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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홍주연 기자] 공장에서 로봇 오차는 불량품을 만들지만, 수술실에서의 오차는 생명과 직결된다. 인공지능(AI)이 물리적 육체를 입고 현실 세계를 제어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 가장 높은 기술 장벽이 서 있는 최종 관문이 수술실인 이유다. 2034년 약 384억달러(57조7600억원) 규모로 연평균 17.2%씩 성장할 글로벌 수술로봇 시장을 향해, K-의료로봇 기업들이 이 관문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잇달아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 | (이미지=AI 생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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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밖으로 나온 AI…왜 수술실이 ‘최종 관문’인가 텍스트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화면 속 지능에 머물던 생성형 AI는 이제 물리적 세계로 걸어 나오고 있다.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방한을 기점으로 로보틱스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폭발하는 가운데, 한국 로봇 산업 무게 중심도 빠르게 이동 중이다. 현대차, 두산로보틱스 등 대기업이 주도하던 시장은 휴머노이드, 웨어러블 로봇을 넘어 특정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버티컬(Vertical) 피지컬 AI’ 스타트업들로 확장되고 있다. 홀리데이로보틱스 대규모 시리즈A 투자 유치 착수, 위로보틱스 950억원 규모 시리즈B 유치 등 뭉칫돈이 몰리는 것이 그 방증이다.
이러한 피지컬 AI가 가장 드라마틱한 혁신을 만들어내는 격전지는 단연 의료·헬스케어 분야다. 단순 영상 판독을 넘어 AI가 직접 의료기기를 제어하며 수술과 시술 과정을 보조하는 단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인체 내부 복잡한 환경을 다루는 만큼 영상 인식, 정밀 제어, 안전 로직 등 산업용 로봇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기술적 난도가 요구된다. 산업 현장의 로봇이 효율을 겨룬다면, 수술실의 로봇은 기술의 완성도 그 자체를 증명해야 한다. 피지컬 AI의 기술 성숙도를 가늠하는 궁극적 시험대가 수술실인 이유다.
수술 플랫폼부터 전동화 내시경까지…글로벌 문 두드리는 K-의료로봇 국내 의료 피지컬 AI 기업들도 속속 글로벌 무대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초정밀 장비 전문기업 미래컴퍼니(049950) 국산 복강경 수술로봇 ‘레보아이(Revo-i)’는 국내외 영역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레보아이는 2017년 식약처 허가를 획득하고 2021년 원자력병원, 2023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급 기관에 진입했다. 글로벌로는 러시아·몽골·파라과이 등지로 수출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해외 전략은 단순 장비 수출을 넘어 교육 기반 사용 확산에 초점을 맞춘다. 튀니지 로봇수술센터 개소, 몽골 국립암센터의 VR 시뮬레이터 기반 교육 후 레보아이 도입, 파라과이 트레이닝센터 구축 추진 등을 통해 글로벌 의료진 교육 거점을 확대하는 한편, 집도의 교육과 기술지원을 결합한 확산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동시에 미래컴퍼니는 49억원 규모의 정부 지원 연구개발 과제를 통해 2029년까지 레보아이 수술 데이터를 AI와 연계해 수술 상황 인지 및 보조 기능을 고도화하고, 원자력병원과 협력해 실제 수술 환경에서 기술을 검증할 계획이다.
다관절 복강경 수술기구 ‘아티센셜’로 기술력을 입증한 리브스메드(491000)는 지난 5월 차세대 수술로봇 ‘스타크(STARK)’를 공개하며 통합 수술 플랫폼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스타크는 인튜이티브서지컬의 다빈치 특허와 다른 인-플레인(In-plane) 구동 방식의 핀-조인트 관절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다빈치(60도)보다 넓은 90도의 다관절 가동 범위를 구현했다. 하나의 카트에 2개의 로봇 팔을 얹은 ‘1카트 2암’ 구조로 기존 4카트 시스템 대비 공간 점유율을 절반가량 낮췄으며, 관련 국내외 특허만 600여건에 달한다.
특히 스타크는 개발 단계부터 원격 조작을 검증한 ‘네이티브 텔레서저리(Native Telesurgery)’ 수술로봇을 표방한다.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와 시카고를 연결해 3000km 이상 거리를 뛰어넘는 대동물 원격 수술 시연에 성공했다. 리브스메드는 식약처 품목허가를 거쳐 올해 말 국내 출시를 시작으로 2027년 일본, 2028년 미국에 순차 진출할 계획이다. 수술 한 건당 평균 4000달러에 달하는 소모품·서비스 비용 구조를 혁신해, 아직 로봇이 닿지 않는 전 세계 2700만건의 수술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청사진이다. 리브스메드는 여기서 나아가 스타크 수술 과정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로 국내 의료진의 숙련된 술기를 디지털화하고, 자율수술이 가능한 피지컬 AI로 확장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는 미국 인튜이티브서지컬이 주도하고 있는 수술로봇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행보다. 인튜이티브서지컬의 나스닥 시가총액이 약 225조원에 달하는 만큼, 리브스메드 역시 장기적으로 시가총액 100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AI 의료로봇 스타트업 메디인테크는 100% 의료진 손기술에 의존하던 내시경 하드웨어 자체를 전동화한 ‘인티온 에스’로 판을 뒤집기에 나섰다. 의사가 손으로 와이어를 당겨 움직이는 기존 기계식 내시경은 AI가 병변의 방향을 알아도 직접 조향할 수 없지만, 메디인테크는 전동화라는 하드웨어 기반 위에 피지컬 AI를 얹을 수 있었다.
인티온 에스는 지난달 출시 됐으며 올해부터 본격적인 매출 창출이 예상된다. 메디인테크는 창업 이후 민간 투자와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양축으로 성장 재원을 확보해왔다. 지난 2021년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95억원 규모 과제로 전동 내시경을 개발한 데 이어, 올해 4월 후속인 범부처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 주관기관으로 다시 선정되며 228억원 규모 과제를 추가 확보했다. 서울대병원, 서울대, 한국전기연구원(KERI),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참여하는 2기 과제에서는 지능형 전동식 로봇 내시경 플랫폼을 총괄 개발하며, 연구 범위도 소화기 내시경을 넘어 십이지장경·담도경 등 특수 내시경과 초소형 다관절 수술기구까지 확대된다.
글로벌 행보도 본격화됐다. 일본 기업이 95% 이상을 점유한 글로벌 연성 내시경 시장에 정면도전하는 메디인테크의 전동식 내시경 ‘인티온 에스’는 몽골과 필리핀에서 선제적으로 쓰이고 있고,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도 허가를 완료했다. 최대 시장인 미국 진출을 위한 FDA 인증도 준비 중이다. 인튜이티브서지컬의 다빈치가 경성 수술로봇의 표준이 된 것처럼, 연성 내시경 기반 수술로봇 플랫폼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게 회사의 청사진이다. 이치원 메디인테크 대표는 “일본 기업이 꽉 잡고 있는 연성 내시경 시장에서, AI와 하드웨어 전동화를 결합한 우리의 피지컬 AI 기술은 단숨에 게임의 룰을 바꿀 강력한 무기”라고 자신했다.
판 커지는 의료로봇 시장…‘삼박자’ 갖춘 韓 기회와 과제 K-의료로봇의 도전 뒤에는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가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5월 발간한 ‘수술로봇의 정밀제어 관련 특허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수술로봇 시장은 2025년 약 92억달러(13조8400억원)에서 2034년 약 384억달러(57조7600억원)로 4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최소침습수술 수요 증가와 수술 정확도 향상 요구, 영상·센서·제어 시스템 통합 기술의 발전이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 국내에서도 복강경 수술로봇을 비롯해 정형외과, 신경외과, 내시경, 혈관중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로봇 기술을 접목하려는 진입 움직임이 늘고 있다.
최근 수술로봇은 조작 장비 중심 시스템에서 벗어나 영상, 센서, AI, 제어 알고리즘이 결합된 지능형 플랫폼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핵심 경쟁력도 위치·속도 제어, 힘 제어, 떨림 보정, 모션 스케일링 등을 통해 의료진의 조작을 안정적인 수술 동작으로 구현하는 ‘정밀제어’ 기술로 옮겨가는 추세다. 수술 정확도와 안전성에 직접 영향을 주는 기반 기술이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 셈이다. 업계에서는 하드웨어 완성도로 승부하던 시대에는 수술로봇 다빈치를 앞세운 인튜이티브서지컬의 아성이 견고했지만, AI와 정밀제어가 게임의 룰을 다시 쓰는 국면에서는 후발주자에게도 판을 흔들 기회가 열린다고 보고 있다.
의료로봇을 개발하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한국은 로보틱스 AI 산업에 최적화 된 조건을 갖췄다”라며 “탄탄한 제조업 기반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임상 인프라, 혁신적인 로봇 제어 기술 삼박자에 더해, 연간 수천 건의 고난도 수술을 소화하는 한국 외과 의료진의 술기는 그 자체로 AI 학습의 원천 데이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