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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축구에서 오심도 경기의 일환이라고 하는 것처럼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올림픽 종목들이 하는 것처럼 평가기관 수를 늘려서 최저치, 최고치를 배제하고 중간값을 내게 하는 방향도 고민해봐야 한다.” “전문평가기관 한곳, 정부기관 한곳으로 단순화해서 평가기관의 차이를 없애야 한다.”
시장의 기대를 받던 바이오텍들이 연거푸 기술성 평가에서 고배를 마셔 평가기준에 대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 1월 1일부로 시행된 거래소 가이드라인에도 불구하고 특히 전문평가기관과 정부기관 사이 간극이 크다는 해묵은 지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21일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피노바이오, 카나프테라퓨틱스가 기술성 평가(이하 기평)에서 떨어지고 카인사이언스는 통과했다. 인투셀은 기평 다음 단계인 예비심사를 통과해 기업상장(IPO)에 성큼 다가섰다. 바이오 VC 사이에서는 이 같은 결과에 승복하면서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위 4개사는 전임상 및 초기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며 해외에 기술이전한 내용은 없다는 유사점을 가진다. 그럼에도 평가기관에 따라 결과가 ‘복불복’이고, 이에 따른 사업 리스크는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기술특례 상장을 위해서는 한국거래소가 지정한 두 개의 전문 평가기관에서 각각 A 등급과 BBB 등급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때 평가기관은 7개의 전문평가기관(TCB)과 17개의 정부기관 중에 무작위로 선정된다.
TCB사는 기술보증기금, 나이스평가정보, 한국기업데이터, 이크레더블, 나이스디앤비, SCI평가정보, 한국기술신용평가 등이 있다. 정부기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보선산업진흥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발명진흥회 등이다. 보통 TCB사의 평가가 후하고 정부기관의 평가가 박하다는 의견이 있다.
대부분의 회사는 A·BBB를 받고 상장하고, A·A부터는 회사가 좋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 뚜렷해진다. 지금까지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더블A(AA·AA)를 받은 회사는 루닛과 제노스코 뿐이다. 만약 두 평가기관의 이견이 큰 경우 회사는 6개월 내 다른 평가기관에 재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
| 코스닥 시장규정 기술성 평가 전문평가제도 운영지침, 2025년 1월 1일 시행 세칙 중(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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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바이오, 카나프테라퓨틱스 자금여력 ‘이상무’셀트리온(068270)의 R&D 파트너인 항체-약물 접합체(ADC) 회사 피노바이오는 이번이 세번째 상장 시도였다. 피노바이오는 2021년 기술성평가를 탈락, 2023년엔 기평을 통과해 예심을 청구했다 자진철회한 이력이 있다. 사업개발 내용을 더 발전시켜 IPO에 재도전했으나 기평 문턱에서 다시 좌절됐다. 과거에는 SCI평가정보, 이크레더블로부터 각각 A, BBB 등급을 받았고 이번에는 평가기관을 공개하지 않았다.
기술성 평가에서 수차례 낙방한 기업들도 종국에는 역량을 입증하고 상장을 이뤄낸 경우가 허다하다. 한두차례 기평에 낙방하는 것은 회사의 장기적인 라이프사이클에서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다만 이 같은 상장 과정에서 자금이 고갈되어 버린다면 다른 얘기다. 임상을 진전시키려 해도 자금이 필요하고, 상장을 통한 출구전략이 뚜렷하지 못할 경우 비상장 단계에서 투자 유치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다만 피노바이오는 작년 조용히 추가 자금조달을 진행해 유사시를 대비한 것으로 파악된다. 피노바이오는 공개적으로 알려진 가장 마지막 펀딩이 2023년 126억원 규모 프리IPO이지만, 회사의 신주발행 기록을 살펴보면 작년에도 7차례에 걸쳐 총 91만9545주를 보통주로 발행했다. 구체적인 잔여현금은 확인되지 않았다.
추가 마일스톤 확보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피노바이오는 2022년 ADC플랫폼 기술을 15개 타깃에 활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셀트리온과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딜의 총 규모는 12억4280만달러로 한화 1조7000억원 수준이며, 이 중 실수령한 금액은 반환의무가 없는 선급금 10억원과 작년 말 셀트리온이 2개 물질에 대한 R&D를 계속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수령한 마일스톤이다. 피노바이오는 이 마일스톤의 규모를 알리지 않았다. 셀트리온이 ADC 연구개발을 지속하면 피노바이오는 추가 마일스톤을 수령할 가능성이 있다.
피노바이오의 재무적 투자자(FI)는 IMM인베스트먼트, KB인베스트먼트, BNH인베스트먼트, 유니온투자파트너스, 쿼드자산운용 등이며 전략적 투자자(SI)로 에스티팜,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안국약품이 있다.
이데일리는 피노바이오에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지만 회사 관계자는 예민한 사안임을 이유로 답변을 삼갔다.
녹십자(006280)가 2대주주인 카나프테라퓨틱스는 TCB사인 기술보증기금과 정부기관인 보건산업진흥원으로부터 각각 A, BB를 받아 기술성평가에서 탈락했다. 두 평가기관의 이견이 커 6개월 내로 재평가를 요청할 수 있다.
카나프테라퓨틱스는 이중항체와 저분자화합물, ADC로 고형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이며 동아에스티, 오스코텍, 유한양행에 기술이전을 했다. 여기에 롯데바이오로직스와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실수령한 기술이전 선급금은 누적으로 100억원이다.
마지막 조달은 2023년말 230억원 규모 시리즈 C다. 녹십자, 롯데바이오로직스가 SI이고 인터베스트, 프리미어파트너스,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 데일리파트너스, NH벤처투자·아주IB투자, 우신벤처투자가 FI다. 녹십자가 10.49% 지분을 보유한 2대주주다.
이병철 카나프테라퓨틱스 대표는 “바로 기평을 재신청 할지 아니면 추가 마일스톤을 달성하고 신청할지 내부 논의 중이다. 앞으로 2년 정도 버틸수 있는 자금이 남아있으며 R&D는 기술이전이나 공동개발로 진행되고 있기에 약물개발 비용은 상당히 절감된 상황이라 자금계획 보다는 상장계획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기술이전’, ‘임상단계’바이오 업계는 피노바이오와 카나프테라퓨틱스가 모두 기술이전한 파이프라인이 임상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해외에 기술이전한 내용이 없는 점이 발목을 잡았을 것으로 보고있다. 규모 있는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임상 데이터가 있는 물질을 해외사에 라이선스아웃(L/O)하는게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다만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기평을 통과한 카인사이언스는 TCB사인 나이스평가정보와 한국기술신용평가로부터 A, BBB 등급을 획득했다. 기술이전 성과는 아직이지만 문제 없이 기평을 통과했다.
카인사이언스는 희귀질환인 만성염증탈수초다발신경병증을 대상으로 면역펩타이드 물질 ‘KINE-101C’의 국내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완료 시 조건부허가를 예상한다는 입장이다. 유럽계 기술이전 컨설팅 회사인 파마벤처스(PharmaVentures)를 통해 다수의 기술이전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예심을 통과해 IPO를 위한 8부 능선을 넘은 ADC 회사 인투셀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와이바이오로직스, 에이비엘바이오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지만 계약 규모는 공개된 바 없다. 전임상 R&D 중으로, 인체 임상데이터가 없는 것은 기평에 낙방한 기업들과 마찬가지다. TCB사인 SCI평가정보와 정책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으로부터 각각 A, A 등급을 받았다.
한 바이오 VC 투자자는 “어디는 통과하고 어디는 떨어지는 기준이 모호하다. 해외사에 기술이전을 해야 한다고 했다가, 선급금 비율이 중요하다고 했다가, 언제든지 기술이 반환될 수 있으니 임상데이터가 중요하다고 했다가, 유의해야 할 사업개발 내용이 늘 바뀌니 기준에 따르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VC 투자자는 “신약의 임상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저분자화합물이라도 300억~400억원, 항체로는 600억~700억원의 자금이 각각 소요된다. 하지만 최근 신약개발사의 상장 밸류는 1500억원대에 VC 투자자들의 보호예수 6개월이 요구되는데, 투자회수가 안되는 이런 조건에서 어떤 VC가 그만한 자금을 기꺼이 댈 수 있을까. 비상장사에게 버거운 숙제”라고도 말했다.
한 바이오텍 대표는 “바이오 신약 개발사업은 제조업이 아니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연구개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필요한데 이것을 정부가 규제하는 것이 자유경제시장에서 맞는 일인지 의문이다.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면 미국처럼 기관들끼리 정리가 될 때까지 개인들의 공모투자를 받지 않는건 어떨까”라고 말했다.
한편, 앞으로 기술특례상장에 도전할 바이오텍 중에는 차세대 조영제 개발기업 인벤테라제약이 1월 중 기술성평가를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항체신약 개발사 아이엠바이오로직스도 비슷한 시기 기술성평가를 추진한다. RNA 치료제 기업 알지노믹스는 1분기 내로 기평을 신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