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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약국이나 온라인에서 키트를 구매해 민간업체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는 ‘소비자 직접 의뢰’(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 업계가 고사 위기다. 정부가 일부 규제를 완화했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매출이 두 자릿수 감소한 곳은 물론 휴업하거나 아예 사업을 철수한 업체도 있다.
 | 랩지노믹스의 분자진단·유전자 검사 서비스 매출 추이.(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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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C 매출 일제히 감소 15일 제약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랩지노믹스(084650)의 지난해 분자진단과 유전자 검사 서비스 내수 매출은 108억원으로 2년 전보다 88% 줄었다. 랩지노믹스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국내 DTC 유전자 검사 시장에서 점유율 99%를 차지하며 독보적인 입지에 있다. 다만 회사의 주장과 해당 점유율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랩지노믹스의 분자진단과 유전자 검사 서비스 내수 매출은 2022년 889억원에서 2023년 258억원, 2024년 108억원으로 꾸준히 감소세다.
NGS 기반 유전체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엔젠바이오(354200)는 지난해 결국 DTC 사업을 접었다. DTC 사업을 위해 채용한 직원들 대부분이 퇴사했으며 수익보다 손실이 더 큰 상황이 이어지면서 결국 사업을 철수했다는 설명이다. 엔젠바이오의 DTC 매출은 지난 2022년 한때 60억원대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23년부터 급감했다.
AI 유전체분석 기업 스타트업인 에이치앤비지노믹스는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유전자 검사기관 업무를 휴업한다고 밝혔다.
 | 에이치앤비지노믹스의 DTC 서비스 일시중단 공고.(출처= 홈페이지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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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서 복지부에 DTC 검사 서비스를 신고한 업체는 50여 곳 이상으로 추정된다. 업계에 따르면 테라젠, 메디젠휴먼케어, 마크로젠(038290) 등이 DTC 사업 선두주자들로 꼽힌다. 하지만 이들은 사업보고서를 통해 따로 매출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어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긴 어렵다. 유전체기업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DTC 시장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국내 DTC 업계가 고사하는 동안 해외 기업은 국내에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해외 기업들은 규제 없이 한국 고객 대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면서 시장을 잠식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3월 기준 해외 DTC 검사 업체 190여 곳 중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은 업체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대출 유전체기업협의회 회장(엔젠바이오 대표)은 “해외 DTC 기업은 우리나라에 지사를 설립해서 활발히 영업 중”이라며 “복지부에 신고해도 사이트 폐쇄 조치 정도에 그칠 뿐 영업정지를 시킬 수도 없다. 그러는 와중 국내 DTC 업체들만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옥죄는 규제, 숨 막히는 기업 ‘DTC 고사 위기설’이 나오는 건 보건복지부가 2022년 시행한 ‘DTC 유전자검사 서비스 인증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의견이 업계에서 나온다. 복지부는 지난 2022년 기존 시범사업보다 엄격한 기준과 제한을 둔 DTC 인증제를 시행했다. 민감한 유전 정보를 다루는 만큼, 정부가 어느 정도 통제는 하겠다는 취지였다.
해당 제도 시행 후 업체들은 검사 항목의 신청과 변경에 있어 수개월 가까이 소요된다는 점, 검사 데이터의 상업적 목적 사용이나 제3자 제공이 금지된다는 점, 암 당뇨 등 질병 진단 목적의 항목은 검사할 수 없다는 점 등으로 사업 확장에 제약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여기다 해외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엄격한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반면, 일부 해외 기업들은 이러한 절차 없이 국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DTC 업체들이 가장 개선돼야 할 규제로 꼽는 건 ‘데이터의 2차 활용 제한’이다. 과거 시범사업 당시에는 ‘광범위 동의’ 방식으로 고객이 검사 데이터의 활용을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증제가 본격화된 후 국내 기업들은 자체 플랫폼(DTC 앱 등)을 통해 건강관리 서비스나 마케팅을 하려는 경우 ‘사전 승인’이나 ‘용도 제한’ 규정에 걸려 실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복지부는 지난해 5월부터 검사 결과를 활용한 2차 서비스 규제를 완화, 기업이 영양제와 화장품 등 연계 판매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2차 서비스란 DTC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건기식·헤어·스킨제품 등 건강관리 서비스를 연계 판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강력한 DTC 규제 속 성장동력을 잃은 업체들은 이러한 완화 조치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DTC 서비스 기업 대표는 “규제를 풀엇다고 하지만 실제 운영은 안된다. 뭔가 하려면 여전히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까지 3개월 이상 걸린다”며 “DTC는 내가 필요해서 하는 자율적인 검사다. 국가 예산 들어가는 거면 제약하는 게 맞지만, 민간이 운영하는 걸 국가가 옥죄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