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나은경 기자]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제약·바이오 기업의 희귀의약품 개발비용 회수, 의약품 편익 등을 중심으로 관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개발단계부터 시판허가 후까지…전과정서 제도적 지원1983년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순차적으로 희귀의약품 개발을 지원하는 법안이 도입됐다. 원인이 불분명하고 치료법이 없는 난치병을 앓는 환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신약 연구개발을 독려하는 게 목적이다.
|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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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은 희귀의약품 연구개발에 드는 비용 일부를 직접 지원하고 연구개발비용 일정부분을 조세감면해주는 제도를 운영한다. 특히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의 희귀제품기금프로그램을 운영해 임상시험 비용을 지원한다. 미국 내에서 실시된 임상시험 비용의 절반은 세금 감면해 준다.
희귀의약품 연구개발 과정에서 허가당국이 직접 사전상담을 제공하기도 한다. 의약품 허가당국의 전문인력이 시판승인을 위한 시험계획에 관해 자문해준다. 이후 시판허가 절차로 넘어가서도 희귀의약품의 경우 우선심사 및 가속허가심사 대상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허가심사가 신속히 진행되고 수수료가 감면되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무엇보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희귀의약품 개발 동기를 높이는 것은 시판허가 이후의 ‘시장독점제도’다. 미국, EU, 일본에서는 희귀의약품 허가 이후 일정 기간 동안 동일 질환에서 경쟁제품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시장독점권을 부여한다. 미국은 다른 분야 혁신신약의 경우 5년의 시장독점기간을 부여하지만 희귀의약품에는 7년을 보장해준다. EU와 일본은 희귀의약품 시판허가가 나면 회원국이 10년간 유사한 의약품에 대해 동일 적응증으로 시판허가 신청을 받을 수 없도록 한다.
국내에도 관련 법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미국이나 EU, 일본 등에 비하면 체감혜택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조세특례제도과장은 “조세특례법상 신성장·원천기술에 해당하면 코스닥 상장 중견기업은 25~40%, 대기업은 20~30%의 R&D 비용 세액공제를 받는다”며 “희귀질환치료제도 조세특례제한법의 ‘바이오 신약’, ‘혁신형 신약’에 해당되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그에 해당하지 않으면 일반기술로써 세액공제를 받으니 사실상 지원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희귀의약품 개발 바이오벤처 창업주는 “혁신 기술이나 벤처 기업에 정부가 R&D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희귀의약품 개발에는 비희귀의약품 개발과는 다른 어려움이 있는 것인데 국내에는 이를 감안한 정책이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성장·원천기술 R&D비용 세액공제 제도 역시 2024년으로 일몰기한이 정해져 있어 다시 존속여부를 평가받아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 갖추려면 전략적으로 희귀의약품 유리”희귀의약품은 항암제 등 다른 분야 신약에 비해 적은 비용에도 성공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미국 컨설팅 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임상 2상에서 시판되기까지 개발기간은 비희귀의약품 대비 1년6개월가량 더 짧고 개발성공률은 93%로 5%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FDA 승인 의약품 중 희귀의약품의 비율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06년에는 17%에 불과하던 희귀의약품의 비율이 2017년에는 39%로 11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동시에 수익성도 일반 신약대비 높다. 희귀의약품은 대체로 약가가 일반 질환 대비 5배 이상이어서 개발에 성공할 경우 제약사들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희귀질환은 절대적인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대규모 임상을 진행할 수 없어 글로벌 임상에 드는 비용이 적고 패스트트랙 지정 가능성은 높다”며 이 때문에 희귀의약품 관련 정책이 마련되기 전과 지금의 투자 시장 분위기는 한참 달라졌다고 했다. 시장에서도 희귀의약품은 개발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예전보다 벤처금융 및 전문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빅파마와 자금력으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라며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국내 바이오벤처 같은 경우 시장성이 큰 질환을 타깃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희귀질환을 타깃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는 방법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희귀의약품 개발에는 암이나 만성질환 치료제를 개발할 때 보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이 어려운 부분이다. GC
녹십자(006280)에서 신약개발을 총괄하는 정재욱 R&D부문장은 “희귀질환은 암, 대사질환보다 연구자가 적어 연구과정에서 난관을 맞닥뜨렸을 때 외부전문가를 찾아 도움받기 힘들다. 해당 희귀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들을 찾아내 그들과 수년간 우호적 협력관계를 쌓아야 한다”며 “또 임상 진입 후보다 가능성을 검증하는 임상 이전 단계가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준비없이 희귀의약품 개발에 뛰어들어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