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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임정요 기자] 아직 유방암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유방절제술을 감행한 할리우드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가 세간의 화제를 일으킨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졸리는 2013년 유전체 검사를 통해 유방암 유병율이 높은 BCRA1 변이를 발견, 선제적 유방절제로 위험요인을 원천 제거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기술은 더욱 진보했다. 인공지능(AI), 다중오믹스(multiomics) 등으로 발병 전 질환을 예측하는 ‘예방’ 목적의 진단 연구가 정교해지고 있다. 300조원 규모의 시장 선점을 둘러싸고 국내외 플레이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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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진단시장에 AI 가세 “졸리가 옳았다. 10년 사이 졸리의 판단을 바꿀만한 역학연구가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없다. 이후 나온 기술들은 졸리의 판단이 옳았음을 강화한다”고 한 진단회사 대표는 말한다.
글로벌 산업 분석 기관인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진단시장 규모는 2023년 1200억달러(173조원)에서 2030년 2200억달러(307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시장은 전망치보다 더 커질 가능성도 높다. 세상에 존재하는 질병의 종류만큼 진단 시장이 방대하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 변이도 무한하기 때문이다. 특정 유전자 변이에 따라 질환을 예측하거나 약효가 잘 듣는 치료법을 결정할 수 있어, 진단은 예방부터 치료까지 의료행위의 전영역에 관여한다.
이 거대한 시장을 분석하기 위해선 우선 체외진단과 체내진단을 알아야 한다. 체외진단은 말 그대로 몸 밖에서 분석을 진행한다. 생체조직, 타액, 혈액, 소변 등 검체를 채취해 분석장비에 돌리는 방식이다. 유전체 해석, 액체생검, 코로나19 팬데믹에 주목받은 PCR 분자진단, 당뇨 환자용 혈당측정기, 집에서 사용하는 임신테스트기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게 체외진단에 포함된다.
반대로 체내진단은 몸에서 무엇을 꺼낼 필요없이 신체내부를 찍어서 관찰하는 영상진단(X-ray, MRI, CT)이 대표적이다. 최근 AI 예측을 통한 고도화로 루닛(328130), 뷰노(338220), 제이엘케이(322510), 코어라인소프트(384470) 등이 암 진단 방면 체내진단 시장을 이끌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상징조를 사전에 감지해 위기상황 발생 전에 의료진이 조기 대응 할 수 있게끔 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일례로 루닛 인사이트 리스크는 향후 1~5년 이내에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을 예측하는 솔루션이다. 또 다른 예시로 뷰노 딥카스는 심정지, 부정맥을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로, 심정지 발생 시 환자 생존율이 20% 미만이기 때문에 사전 예측과 예방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주요 대형병원들에 도입되고 있다.
이제는 세분화 된 영역에서도 속속 회사들이 등장하는 상황이다. 뇌 질환을 AI 진단하는 뉴로핏, 골다공증을 진단하는 프로메디우스 등 신기술 주자들이 줄을 섰다.
정규환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교수는 “이제는 영상의학 학회와 AI 학회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라며 “병리진단 분석 소프트웨어는 이미 많이 상용화되었고, 나아가 암 형태 예측, 암 세포 갯수 파악에도 AI가 동원된다. 심전도 같은 경우에도 과거엔 의사들이 직접 눈으로 읽었지만 이제는 기계 판독을 완전히 신뢰하는 분위기다. 생성형 AI가 판독문까지 대신 써주는 미래가 코앞”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3년 기준 전체 진단시장의 80% 가량을 체외진단이 차지했다. 체내진단은 250억 달러 규모로 20%에 그쳤지만, AI 기술에 힘입어 지속 확대되고 있다.
국내외 주목되는 진단 강자 체외진단 영역에서는 차세대 유전체 염기서열 시퀀싱(NGS) 기술을 분기점으로 한차례 산업이 고도화되었고, 이제는 AI를 기반으로 또다시 도약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 주목되는 기업은 쓰리빌리언(394800)이다.
쓰리빌리언은 AI로 유전체를 분석해 희귀유전질환을 진단하는 기업이다. 작년 매출은 직전연도 대비 2배인 57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손실도 전년도 83억원에서 74억원으로 개선했다. 작년 11월 상장 당시 1410억원이었던 시가총액은 반년만인 13일 기준 2271억원으로 60%가량 늘어났다. 침체된 시장상황에서 동기간 시총이 증가한 몇안되는 체외진단 기업으로 꼽힌다.
금창원 쓰리빌리언 대표는 “유전자 진단은 미국기준 보험코드까지 발급되어 있는, 이미 구축되어 있는 사업 영역이다. 이미 기반이 있는 영역에 AI를 더해 고도화시켰다. (쓰리빌리언이) 빠른 진단 제품 출시로 매출 성장을 이룰 수 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AI 기반 진단 시장의 성장 최정점이 향후 5년~10년 사이가 될 것 같다”며 “상대적으로 다른 산업군 대비 포화 시점이 늦는 이유로는 의료 AI가 철저히 데이터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의료 데이터는 일반 소비재나 제조산업처럼 빨리 모을 수 없어 한계가 크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데이터가 쏠릴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쓰리빌리언과 가장 유사한 사업을 펼치는 곳은 템퍼스에이아이(Tempus AI)다. 시총 172조원의 나스닥 상장사로, 작년 매출은 3400억원이었다. 이 외 진디엑스(GeneDX)도 주목할만한 기업으로 언급된다. 시총 2조원 규모 상장사이며 작년 4200억원 매출을 냈다.
아직 진단제품으로 상용화는 멀었지만 연구영역에서 주목받는 기술로는 다중오믹스(멀티오믹스)가 있다. 유전체 뿐만 아니라 전사체, 단백체, 대사체 등 다양한 체(오믹스)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입체적으로 진단한다.
AI 영역에서는 이를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이라고 호칭한다. 전통적인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시퀀싱)은 암의 변이를 알 수 있지만 체내 병변 위치를 알 수 없었다. 반대로 병리는 암의 위치를 알 수 있지만 특성을 알 수 없었다. 이제는 영상의학, 병리, 유전체검사까지 통합해 환자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곽용도 IBK벤처투자 팀장은 “과거에는 유전체 돌연변이가 있으면 특정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는 수준의 진단이었지만, 멀티오믹스로 발전되면서 발병 시점, 질병의 진행정도까지 예측하고 분석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신약개발도 궁극적으론 치료(intervention)보다는 예방(prevention)로 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