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석지헌 기자] 보건복지부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된 인공지능(AI) 의료기기가 처음으로 비급여 시장에 진출한다. AI 의료기술의 첫 상용화 사례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지만, 복지부가 비급여 ‘상한선’을 두겠다고 예고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 보건복지부 전경.(제공= 보건복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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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6일 제21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제이엘케이(322510)의 뇌졸중 진단 혁신의료기술의 요양급여를 결정했다. AI 기술이 처음으로 건강보험 체계에 편입되면서 의료 현장에서 널리 쓰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급여 가격은 영상전문의 판독료의 10% 수준으로 결정됐다. 다만 혁신의료기술 지정 기간이 만료된 후 신의료기술평가를 다시 받는 시점까지 ‘비급여’로 적용된다.
주목할 점은 환자가 내는 이용금액의 상한선을 두는 안건도 이날 통과됐다는 것이다. 정부가 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업체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을 정하겠다는 취지다. 구체적인 급여 범위는 최소 10배에서 최대 30배까지다. 해당 안에 따르면 현재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된 대부분의 AI 의료기술이 2군 ‘특수영상진단’에 포함된다. 2군의 수가는 1810원이기 때문에 비급여 상한선은 최대 30배인 5만4300원까지다.
| 혁신의료기술 업체들의 영상검사 및 인공지능 의료기기 수가표.(자료= 보건복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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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일부 의료기기 업체들은 해당 수가를 적용할 경우 ‘원가도 못 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단 것이다. 4군 ‘기타’에 포함되는 AI 솔루션을 개발한 경우는 수가 310원에 30배를 적용해도 환자에게 최대 9300원밖에 청구할 수 없게 된다. 4군에는 엑스레이(X-Ray)나 심전도 검사, 청진 등 건강검진에 필수로 들어가는 검사 종류가 포함된다. 실제 심전도 검사만으로 심부전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AI 솔루션을 개발한 메디컬에이아이는 4군으로 분류되는데, 해당 수가가 적용되면 사실상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된다.
메디컬에이아이 관계자는 “당초 원가를 고려해 설정한 가격대가 있는데 이제 3분의 1수준도 받지 못하게 될 형편이다”라며 “디지털 치료기기가 아닌 저희 같은 AI 솔루션 업체들은 병원에 들어가려면 병원 내 EMR(전자의무기록) 시스템과 연동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시스템 연동 수수료가 나가고 여기다 병원의 이윤, 병원에 설치할 인공지능 서버 비용, 중간 판매사의 마진 등을 빼면 사실상 업체에 남는 수익이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2군에 해당하는 기업들도 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2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상장사로는 제이엘케이와
코어라인소프트(384470) 딥노이드(315640)가 있다. 뇌경색 진단 프로그램을 개발한
제이엘케이(322510)는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 단층촬영(CT)기반으로 하는 기술이며 코어라인소프트도 CT 촬영을 기반으로 한다. 딥노이드도 MRA(자기공명혈관조영술) 영상을 기반으로 한다. 제이엘케이의 경우 내부적으로 예측한 가격대가 MRI 8만원, CT 6만원이었다. 하지만 이번 안에 따르면 MRI와 CT 모두 동일한 가격으로 적용되며, 최대 30배를 적용해 5만4300원으로 정해졌다. 제이엘케이에는 30배가 적용됐지만, 다른 2군 기술들에는 10~20배 수준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업계에서 나오면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메디컬에이아이 관계자는 “이런 필수의료 인공지능을 하는 기업들은 원가를 맞추기가 어렵다”며 “필수 의료에 해당하는 검사들을 분석하는 AI 기업들은 앞으로 사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된 AI 의료기기 업체는 제이엘케이와 메디컬에이아이, 코어라인소프트, 딥노이드 등 모두 8곳이다. 제이엘케이는 뇌경색 진단 솔루션 ‘JBS-01K’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혁신의료기술로 선정됐다. 메디컬에이아이는 심부전 조기 발견 프로그램인 ‘AiTiALVSD’를 개발했으며 지난 4월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됐다. 코어라인소프트는 뇌출혈 뇌 영상 검출·진단 보조 소프트웨어 ‘에이뷰 뉴로캐드’가 25일 혁신의료기술로 선정됐다. 딥노이드는 지난 8월 뇌동맥류 뇌영상검출·진단보조소프트웨어 ‘딥뉴로’를 혁신의료기술로 지정받았다.
AI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영상의학과 전문의들과 환자단체 등의 입장도 고려하다 보니 이런 결정을 내리려는 것 같다”며 “하지만 결국은 기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다. 국민한테는 전가하기 힘드니 기업에 전가하는 건데 그렇게 되면 어떤 기업이 필수의료 AI 기술을 개발하려 들겠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