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돋보기]‘오락가락’ 거래소 “엔지켐생명과학 투자자 보호보다 주가하락 우려”
  • 임상 2상 결과 공시, 통계 유효성 확인 불가
    임상 수행의 목표수치조차 알 수 없는 상태
    오락가락 거래소 “CRO 통계인지도 모른다”
    “통계 필요없다”는 엔지켐 측 주장 믿는다
    바뀐 공시부장, 이전 실무진과 달라진 설명
    P값 통계 미달일 경우 한국거래소 책임져야
  • 등록 2021-10-26 오전 7:24:08
  • 수정 2021-10-26 오전 7:24:08
[이데일리 김유림 기자] 한국거래소가 구체적 통계수치 없는 엔지켐생명과학(183490)의 임상 결과 공시를 받아주면서 시장에 혼란을 주고 있다. 향후 뒤늦게 통계적 유의성을 의미하는 P값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거래소는 부실한 관리 감독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배표한 코스닥 공시가이드라인. (자료=거래소)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9일 엔지켐생명과학은 중증 구강점막염 치료제 EC-18 글로벌 임상 2상 결과 탑라인 데이터 파트1을 공시했다. 파트1은 약의 효능을 보는 유효성, 파트2는 안전성에 대한 데이터다. 파트2 데이터는 이달 말 또는 11월 초 임상시험수탁기관(CRO) 아이콘(ICON)으로부터 수령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 엔지켐생명과학 약효능 임상 결과는 기존의 코스닥 바이오 공시가이드라인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공시됐다. 1차평가지표 달성 여부인 P값(p-value)을 공개하지 않았으며, 임상 성공을 판단하려면 어떤 부분을 충족해야 하는지 설명조차 없다.

2020년 2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거래소가 만든 코스닥 바이오 공시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임상 결과는 안전성 및 유효성 관련 통계적 유의성(임상시험 목적별로 전체 반응률(ORR), 무진행생존기간(PFS), 완전 관해(CR), 전체 생존 평균(OS) 등)을 공시해야 한다. 중간단계인 임상시험 결과를 ‘임상시험 성공’으로 공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임상에서 P값은 통계적 유의성 충족 여부를 나타낸다. 통상적으로 1차평가지표 P값이 0.05 이상 나왔을 경우 해당 임상은 실패(Fail)라고 하고, 0.05 이하는 성공(Pass)적인 임상이라고 표현한다. 1차평가지표는 영어로 Primary endpoint, 임상 시험을 하는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거래소가 이번에 얼마나 부실한 공시를 통과시켜줬는지는 다른 코스닥 바이오텍들과 비교하면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8월 4일자 알테오젠은 ALT-L9 임상 1상 탑라인 공시에서 최대교정시력변화 투약군과 대조군 각각 p-value=0.0267, p-value=0.0256 통계 수치를 공개했다. 8월 14일 오스코텍은 전체 환자 대상 1차 평가지표인 DAS28-hsCRP 평균값은 위약군과 각 용량군 간에 (통계적) 유의성 있는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공시했다.

지난 21일 이데일리가 취재하자 거래소는 엔지켐생명과학 공시가 CRO에서 입증한 통계인지도 확답을 못했다. 투자자보호가 1순위인 기관에서 공시에 들어갈 핵심 데이터도 제대로 판단할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거래소 측은 “22일까지 CRO에서 통계적 유효성을 충족했다는 확인서를 제출받기로 했다”고 대응했다. 그러나 확인서 제출 시한 당일 공시 담당자는 연락이 되지 않았으며, 23일 “엔지켐생명과학의 주가 하락이 우려된다”며 돌연 입장을 바꿨다.

거래소 공시부는 엄연히 국내 공시 가이드라인 원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거래소 코스닥 공시부장은 “엔지켐생명과학이 FDA로부터 통계적 유의성을 면제받은 것이 공식문서를 통해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임상결과 공시는 포괄주의 공시로서 반드시 P값이 들어가야 하는 열거주의식 의무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공시 내용이 CRO의 통계 여부인지에 대한 질의에서는 “그건 직접 물어보는게 좋을 거 같다. 거래소가 특정회사의 공시내용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기사화돼 주가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배표한 코스닥 공시가이드라인. (자료=거래소)
현재 코스닥 공시부 입장은 지난해 초 공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데 참여한 실무진의 설명과는 완전히 상반됐다. 당시 코스닥 공시부 담당부장은 “투자자들은 1차지표 결과만으로도 평가 가능하다. 목표수치 달성 여부, 통계적 유효성을 공시해야 한다”며 “통계적 수치가 유효하게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회사에서 탑라인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왜곡된 내용들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시는 공개하기 전 거래소 코스닥 공시팀의 사전 검토를 거치게 되며, 투자자들의 중요한 투자 지표로 활용된다. 거래소에서 오락가락하는 사이 투자자들은 공신력 있는 정보를 얻지 못한 채 회사의 ‘임상 성공’이라는 발표를 참고해 유상증자 참여를 결정하고 있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시설자금 및 운영자금, 채무상환자금 조달을 위해 약 3164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 중이다. 22일 1차 발행가액 5만6900원으로 결정됐다고 공시했다. 확정발행가액은 12월 13일 공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이례적으로 바이오기업의 임상 성공 부풀리기에 칼날을 겨냥하고 있다. 향후 엔지켐생명과학의 탑라인 데이터 공시가 CRO 통계적 유효성이 아닌 경우 또는 P값이 0.05 초과할 경우 후폭풍이 관측된다. 지난 2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은 에이치엘비가 리보세라닙 임상 결과 발표 과정에서 주가 상승을 유도했다고 판단, 불공정 거래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2019년 에이치엘비가 임상 성과를 과장했다고 보고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에 검찰 고발이라는 가장 높은 수위의 제재를 건의했다. 지난달 에이치엘비에 대한 불공정 거래 조사는 검찰 통보로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림 기자 ur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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