메이트 보다 15배 이상 많다.(제공=이베스트투자증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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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바메이트, 美 매출 780억원...“내년 2배 달성 목표”
SK바이오팜은 자회사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2020년 5월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제품명인 엑스코프리를 시장에 출시했다. 당시 삼성증권을 비롯한 여러 증권사가 세노바메이트의 매출액이 2030년경 10억 달러(한화 약 1조2000억원)를 넘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회사 측은 이탈리아 안젤리니파마와 협약을 맺고 지난해 독일과 스웨덴, 덴마크, 영국 등 유럽 4개국에서 온투즈리란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했다.
SK바이오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과 유럽 등에서 판매한 세노바메이트의 전체 매출액은 3899억원이다. 이는 SK바이오팜의 전체 매출액(4186억원)의 93.1% 수준이다. 특히 2021년 미국 내 매출액은 782억원으로 전년보다 6배 가량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측은 올해 코로나19로 제한됐던 영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유럽 내 추가국에서 제품을 출시해 매출을 늘릴 계획이다.
또 회사 측은 북아메리카 지역 전체로 세노바메이트의 판매 지역을 확대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캐나다 엔도그룹과 허가 및 상업화 권리를 이전하는 430억원 규모의 계약도 체결했다.
조정우 SK바이오팜 대표는 지난 3월 24일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미국 내 세노바메이트 매출액을 1600억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영업력을 동원할 것”이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스위스·스페인 등 유럽에서 우리 제품을 추가로 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2일 회사 측은 미국 내 세노바메이트의 올 1분기 매출은 317억원이며, 전년 동기 대비 3배 성장했다고 발표했다.
적응증 확대, 아시아 출시 등...2025년부터 매출 증대 가능성 ↑전체 뇌전증 환자의 30%는 4세 이하부터, 75%가 20세 이전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인 대상 부분발작 치료제로 승인된 세노바메이트의 처방 연령을 소아와 청소년까지 확대한다면 시장 점유율이 큰 폭으로 올릴 수 있다.
SK바이오팜은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소아와 성인의 뇌전증성 전신발작 및 소아 부분발작에 대한 세노바메이트의 임상 3상을 추가로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회사는 아시아 지역 내 출시국을 늘리기 위해 중국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3국에서 해당 약물의 성인 대상 부분발작에 대한 임상 3상도 진행 중이다. 지난 2월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세노바메이트의 임상 3상을 소아까지 확대하도록 허용한 바 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세노바메이트를 부분발작에서 전신발작까지 쓸 수 있도록 하는 임상, 소아 대상으로 하는 연령 확대 임상, 아시아 지역 출시를 위한 임상 등을 다양하게 병행하고 있다”며 “이를 마무리하고 허가 절차까지 거쳐 2025년이면 적응증 및 출시 국가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SK바이오팜의 계획대로 적응증 및 신규 시장 확대에 성공한 시점(2025년) 이후 3~4년 내로 블록버스터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증권가 예상 시점(2030년) 보다 빠른 2028년경 10억 달러 매출 고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편 SK바이오팜은 난치성 소아뇌전증의 일종인 레녹스 가스토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과 유럽 등 60여 개 기관과 함께 자사의 뇌전증 신약 후보문질 ‘카리스바메이트’의 글로벌 임상 3상을 병행하고 있다. 이 약물의 출시 목표 시점 역시 2025년이다. 앞선 관계자는 “우리 예상대로 차질없이 개발이 진행된다면 세노바메이트와 카리스바메이트 등 두 뇌전증 치료제가 2025년경부터 매출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