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이데일리 프리미엄 기사를 무단 전재·유포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이에 대해 팜이데일리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력히 대응합니다.
[이데일리 김진수 기자] 1조8000억원. 셀트리온(068270)이 이번 달 외부 파이프라인 도입에 투입한 금액이다. 이는 글로벌 빅파마가 외부 파이프라인 도입에 사용하는 금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2개. SK바이오팜(326030)이 올해 남은 한달 반 동안 새롭게 추가할 외부 도입 파이프라인 개수다.
3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상위 제약바이오 기업의 신약개발 전략이 180도 바뀌고 있다. 그동안 ‘기술수출’(기술이전, 라이선스 아웃)을 통한 실적 상승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술도입’(라이선스 인) 전략을 통해 글로벌 빅파마로 퀀텀 점프하겠다는 것이다. 바이오 업계를 대표하는 셀트리온의 경우 이달에만 두 건의 파이프라인 도입 소식을 알리는 등 기술도입 분위기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 |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
일반적으로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성장을 거치면서 여러 단계의 전략을 펼친다. 초기 단계에는 파이프라인의 상업화가 어려운 만큼 ‘기술수출’(기술이전, 라이선스 아웃) 전략을, 이후엔 주요 한 두 개 파이프라인을 상업화 하는 ‘자체 개발’ 전략을, 마지막으로 여러 파이프라인의 상업화가 가능한 수준에서는 ‘기술도입’ 전략을 실시한다. 기술도입 전략은 후보물질 발굴과 같이 긴 시간과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자금으로 해결하고, 이후 상업화를 통한 이득은 극대화할 수 있다.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통해 신약 상업화 능력까지 인정받은 SK바이오팜은 지난해 방사성 의약품 도입을 시작으로 올해 2건의 파이프라인 도입을 더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신약 개발사로 체질 전환 중인 셀트리온은 외부에서 도입한 신약 파이프라인이 12개에 달한다. 유한양행 역시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파이프라인을 도입하고 있다. 종근당은 외부 도입 ADC 기술로 ADC 신약 상업화에 도전한다.
우리나라 정부도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체력 향상을 위해 지원을 확대한다. 보건복지부는 범정부 차원에서 준비 중인 150조원 규모 민관합동 국민성장펀드에서 바이오 산업에 투자하는 자금 일부를 임상 3상 특화 펀드 정부 출자분으로 투입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안에 따라 임상 3상 특화 펀드 규모는 당초 1500억원에서 3배 이상 더 커진 5000억원 가량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임상 3상 특화펀드를 통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기존 ‘기술수출’ 중심 구조에서 ‘직접 판매’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서동철 재단법인 의약품정책연구소 소장(전 중앙대 약학과 교수)은 “일본의 경우에도 정부 주도 아래 빅파마들이 탄생했다”며 “적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몇십년을 투자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SK바이오팜의 성장은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글로벌 빅파마 장벽 넘어설 수 있을까 K제약바이오 리더들이 기술도입을 통해 글로벌 빅파마로 거듭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다. 이미 글로벌 빅파마들이 기술도입 전략을 통해 중견 제약사와 격차를 크게 벌려놨기 때문이다. 이른바 글로벌 빅파마인 화이자, 머크(MSD), 릴리, 로슈, 노바티스 등은 이미 수년전부터 기술도입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20개 제약바이오 기업의 후기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을 분석했을 때 기술도입 또는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확보한 ‘외부 도입’ 자산 비중이 2024년 기준 61%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빅파마들이 외부 도입 전략에 적극 나서면서 거래 규모도 커졌다. 이들이 올해 5월까지 실시한 기술 거래 총 규모는 6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전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 거래 규모가 약 1500억달러(213조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상위 제약바이오 기업이 대부분의 기술 거래를 독식하는 셈이다.
이처럼 이들은 전세계 유망한 기술과 파이프라인을 빨아들이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의 ‘공룡’으로 자리매김했다. 각종 진입 장벽을 세우면서 패권을 쥐고 꼭대기에서 군림하며 제약바이오 업계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키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의 전략에 따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수출의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글로벌 빅파마의 덩치는 갈수록 커지고, 결국 국내 기업이 넘볼 수 없는 수준으로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빈익빈 부익부’가 점차 심화되는 것이다. 빅파마 입장에서는 유망한 기업의 자산을 가져와 그들의 성장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이에 향후 5년 가량이 K제약바이오에게는 글로벌 빅파마로 성장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지난 100년간 글로벌 빅파마 순위를 살펴보면 큰 변화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이들이 이미 중간 그룹과 큰 격차를 벌려놨기 때문”이라며 “글로벌 빅파마 입장에서는 기술도입이라는 전략이 효용성 등의 측면에서 최고의 전략이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