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진희 기자] 질병관리청이 국가필수예방접종(NIP)용 독감(인플루엔자)백신 운반비 ‘대폭 삭감’을 검토하고 있어 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백신을 시장가보다 싸게 공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반비까지 더 낮추면 백신사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낮은 백신 가격-연구개발(R&D) 비용 부족-위탁생산 기지화-백신 주권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한다.
◇한국생산성본부 연구용역.. ‘60억 적절 평가’
3일 업계에 따르면 질병청은 최근
녹십자(006280),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 보령바이오파마, 한국백신 등 국내 주요 백신 공급·유통업체를 차례로 불러, 독감백신 운반비를 낮추는 방안에 대해 의견청취를 하고 있다.
질병청은 매년 정부 조달 독감백신을 이들에게 사들이고 있다. 올해 독감백신의 조달 가격은 도스(dose, 1회 접종분)당 9461원이다. 여기에 14.5%를 포함하면 정부에 조달하는 독감백신 가격이 된다. 2011년 질병청이 정한 비율로 10년간 유지된 셈이다. 그 사이 정부 조달 독감백신 가격은 8600원(3가)에서에서 1만 870원(4가)으로 26.4% 올랐다. 4가의 일반 도매는 16000원선이다.
정부 조달 독감백신 가격이 오른 만큼 현재 시점에서 14.5%는 지나치게 높다는 게 질병청의 입장이다. 이에 질병청은 지난 5월 5500만원을 들여 한국생산성본부에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이달 결과가 나온다.
해당 연구용역에 따르면 14.5%를 기준으로 내년 정부가 지출해야 할 독감백신 운반비(65세 이상, 12세 이하 약 1300만명 기준)는 약 175억원이다. 하지만 운반비를 현실화할 경우 60억원까지 낮아진다. 질병청은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면 100억원 수준이 적정하다고 본다. 이를 통해 매년 70억원 규모의 정부 지출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한다.
질병청 관계자는 “독감백신 운반비 구조가 비정상적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업계도 동의했다”며 “작년 대비 올해 10%가량 독감백신 조달 가격을 올리면서 업체의 부담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백신 어디에”..업계 정부 이중적 태도 비판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K-백신’을 바탕으로 제약·바이오 강국으로 성장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마른 수건 짜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이번 연구용역은 독감백신 운반비를 기준으로 하지만, 결국 전체 NIP에 대해 같은 내용을 적용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백신 조달업체 A사 관계자는 “독감백신 조달 가격이 올랐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장가의 60% 수준에 불과하다”며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도 이보다 나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저가 구조가 새로운 백신 개발의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 화이자나 모더나 등 글로벌 제약·바이오사가 코로나19 백신의 선제적 개발로 1년 넘게 승승장구하는 사이, 국내 업계에서는 아직 좋은 소식이 없는 배경으로도 꼽는다.
백신 조달업체 B사 관계자는 “독감백신 운반비를 삭감하면 결국 다른 NIP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다”며 “콜드체인(저온유통체계) 확대로 가뜩이나 운반 단가가 높아진 상황에서 정부 목표처럼 K-백신 굴기를 위한 R&D 등의 비용은 어디서 마련하느냐”고 반문했다.
서동철 중앙대 약대 교수는 “정부가 K-백신의 굴기를 위해 제약·바이오 부문의 가격 산정에 ‘원가가 아닌 가치’를 바탕으로 하겠다고 했는데 질병청의 연구용역은 이에 반하는 결과”라며 “백신 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R&D 의지를 꺾는 조치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가 구조..국민 건강과 백신 주권 악영향
업계에서는 이는 결국 국민의 건강과 백신 주권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실제 지난해 ‘독감백신 운반업체 신성약품의 제품 상온 노출 사태’가 발생한 것도 저가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백신을 배송할 때는 배송과정 내내 2~8℃를 유지해야 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저가 구조 개선과 함께 부족한 R&D 지원을 위해 백신바이오펀드 등을 조성하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자체 개발 없는 글로벌 백신 허브는 선진국 생산기지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의 백신 제품 자급능력은 50%에 불과하다”며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 백신은 안보강화 차원에서라도 전폭적인 국가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적절한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 업계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지만, 대부분 거부해 연구용역을 주게 된 것”이라며 “독감백신 운반비 절감 분은 조달 단가를 현실화해 적절히 반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10월 25일 광주 서구 농성동 한국건강관리협회 광주전남지부에서 시민이 독감 예방 접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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