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SK바이오팜(326030)이 2026년 새해 초부터 차세대 항암제 시장의 판도를 바꿀 방사성의약품(RPT) 시장 선점을 공식화했다.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의 성공으로 확보한 탄탄한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RPT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최태원 SK 회장의 장녀인 최윤정 전략본부장이 사업의 전권을 쥐면서 RPT의 상업적 성공 여부가 그룹의 승계 구도와 맞물려 재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 |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본부장. (사진=SK바이오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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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4년 47조 원 시장 선점하라“…RPT로 ‘제2 S커브’ 정조준 최근 바이오 업계의 핵심 모달리티로 부상한 RPT란 치료용 동위원소를 활용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타격하는 치료 기술을 말한다. 암세포 표면의 특정 항원이나 수용체를 찾아가는 항체 혹은 리간드가 운반체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에 탑재된 동위원소가 혈류를 타고 병변 부위에 정밀하게 도달하는 방식이다.
암 조직에 결합한 동위원소가 방출하는 입자 방사선은 인근 암세포의 유전자(DNA) 구조를 직접 파괴해 사멸을 유도한다. 외부에서 고에너지 방사선을 조사해 정상 조직까지 손상시키던 기존 방식과 달리 RPT는 병변 부위에만 국소적으로 작용하는 ‘내부 정밀 폭격’ 기전을 통해 치료 효율은 높이고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 역시 가파르게 팽창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프레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의 2025년 최신 업데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방사성의약품 시장은 2024년 118억5000만달러(17조원)에서 매년 급성장하여 2034년에는 350억4000만달러(51조원) 규모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시장의 초기 예상치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RPT 기술의 실질적 상용화가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같은 장밋빛 전망 이면에는 높은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시간을 지체할 경우 의약품의 가치가 즉시 상실되기에 업계에서는 RPT를 ‘물류 지옥’이라 부르기도 한다. 항공기 지연이나 통관 병목은 물론 병원 내 이송 지연조차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결국 단순히 약을 잘 만드는 기술력을 넘어 전 세계 주요 거점에 생산시설을 배치하고 초정밀 콜드체인을 갖춘 글로벌 물류 인프라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인 셈이다.
RPT 시장의 난도는 이미 글로벌 빅파마들의 사례에서 증명됐다. 선두주자인 노바티스는 2022년과 2023년, 주력 제품인 ‘플루빅토’와 ‘루타테라’의 생산 시설 품질 이슈가 불거지자 대체 생산 거점을 찾지 못해 공급을 중단하는 사태를 겪었다. 일라이 릴리와 존슨앤드존슨(J&J) 역시 직접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이 미친 수준의 물류와 제조 인프라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인수합병(M&A)을 통한 전략 수정에 나섰다.
SK바이오팜은 이러한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시작부터 철저한 인프라 선점 전략을 택했다. SK바이오팜은 2024년 7월 풀라이프 테크놀로지스(Full-Life Technologies)로부터 파이프라인을 도입하며 RPT 분야에 첫 진출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두 번째 RPT 파이프라인을 추가 도입하는 등 인오가닉 성장 전략과 자체 인하우스 연구개발을 병행하며 RPT 포트폴리오를 단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 |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 (사진=SK바이오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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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 공급망’ 구축…원료-연구-물류 잇는 촘촘한 밸류체인 승부수 최윤정 본부장이 주도하는 SK바이오팜 전략의 핵심은 다중 공급망 확보로 파악된다. SK바이오팜은 미국 테라파워(TerraPower), 벨기에 판테라(Pantera), 독일 에커트앤지글러(Eckert & Ziegler) 등 글로벌 원료 기업 3곳과 악티늄-225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원료 수급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첫 파이프라인 인수 1년 6개월 만인 지난 12일, SK바이오팜은 미국 FDA로부터 알파핵종 기반 RPT 신약 ‘SKL35501’의 임상 1상 시험계획(IND) 승인 받았다. 알파핵종 기반 RPT 분야에서 국내 기업의 첫 FDA 임상 1상 IND 승인이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RPT는 아직 명확한 글로벌 선도자가 부재한 시장으로, 초기 주도권 확보가 향후 성장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며 ”파이프라인 확충, 글로벌 파트너십, 안정적 공급망 확보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선점의 기회’를 반드시 성과로 연결하겠다“고 밝혀 ‘속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SK바이오팜의 RPT 사업 ‘속도전’의 최전방에는 최윤정 본부장이 서 있다. 시카고대 생물학과 출신으로 베인앤드컴퍼니를 거쳐 2017년 SK바이오팜에 입사한 최 본부장은 그간 사업개발본부에서 RPT 파이프라인 도입과 전략 수립을 실무 단계에서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SK바이오팜의 RPT 사업은 최 본부장의 경영 능력 입증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만큼,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SK그룹이 대대적인 ‘리밸런싱’ 작업을 통해 그룹 차원에서 방대한 포트폴리오를 효율화하는 과정에서도 바이오는 미래 성장의 핵심 축으로 살아남았다.
최 본부장은 바이오사업 중에서도 가장 도전적인 RPT 사업을 이끌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올해부터 RPT 사업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올해 1월자로 RPT 본부를 신설하고, RPT 사업을 주도해온 최 본부장을 기존 사업개발본부장에서 전략본부장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최 본부장이 직접 설계해 온 ‘RPT 청사진’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본격적인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재계에선 최 본부장을 앞세운 SK바이오팜의 대대적인 RPT 공략이 단순히 총수 3세의 경영 참여를 넘어 SK그룹 바이오 사업의 질적 성장을 견인할 ‘실질적 리더십’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