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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본)=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개발에 있어 중요한 건 무엇을 공부했느냐보다도, 창의력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약간의 기반지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부분을 찾아내거나 좀 더 낫게 바꿀 포인트를 찾아내 ‘디자인’하는 것이 개발의 동기이자 방법이었습니다.”
지난 26일 ‘제66회 일본 임상세포학회 춘계대회’를 앞두고 일본 도쿄에서 만난 임욱빈 바이오다인(314930) 대표이사는 자궁경부암 조기진단의 핵심기술인 액상세포검사 기술(LBC) ‘블로잉 테크놀로지’ 탄생 과정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글로벌 진단시장 1위인 로슈는 바이오다인의 블로잉 테크놀로지를 높게 평가해 지난 2019년 바이오다인과 독점 판매계약을 맺었다. 이데일리와의 인터뷰 시기는 블로잉 테크놀로지와 로슈의 노하우가 결합된 ‘벤타나 SP400’(VENTANA SP400·이하 ‘SP400’)이 계약 후 6년 만에 임상세포학회를 통해 일본 시장에서 첫 데뷔를 앞두고 있던 때였다.
 | 2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66회 일본 임상세포학회 춘계대회’에 전시된 VENTANA SP400의 모습 (사진=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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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대기업들 사이에서 독창적 기술로 성공 어릴 적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미대 진학을 꿈꿨다는 임 대표는 현대홈쇼핑 P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홈쇼핑에서 광고방송을 제작하던 그는 자신이 스스로 만든 제품의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찾아오는 여러 ‘발명가’ 사장님들을 보면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아이템을 찾던 그때, 체외진단 분야가 다른 분야에 비해 너무 낙후돼 있다는 생각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전반적인 기술의 발달을 당시 체외진단 기술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고, 제품이 팔릴 때마다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체외진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첫 결과물은 자궁경부암 조기진단장비 ‘패스플로러’(PATHPLORER)다. 패스플로러의 핵심 기술은 블로잉 테크놀로지와 진단 시약에 응집돼 있다. 무(無)에서 시작한 바이오다인이 이 두 기술을 완성하는 데만 약 3년 여가 걸렸다고 했다. ‘기존 글로벌 진단회사가 만든 제품들의 기술, 지적재산권(IP)과 완전히 달라야 한다’, ‘기존 제품들의 단점을 확실히 보완하고 더 뛰어나야 한다’. 임 대표는 기술개발 과정에서 이 두 가지를 항상 명심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LBC 기술은 필터식과 침전식 두 가지 기술로 양분돼 왔다. 기존 방식들은 도장처럼 세포를 슬라이드에 찍어내거나(필터식), 채취된 세포를 시약 밑으로 가라앉힌 뒤 이물질을 제거하고 침전물을 슬라이드에 바르는 방식(침전식)이라 세포가 유실·변형되거나 세포가 중첩돼 암 세포를 발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 맨 왼쪽은 바이오다인의 ‘CellprepPLUS’(셀프렙플러스·PATHPLORER의 글로벌 제품명) 슬라이드, 오른쪽 두 사진은 홀로직 ‘ThinPrep’(씬프렙)의 슬라이드를 확대한 것. 셀프렙은 원형 영역에 세포가 고르고 얇게 분포돼 있다. 반면 씬프렙은 가장자리에 세포가 뭉쳐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세포가 중첩돼 진단의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 (자료=Diagnostic Cytopathology(2014), Comparison of Diagnostic Accuracy Between CellprepPlus and ThinPrep Liquid-Based Preparations in Effusion Cytolog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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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블로잉 테크놀로지는 바람으로 세포를 슬라이드에 얇게 펴 바르는 기술이다.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기술로 기존 제품들의 단점을 극복해 정확도를 높인 기술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세포 중첩과 세포 유실·변형을 최소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위양성 및 위음성 확률을 크게 줄인 것이다. 이 점이 로슈와의 ‘빅딜’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사업 초기 탁월함 알아봐 준 日로슈에 고마워” 목표로 했던 개발에 성공했지만 이후 임 대표는 더 험난한 난관에 맞닥뜨렸다. 처음 보는 바이오텍이 개발한 기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임 대표는 “미국·유럽산 글로벌 장비회사의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패스플로러 성능을 시연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문전박대당했던 적도 많았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반면 일본 병리학 시장은 비교적 독자적인 개성이 있고 실용적인 성격이 있어 데이터로 성과가 입증되면 인정해준다. 패스플로러 판매 초기 한국보다 일본에서 매출이 많이 나왔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때 블로잉 테크놀로지의 탁월함을 알아봐주고 굉장히 작은 회사의 제품을 독점으로 일본 시장에 배급해줬으며, 우리 제품이 글로벌로 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해준 일본로슈의 오가사와라 마코토 사장과 임원진들에게 큰 고마움을 갖고 있다”고 했다.
 | 오가사와라 마코토 일본 로슈 사장(왼쪽)과 임욱빈 바이오다인 대표이사(오른쪽)가 28일 ‘제66회 일본 임상세포학회 춘계대회’ 로슈 부스에 전시된 VENTANA SP400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바이오다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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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400의 첫 출시국이 ‘일본’으로 결정된 것도 그래서 임 대표에겐 의미가 있다. 일본 로슈가 로슈의 글로벌 지사 중 유일하게 PATHPLORER를 판매해본 경험이 있고, 블로잉 테크놀로지에도 익숙하므로 일본은 SP400의 글로벌 출시 연착륙에 가장 적합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을 시작으로 SP400의 판매가 본격화되면 바이오다인에는 로슈로부터 수령하는 장비 및 시약 판매 로열티 매출이 발생한다. 로열티의 경우 영업이익으로 인식된다.
SP400가 출시되기까지 회사를 믿고 기다려 준 장기투자 주주들에게 꼭 보답하고 싶다는 그는 “순이익의 규모가 어느 정도가 되면 적극적으로 배당, 무상증자 등을 실시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바이오다인의 기업가치를 높게 본 사모펀드(PE)가 재무적 투자자(FI)로 들어오겠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사업 초기 전세자금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해 결국은 빅딜도 체결했지만 대부분 주식에 묶여 개인적으로 자금 운용에 제약이 있었다”는 그는 “유상증자를 하거나 전환사채(CB)를 발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보유한 구주만 PE에 한 자릿 수 퍼센티지 이내로 소량 매각하기 위해 논의 중이다. 시장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무보유확약(락업)도 걸어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이후인 지난 27일 바이오다인은 장외매도 방식으로 오는 8월27일까지 보통주 약 122만6598주(4.12%)를 처분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SP400에 대한 것은 로슈에 일임한 바이오다인은 차기 제품으로 자궁경부암 진단을 위한 자궁경부세포 자가채취키트 ‘얼리팝 브러시’의 상품화에 전념하고 있다. 앞서 블로잉 테크놀로지가 그랬듯, 데이터로 신뢰를 쌓기 위해 국내에서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지금은 이 결과를 논문에 발표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제품이 시판되면 수요가 클 것이라고 판단한 임 대표는 “현재 해외에 생산거점을 만들기 위해 관련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귀띔했다.
“일본을 시작으로 로슈의 SP400 출시 계획이 국가별로 단계적으로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로슈는 세계적으로 워낙 브랜드 파워가 있고 영업·판매망이 탄탄하니 얼마나 잘 팔릴지, 그걸 목격하는 순간이 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