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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진수 기자] 최근 암 치료는 환자 종양 유전자를 분석해 알맞은 치료제를 골라주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에 AI 정밀의료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은 기존 ‘AI 알고리즘의 정교함’에서 ‘실제 암 환자 검체를 얼마나 오래 그리고 많이 다뤄봤는지’로 옮겨가고 있다. 이에 국내에서는 마크로젠(038290), 엔젠바이오(354200)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정밀의료를 고도화하고 있다.
15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표적항암제 개발이 속도를 내며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2024년 기준 임상 NGS 시장이 연평균 11.6%씩 성장해 2030년 약 120억달러(약 18조5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22년에 전체 임상 진단 시장의 약 10%를 NGS가 차지한 만큼 그 비중은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NGS 시장이 성장하는 주요 배경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규제가 있다. FDA는 항암제를 허가할 때 그에 맞는 유전자 진단 검사(동반진단·CDx)를 함께 승인하도록 하고 있다. 표적항암제가 하나 나올 때마다 진단 수요가 따라붙는 구조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AI 정밀의료 기업의 경쟁 기준도 변하고 있다. 그동안 AI 알고리즘을 얼마나 고도화 했는지에 집중했다면 점차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 | (사진=AI 생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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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유전체 데이터’ 사람 몸에는 약 2만5000개의 유전자가 있다. 암 환자는 이 중 400~500개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한다. NGS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찾아 어떤 치료제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분석한다.
유전자 분석을 위해서는 방대한 유전체 데이터를 정확하고 빠르게 ‘임상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검체 품질이 나쁘거나 조직량이 부족하면 검사 자체가 불가능하고, 분석에만 며칠씩 걸려 치료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흔하게 발생한다.
핵심은 이 데이터를 단기간에 쌓을 수 없다는 점이다. 데이터는 자본으로 살 수 없고, AI로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변이 양상은 인종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만큼 실제 환자의 검체를 다루고 그 결과를 임상에서 검증하는 과정이 수년간 반복돼야 AI가 활용할 수 있는 ‘진짜 데이터’가 되는 셈이다.
미국 AI 정밀의료 기업 ‘템퍼스AI’는 2024년 나스닥 상장 과정에서 업계 최고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시장이 템퍼스AI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약 10년에 걸쳐 주요 암센터와 쌓아온 수백만 건의 임상·유전체 데이터 자산 때문이다.
액체생검 기업 ‘가던트헬스’ 역시 혈액 기반 진단 키트로 축적한 데이터를 근거로 미국 내 보험 적용 범위를 넓혀왔다. ‘파운데이션 메디슨’은 고형암 NGS 패널에서 출발해 혈액 기반 재발 추적 검사와 AI 변이 해석 기능을 하나씩 붙여나간 끝에 제약사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 ‘데이터 확보’ 앞서있는 기업은 국내에서도 AI 정밀의료 기업들이 사업을 본격화 하면서 데이터 확보는 기업의 경쟁력과 연결되고 있다.
마크로젠은 지난달 ‘송도 글로벌 지놈센터’ 준공식을 가졌다. 연면적 1만8500㎡(약 5600평), 지상 8층 규모로 유전체 빅데이터 생산부터 AI 해석·임상 분석까지 한 곳에서 처리하는 정밀의료 허브다. 단일세포 분석과 공간전사체 등 차세대 멀티오믹스 분석을 수행할 수 있는 자동화·표준화 설비도 갖췄다.
주목할 숫자는 ‘연간 30만 샘플’이다. 마크로젠이 현재 수행 중인 시퀀싱 물량이다. 국가통합바이오빅데이터 구축사업(K-DNA) 등 대형 국책과제를 소화할 인프라도 확보했다. 마크로젠은 향후 1000만명 규모의 유전체 빅데이터 프로젝트까지 내다보고 있다. 1997년 설립 이후 29년간 축적한 유전체 분석 인프라와 데이터가 AI 전환의 밑천이 되는 것이다.
엔젠바이오는 AI와 NGS를 직접 결합한 뒤 그 결과를 임상 데이터로 검증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엔젠바이오는 지난달 말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병리과 김태정 교수팀과 ‘AI·NGS 통합 동반진단 솔루션’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AI 병리분석 소프트웨어 ‘NPAS(NPathAnalySys)’가 조직병리 이미지에서 유전자 변이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먼저 선별하면, NGS 정밀진단 소프트웨어 ‘NGAS(NGeneAnalySys)’가 최종 유전자 분석과 임상적 해석을 수행하는 구조다.
폐암 EGFR 변이 예측 모델 ‘NPAS-EGFR’에는 엔젠바이오가 올해 초 LG AI연구원으로부터 독점 라이선스를 확보한 ‘엑사원패스(EXAONE Path) 2.0’이 적용됐다.
검증은 글로벌 표준 동반진단 제품인 써모피셔의 ‘온코마인(Oncomine)’ 실제 처방 데이터와 직접 비교해 동등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판독 보조 수준을 넘어 실제 처방 결정에 쓰일 수 있는 실사용근거(RWE)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연구는 국제폐암학회(IASLC) 병리위원회 위원인 김태정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교수가 이어가고 있으며, 엔젠바이오는 연내 검증을 마치고 디지털 의료기기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엔젠바이오의 이런 자신감 배경에도 데이터가 있다. 엔젠바이오는 2017년 국내 최초로 유방암·난소암 NGS 검사 ‘브라카아큐테스트’의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았다. 이후 혈액암 5종 패널 ‘힘아큐테스트’, 서울아산병원·하버드 다나-파버 암연구소와 공동 개발한 고형암 패널 ‘온코아큐패널’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다수 병원과 공동연구·특허 협력을 이어오며 의료 현장에서 나오는 임상·유전체 데이터를 축적하는 등 자산을 쌓은 셈이다.
엔젠바이오는 AI 진단 건수 기반 과금 체계를 도입해 반복 매출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폐암을 시작으로 유방암·대장암 등 검체 확보가 어렵고 신속한 처방이 필요한 고형암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NGS 패널이나 진단 키트 사업으로 실제 환자 데이터를 쌓아온 기업들이 AI 전환기에 가장 유리한 자리에 서게 됐다”며 “결국 정밀의료 기업의 체력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유전체 데이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