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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신약의 이면…K바이오는 왜 인실리코가 되지 못했나

  • 등록 2026-08-13 오전 7:30:09
  • 수정 2026-08-13 오전 7:3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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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생성형 AI)
(그래픽= 생성형 AI)
[이데일리 손민지 기자] 인공지능(AI)이 발굴한 신약 후보물질이 마침내 임상 3상에 진입했다. AI로 신약 표적을 찾고 새로운 화합물을 설계한 뒤 전임상과 초기 임상을 거쳐 후기 임상까지 도달한 사례가 등장한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AI 신약 개발 플랫폼과 제약사 간 공동연구 계약이 잇따르고 있지만, AI가 발굴한 후보물질이 실제 임상에 진입한 사례는 손에 꼽힌다. AI 모델이나 데이터 처리 능력보다 AI가 제안한 물질을 합성·검증하고, 임상시험계획(IND) 승인과 임상 개발까지 끌고 갈 조직과 자본에서 격차가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1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AI 기반 신약 개발기업 인실리코메디슨은 지난달 7일 특발성 폐섬유증(IPF) 치료 후보물질 ‘렌토서팁’ 중국 임상 3상에 착수했다. 임상은 중국 47개 기관에서 환자 320명을 모집해 52주 동안 진행된다. 1차 평가지표는 폐 기능을 보여주는 노력성 폐활량(FVC)의 연간 감소율이다.

렌토서팁이 주목받는 이유는 AI를 기존 후보물질 임상 성공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신약 표적 발굴과 신규 화합물 설계 과정에 직접 적용했다는 점이다. 인실리코메디슨은 자체 AI 플랫폼 ‘판다오믹스’(PandaOmics)를 이용해 섬유화 질환의 새로운 표적으로 TNIK를 찾아냈다. 이어 생성형 화학 플랫폼 ‘케미스트리42’(Chemistry 42)로 TNIK를 억제하는 신규 저분자 화합물을 설계하고, 실제 합성·검증을 거쳐 약물의 효능과 약동학적 특성을 최적화했다. AI가 질병 가설과 표적을 제시하고, 다시 AI가 표적에 맞는 화합물을 설계한 셈이다.

인실리코메디슨 경쟁력은 하나의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는다. 2021년 이후 AI 플랫폼을 통해 임상 진입을 염두에 둔 전임상 후보물질(PCC) 31개를 추려냈고, 이 가운데 13개가 IND 승인을 받았다.

덕분에 후보물질을 만들어내는 속도도 기존 신약 탐색 방식과 차이를 보인다. 자체 프로젝트는 연구를 시작한 뒤 PCC를 확정하기까지 평균 12~18개월이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프로그램당 실제 합성·시험한 화합물은 약 60~200개다. 통상 초기 신약 발굴에 2년 6개월~4년가량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보물질 발굴 단계의 시행착오와 소요 기간을 크게 줄인 셈이다.

국내도 AI 관심 많지만…임상 진입 사례 제한적

국내에서도 AI 플랫폼과 관련 기업 간 공동연구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제 후보물질을 임상으로 넘긴 사례는 제한적이다. 특히 인실리코메디슨과 비교하면 AI를 활용하는 범위보다 이를 여러 파이프라인에서 반복적으로 임상 진입까지 연결한 경험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인실리코메디슨은 렌토서팁 개발 과정에서 질환 표적 탐색부터 신규 화합물 설계·최적화까지 AI를 폭넓게 적용했고, 같은 개발 방식을 여러 파이프라인에 반복 적용해왔다.

국내에서 가장 앞선 사례로는 파로스아이바이오 급성골수성백혈병(AML) 치료 후보물질 ‘라스모티닙’(PHI-101)이 꼽힌다. 파로스아이바이오가 자체 구축한 AI 신약 플랫폼 ‘케미버스’를 통해 발굴한 라스모티닙은 국내와 호주에서 재발·불응성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완료했다. 지난해에는 난치성 고형암 치료 후보물질 ‘PHI-501’도 국내 임상 1상 IND 승인을 받았다.

온코크로스 근감소증 후보물질 ‘OC514’도 호주 임상 1상을 마쳤다. OC514는 두 가지 유효성분을 결합한 복합제로, 온코크로스는 전사체 기반 AI 플랫폼 ‘랩터AI’를 활용해 근감소증과 암성 악액질 등 새로운 적응증 가능성을 찾아냈다. 다만 이는 OC514는 신규 화합물을 처음부터 설계한 게 아닌 기존 성분 조합과 적응증을 AI로 도출한 약물 재창출 성격이 강하다.

이 외에도 신테카바이오(226330)와 스탠다임 등이 AI 기반 후보물질 발굴과 자체 파이프라인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인실리코메디슨처럼 AI를 활용해 다수의 후보물질을 IND와 임상 단계로 반복적으로 진입시킨 성과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한 대형 바이오 기업 연구원은 “AI를 실제 연구에 활용하는 조직과 기존 연구조직 간 소통이 충분하지 않아, 내부에서도 AI가 어느 정도 활용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인력·자본·데이터 ‘삼중고’ 해법은

업계에서는 이 같은 격차의 배경으로 자본과 전문 인력 부족을 꼽는다. 단순히 AI 개발자를 확보하는 문제를 넘어 AI가 내놓은 결과를 신약개발 관점에서 판단하고 실제 합성·실험과 후보물질 선정으로 연결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찾기도 어렵고, 이들을 장기간 고용할 자금 여력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연구원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과 AI 전문기업, 학계·연구기관 44곳의 관계자 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9%가 AI를 이미 활용하고 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다만 신약 개발 부서에 AI 전문인력이 한 명도 없다는 응답도 67.3%에 달했다. 전문 인력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로는 자금과 리소스 부족, 기존 연구진의 AI 기술 이해 부족 등이 꼽혔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투자 유인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AI 신약 개발의 효과가 실제 임상 성공률이나 매출로 입증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대규모 인력이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AI 신약 개발 협업이 늘고 있고 중요성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면서도 “아직 기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 내부에 전 과정을 갖춰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AI 신약 개발 경쟁력을 높이려면 국가 차원의 신약 개발 데이터 통합관리 체계와 데이터 목록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표준화된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데이터는 폐쇄된 환경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 데다, 신약 개발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수집된 데이터를 분류·가공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상호 운용성이 떨어져서다.

해외 인재 유치를 포함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미국은 국립보건원(NIH)의 ‘Bridge2AI’를 통해 AI 학습에 적합한 바이오·의료 데이터와 표준, 융합형 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중소기업 관련 프로그램 SBIR·STTR로 AI 신약 개발 스타트업에 초기 연구 자금을 공급해왔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련 행정명령이 폐기되긴 했지만, 과거 미국은 행정명령을 통해 해외 AI 인재를 발굴하고 비자 처리 기간을 단축하는 등 글로벌 인재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국내에서 단기간에 AI와 신약 개발을 모두 이해하는 전문인력을 충분히 양성하기 어렵다면, 관련 경험을 갖춘 해외 인재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차원에서는 합성랩을 포함한 실험·검증 인프라를 확보해 AI가 설계한 화합물을 실제로 합성하고 약효·독성을 시험한 뒤, 그 결과를 다시 모델에 학습시키는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시설을 직접 갖추기 어려우면 AI 기업과 제약사, 임상시험수탁기관(CRO) 등이 후보물질 발굴부터 합성·검증, 전임상, IND, 임상까지 다양한 권리와 책임을 공유하는 장기 공동개발 방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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