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이데일리 프리미엄 기사를 무단 전재·유포하는 행위는 불법이며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이에 대해 팜이데일리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강력히 대응합니다.
[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미국 제약사 화이자(Pfizer)가 미국 비만치료제 개발사 멧세라(Metsera)를 최대 73억달러(약 10조1600억원)에 인수하면서 글로벌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에 본격 참전했다. 기존 비만약 강자인 일라이 릴리(Eli Lilly)와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가 어떻게 대응할지, 이 과정에서 국내 바이오기업에게 협력 기회가 늘어날수 있을지 주목된다.
화이자는 자체 비만치료제 개발에 실패하자 외부에서 유망 파이프라인을 도입하기 위해 멧세라를 인수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번 화이자 인수로 국내 바이오기업 디앤디파마텍(347850)도 지난 22일 주가가 상한가에 도달하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멧세라의 핵심 파이프라인 중 일부에는 디앤디파마텍의 플랫폼기술 ‘오랄링크’(ORALINK)가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 결과 디앤디파마텍의 기술이 적용된 파이프라인들도 화이자 비만약 파이프라인의 한 축이 됐다.
이에 기존 비만치료제의 강자인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가 어떻게 대응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회사가 비만치료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인수합병(M&A)이나 기술거래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두 회사가 국내 바이오기업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열려있다.
 | 화이자가 글로벌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기존 강자인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K바이오와 협업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진=ChatGPT). |
|
릴리, 대형 딜 가능한 드라이 파우더의 향방은 우선 릴리의 드라이 파우더가 어디로 향할지가 관건이다. 앞서 릴리는 지난달 18일 총 67억5000만달러(약 9조45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며 대규모 자금을 확보했다. 기존 보유 현금과 합하면 최소 100억달러(약 14조원) 이상의 여유 자금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기반으로 릴리가 조만간 대형 인수합병(M&A)이나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릴리가 사상 최대 규모의 회사채 발행 당시 바이킹 테라퓨틱스(Viking Therapeutics) 인수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경구용 비만치료제 ‘VK2735’의 임상 2상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이러한 예측은 힘을 잃었다. 그 다음 유력 후보였던 멧세라까지 화이자의 품에 안기면서 릴리의 선택지는 크게 줄어든 상태다.
나스닥 상장사 중 경구용 비만치료제를 개발 중인 바이오텍으로는 스트럭쳐 테라퓨틱스(Structure Therapeutics), 턴스 파마슈티컬스(Terns Pharmaceuticals) 등이 있지만 릴리의 인수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 다 저분자화합물 기반 GLP-1 수용체 작용제를 개발하고 있어 릴리의 경구용 비만치료제 ‘오포글리프론’과 개발 방식이 겹치기 때문이다.
국내 바이오기업 중에서는 일동제약(249420)의 자회사 유노비아를 눈여겨볼 만하다. 유노비아는 경구용 비만치료제 ‘ID110521156’를 GLP-1 기반이 아닌 저분자 화합물로 개발하고 있으며, 이달 내 임상 1상 톱라인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ID110521156가 오포글리프론 초기 임상 결과 동등 이상의 효과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릴리가 비만치료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M&A를 추진한다면 경구제뿐 아니라 주사제형 비만치료제의 투약 주기를 늘리는 약물전달기술(DDS)에도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릴리가 협업 중인 펩트론(087010)에 국내 투자자들의 시선이 모이는 이유다.
펩트론은 지난해 10월 릴리와 장기지속형 제형 플랫폼 ‘스마트데포’에 대한 기술 평가 계약을 체결하며 본계약이나 기술이전 성사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온 업체다.
올 들어 릴리가 올릭스(226950), 알지노믹스 등 국내 바이오텍의 리보핵산(RNA) 기술을 각각 9117억원, 1조9000억원에 도입한 점도 긍정적 신호다. 이는 릴리가 국내 바이오텍의 기술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업계 관계자는 “릴리의 국내 비만약 업체 인수 가능성을 점치긴 어렵겠지만 유망 파이프라인이나 제형 기술을 확보할 가능성은 열려있다”며 “비만약 기술은 아니지만 국내 바이오텍 기술을 릴리가 올해에만 3조원가량 투입해 확보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포인트”라고 언급했다.
노보, 구조조정 통해 선택과 집중…“투자 여력은 충분” 노보 노디스크는 최근 최고경영자(CEO) 교체와 함께 약 9000명 규모의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비만 후보물질 2개를 폐기하는 등 대대적인 파이프라인 정리(pipeline clear-out) 작업도 병행했다. 이는 비만약 시장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핵심 차별화 역량에 자원을 집중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노보의 위고비, 오젬픽의 글로벌 수요는 여전히 높고 영업이익률(OPM)도 40%대라 돈이 없어서 감원한 게 아니라 투자 여력을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노보의 경우 국내 바이오텍과 활발히 협업 중인 릴리에 비해 한국 바이오텍과 연결고리가 적다. 노보가 눈여겨 보고 있는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으로는 사이키바이오텍이 있다. 사이키바이오텍은 지난해 노보 노디스크 파트너링 대회에서 최종 우승한 업체로, 앱타머와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부작용을 최소화한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앱타머란 특정 타깃에 대해 높은 특이성과 친화도를 가지는 단일가닥 핵산(DNA나 RNA) 구조체이다.
노보 역시 DDS 기술을 보유한 펩트론, 인벤티지랩(389470), 지투지바이오(456160) 등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다만 펩트론은 릴리와, 인벤티지랩과 지투지바이오는 베링거인겔하임과 협업 중이라 노보의 진입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릴리와 노보가 이미 장기지속형 제형 개발 관련 기술을 도입한 점도 국내 DDS 기술이전 기대감을 낮추는 요인이다. 노보는 지난해 11월 아센디스파마(Ascendis)의 ‘트랜스콘’(TransCon) 기술을 2억8500만달러(4000억원)에, 릴리는 지난 6월 카무루스(Camurus)의 약물전달 플랫폼 ‘플루이드크리스탈’(FluidCrystal) 기술을 최대 8억7000만달러(1조2000억원)에 각각 확보했다. 반면 장기지속형 기술 거래의 특성상 다수 파트너사와 복수의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 1개월 장기지속형 비만치료제 시장은 열리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빅파마들의 관련 기술 확보 수요는 여전할 것”이라며 “글로벌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 구도가 한층 치열해지면서 릴리와 노보가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어 “제형 기술이나 차별화된 파이프라인을 기반으로 또 다른 K바이오가 빅파마의 파트너로 올라설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