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영두 기자] 미국발 의약품 관세가 현실화 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약품 관세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까지 언급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주가가 출렁이고 있다. 하지만 K바이오를 이끄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와 셀트리온(068270)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다온다.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언급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반도체, 의약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게 될 것”이라며 “관세는 1년에 걸쳐 더 인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미국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의약품 규모는 39억8000만 달러(5조7272억원)로 전년 26억2000만 달러(3조7702억원) 대비 52% 증가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만큼 미국 내 돌발 상황은 국내 기업들엔 직격탄이다. 이번 미국발 관세 부과 전망에 따라 국내 의약품 위탁생산(CDMO) 기업과 신약개발 기업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관세 부과에 따른 대응책으로는 △수출 의약품 단가 인상 △재고 활용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 등 크게 세 가지가 거론된다. 하지만 의약품 단가 인상은 결국 비용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고, 재고 활용은 기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도 단기간 이뤄질 수 없고,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결국 국내 기업들이 당장 관세가 부과된다면 피해가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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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위주 생산...삼성바이오로직스 영향 無하지만 국내 바이오산업을 이끄는 양대 축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에는 큰 영향이 없거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최대 매출(4조5473억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CDMO 기업 중에서도 론자(10조5100억원)에 이어 글로벌 2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파트너사와 계약을 맺고 생산하는 의약품은 대부분 필수의약품이 아닌 항암제 및 만성질환 치료제라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제47대 대선 공약인 ‘아젠다 47’에 따르면 “필수의약품 생산 자국화를 위해 해외에서 생산되는 의약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 제한을 통해 필수의약품 생산을 미국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필수의약품은 백신, 원료의약품(API), 케미칼 의약품, 생물학적 제제가 해당한다.
CDMO 업계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대부분 항암제와 같이 가격 변동과는 상관없이 환자가 꼭 처방받아야 하는 의약품을 생산하고 있다. 관세 부과 품목에 해당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최종적으로 처방률에는 영향을 끼치기 어려운 구조다. 삼성바이오로직스 CMO 계약도 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이기 때문에 당장 미국발 관세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필수의약품 위주로 생산하는 CDMO 기업 대비 관세 측면에서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존림 대표가 미국보다 한국 생산시설 건설이 더욱 유리하다고 강조한 측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만난 존림 대표는 “추가 생산시설 확보를 위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도 “미국 생산시설 건설은 한국에 건설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완공된 생산시설을 인수하려 여러 매물을 보고 있는데 맘에 드는 매물이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에서도 당장 미국 현지 생산시설 확보에 속도를 내지 않겠다는 것을 시사한 셈이다. 관세 우려 때문에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건설할 경우 4~5년이라는 기간 동안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오히려 관세에 따른 불이익보다 더 높은 비용 소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서근희 삼성증권 수석연구원도 “(미국 필수의약품)해당 약물은 장기 만성 질환 관리에 사용되는 당뇨, 암,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 주로 급성 환자에게 필요한 의약품인 백신 API, 항응고제, 항생제, 항바이러스제 등으로 구성돼 있다”며 “한국 기업이 주로 생산하는 의약품은 필수의약품이 아닌 장기 만성질환 치료제 중심이기 때문에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셀트리온, 악재 아닌 기회...선제 대응에 글로벌 경쟁력↑셀트리온은 미국발 관세에 빠른 투자 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자가면역질환 바이오시밀러 외 다양한 적응증의 바이오시밀러 제품들도 개발 및 생산, 수출하는 만큼 신속한 결단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셀트리온은 우선 재고를 십분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회사 관계자는 “1월말 기준 미국에서 판매 예정인 제품에 대해 약 9개월분의 재고 이전을 완료했다”며 “의약품 관세 여부와 상관없이올해 미국 내 판매분에 대해 영향을 최소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세 리스크 발생 이전부터 현지 CMO 업체를 통해 완제의약품을 생산해 오고 있고, 추가 생산 가능 물량도 이미 확보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 1분기에는 검토하겠다고만 언급했던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에 대해서 19일 “올해 상반기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신속하게 미국 현지 원료의약품 생산시설을 확보 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다만 셀트리온 관계자는 “자체 생산시설을 구축할 것인지 또는 현지 생산시설을 인수하는 형태로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결정되면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셀트리온 측의 신속한 결단은 미국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내 직판으로 수익률을 극대화한 사례처럼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로 현지 CMO 비용도 세이브하게 되고, 바이오시밀러 가격 경쟁력에서도 추가적인 이점을 보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 개발사 중 미국 내 생산시설을 확보한 기업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바이오시밀러에 관세 부과가 이뤄진다면 오히려 선제적으로 단계별 대응 전략을 마련한 셀트리온의 경쟁력이 비교 우위가 될 수 있다”면서 “이는 CDMO 사업에 진출하는 셀트리온그룹 입장에서도 절대 불리하지 않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