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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지완 기자] “유전체 분석은 레고 설명서를 읽듯, 몸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질병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활용된다”.
유전체 분석은 피, 침, 조직, 대변 등에서 DNA(또는 RNA)를 추출해, 정밀하게 들여다보며 몸의 설계도를 해독하는 작업이다. DNA는 머리카락 색부터 질병 위험까지 정보를 담고 있으며, RNA는 이 정보를 전달해 단백질 생산을 돕는다.
차세대 유전체 분석 기술이 의료 진단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단순한 유전정보 판독을 넘어, 인공지능(AI), 싱글셀(single-cell) 분석, 롱리드(long-read) 시퀀싱 기술로 진보하며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정밀의료에 성큼 다가서는 중이다.
 |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처리 화면. (제공=마크로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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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는 12일 마크로젠(038290), 지니너스(389030), 엔젠바이오(354200) , 소마젠(950200) 등 국내 대표 유전체 분석 업체들의 현황과 잠재력을 살펴봤다.
마크로젠, 맞춤의료 시대에 속도 낸다 유전체 분석이 일상화되고, 맞춤형 정밀의료가 부상하면서 마크로젠 보폭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마크로젠 관계자는 “사람부터 동물, 식물, 바이러스, 박테리아까지 다양한 생물종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그 결과를 발송해주는 유전체 분석 서비스가 전체 매출의 90%”라며 “이를 통해 개인, 집단의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질병 위험과 인구 특성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체 분석 기술은 생물학·의학 연구를 넘어 임상 현장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특히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은 대용량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 질병 진단과 맞춤형 치료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마크로젠 관계자는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한 맞춤의료는 환자의 유전정보, 환경, 생활습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진단·예방·치료를 수행하는 방식”이라며 “이에 따라 연구용 분석 서비스 외에도 임상진단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암질환 검사, 분자진단, 신약후보물질 개발, 농식품 및 가축 연구, 유전공학 등 활용 분야도 점차 확장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마크로젠은 153개국에 대학, 병원, 연구소 등 1만8000 고객을 두고 있다. 마크로젠의 보유 인프라는 유전체 데이터 생산 기준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 전체 유전자 서열을 분석하는 WGS(Whole genome Sequencing). (제공=마크로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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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젠은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과기정통부·산자부·질병관리청이 공동 주관하는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에 참여했다. 이 사업의 최종 목표는 오는 2032년까지 한국인 100만명의 유전체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이다.
마크로젠은 최근 팩바이오(PacBio)의 ‘레비오’(Reviio)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도입하며 본격적인 롱리드 시퀀싱 상용화에 나섰다.
롱 리드 시퀀싱은 기존보다 10배 이상 긴 염기서열을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어 암, 희귀질환, 미생물군집 분석 등에서 획기적 진단 효율을 보여준다. 더불어 방대한 유전체 빅데이터를 확보해 글로벌 정밀의료 허브로의 도약도 노린다.
기존 유전체 분석은 주로 짧은 염기서열을 다수 조합하는 숏 리드(short-read) 시퀀싱 방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분석 과정이 복잡하고, 구조적 변이나 반복서열 탐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니너스, 세포 하나하나 정밀 해독…日암연구 프로젝트 수주 지니너스는 싱글셀 분석 부문에서 글로벌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싱글셀 분석은 단일 세포 수준에서 정밀 면역세포, 종양미세환경 분석을 가능하게 한다. 세포 하나하나를 따로 들여다보고 정밀한 세포 지도를 그린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박웅양 지니너스 대표는 “예컨대 환자 A와 B가 겉으로 보기엔 같은 양의 암세포를 가진 환자라도, 싱글셀 분석을 하면 치료 반응이 달라지는 이유를 밝혀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암세포는 면역을 피하려는 단백질이 활성화돼 있고, 어떤 세포는 그렇지 않다”며 “또 암 주변에 활성화된 T세포가 얼마나 있는지, T세포 상태가 좋은지(T세포 공격성이 좋은지, 나쁜지), T세포가 다른 세포에 의해 억제되고 있는지까지 알 수 있다”고 설명을 곁들였다. 이어 “종합하면 싱글셀 분석은 암세포뿐만 아니라 암을 둘로싼 면역세포, 섬유아세포, 혈관세포까지 모두 분석한다”고 정리했다.
 | 박웅양 지니너스 대표 겸 삼성서울병원 유전체연구소장이 지난 2월 서울 송파구 정의로에 위치한 본사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 중이다. (사진=김지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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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너스는 싱글셀 분석 플랫폼 ‘스페이스 인사이트’를 개발했다. 이 플랫폼은 싱글셀과 공간 전사체 데이터를 통합해 분석함으로써, 세포 간 이질성, 희귀 세포군집 분포, 표적 바이오마커 발굴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스페이스 인사이트는 AI 기반 바이오마커 발굴 및 신약 타겟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다.
지니너스는 이 같은 싱글셀 분석 기술을 앞세워 지난해 9월 일본국립암센터와 일본 암 연구프로젝트 관련 대규모 유전체 공급 계약을 체결햇다. 이 프로젝트 규모는 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들어선 일본 명문대와 계약을 체결했고 일본 및 글로벌 유수 제약사와 추가 계약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확장 넘너 의료 시간축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 유전체 분석 기술의 진화는 단순한 진단을 넘어, 예측과 맞춤 치료로 확장되고 있다. 이를 위해 AI와 결합된 분석 플랫폼 구축과 세포 단위 정밀분석이 활발히 추진된다.
엔젠바이오는 AI 기업 씨이랩과 손잡고 영상·임상·유전체 데이터를 통합한 항암 치료 예측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향후 병원 현장 중심의 정밀진단 플랫폼으로 확장 가능성이 크다.
마크로젠 자회사인 소마젠은 미국 본토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하면서 빠르게 사업을 확장 중이다.
소마젠은 지난해 6월 미국 마이클 J. 폭스 재단과 83억원 규모의 글로벌 파킨슨병 환자 유전체 분석(WGS)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8월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100억원 규모의 알츠하이머 환자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서비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올해 들어선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재단으로부터 빌리언 셀 프로젝트 관련 서비스를 수주했다.여기에 더해 소마젠은 최근 3년간 모더나로부터 200억원 이상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수주했다.
홍수 소마젠 대표는 “과거에는 병이 생기면 진단을 했지만, 앞으로는 유전체를 먼저 분석해 병이 생기기 전에 치료법까지 제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며 “정밀의료는 결국 데이터를 누가 더 정확히, 더 빠르게, 더 똑똑하게 해석하느냐의 싸움”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유전체 분석 기업들은, 더 이상 실험실 기업이 아닌, 의료 생태계를 재편하는 플랫폼 리더로 진화하고 있다”며 “앞으로 기술 확장을 넘어 의료 시간축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